흥부가 지붕으로 올라가서 박을 톡톡 퉁겨 본즉, 팔구월 찬이슬에 박이 꽉꽉 여물었구나. 박을 따다 놓고, 흥부 내외가 자식들을 데리고 박을 타는데,
"시르릉 실근 당겨 주소. 에이 여루 당기어라 톱질이야, 이 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 한 통만 나오너라. 평생에 밥이 포한이로구나. 에이 여루 당기어 주소."
판소리인 박타령 흥부가 일부다. '펑' 소리와 함께 금은보화가 우르르 쏟아지는 절정으로 치닫는 길목임에도 절로 흥이 난다. 아니, 웬 판소리 타령이냐고?
"어이, 친구. 글쎄 나가 지난 11월 초, 전북 고창 판소리 박물관을 다녀왔지 안것는가. 이걸 써 무거야제, 그냥 놀려서 쓰것는가. 그람, 아니 될 말이제~."
"소리만 잘하려 허지 마. 사람이 돼야지"
"어이, 친구. 긍께 말이시. 나가 판소리 박물관엘 갔더니만 요런 글귀가 나붙어 있드만. 함 들어 볼란가?"
"대체 그게 뭐 간디, 요로코롬 뜸을 들인당가. 얼른 싸개싸개 말해 보소."
"아 글씨, '소리만 잘 하려고 허지 마. 우선 사람이, 인간이 돼야지 올바른 국악인이여.' 란 글이 나붙어 있는 거여. 어째 고로코롬 나 맘과 똑 같은가 몰러, 잉! 역시 세상살이는 '사람이, 인간이' 우선인가벼."
가상의 친구와 벌인 대화 어째 맘에 드요? 어허~, 어째 썰렁 허구먼. 다시 본래 어투로 돌아가야 할까 보다.
아내와 함께 한 고창 여행에서 판소리를 접하게 되었다. 판소리도 알고, 부부애도 쌓은 꿩 먹고 알 먹은 격이었다. 사실 고창 신재효는 알았지만 판소리 박물관은 생각도 못했었다. 판소리 박물관 안팎을 둘러보자.
상하좌우 아우른 창조적 전통 문화예술, '판소리'
판소리 박물관 앞, 신재효 선생 고택. 이곳은 동리 신재효 선생(1812~1884)이 살면서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신재효 선생은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토끼타령, 박타령, 변강쇠타령 등 판소리 여섯마당 체계를 세우고, 판소리를 정립한 넉넉한 공이 있다.
고택은 원래는 주변의 물을 끌어들여 마루 밑을 통해 서재 밖 연못으로 흐르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모두 파묻히고 연못만 복원됐다고 한다. 아쉬웠다. 이마저 복원되었다면 그의 운치를 좀 더 느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판소리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잔잔한 판소리 음악이 흐른다. 이곳에는 세계무형문화유산 '판소리'의 세계적 가치 등에 대한 소개가 되어 있었다.
알다시피, 판소리는 부채를 든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가 창(소리)ㆍ아니리(말)ㆍ너름새(몸짓)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는 종합예술이다. 판소리는 18세기(조선 후기) 우리네 정서를 독창적으로 형상화하여 성장, 발전해 온 민족 공연예술이다.
또한 판소리에는 설화, 무가, 광대놀음, 민요 등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다. 게다가 상하좌우를 아우른 해학과 풍자가 들어 있는 대중 전통 문화이다.
박물관에서 지른 괴성, 역발상에 '호감'
심청이 환생하기 직전 연꽃을 발견한 도사공 등이 읊조리는 대목 한 구절 들어보자.
한 곳을 바라보니 난데없는 꽃 한 송이가 물 우에 둥실 떠 있거늘,
"저 꽃이 웬 꽃이냐?"
… 도사공 허는 말이,
"그 말이 장히 좋다. 충신화 군자화 은일화 한사화. 사람의 행습 보아 꽃이 이름을 지었나니, 저 꽃은 정녕코 심낭자 넋이니 효녀화가 분명쿠나."
판소리 박물관에는 신재효 유품과 명창, 판소리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실은 소리마당과 아니리마당 등 5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구전심수 교실, 판소리 여섯마당 청취기, 판소리 독공 장소, 소리 굴 등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중 화면을 보며 연습할 수 있는 소리굴 체험이 재밌었다. 소리를 지르면 소리 크기가 바로 나오는데 우리 부부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 악" 괴성을 마구 질러댔다. 박물관에서 괴성을 지르다니, 판소리 박물관다운 역발상이 퍽이나 인상 깊었다.
이렇듯 고창 판소리 풍류기행은 판소리 박물관 뿐 아니라 인근의 고창읍성, 문수사, 선운사 등과 연계가 가능해 묘미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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