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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11월이 '불조심 강조의 달'일까요? 이 행사를 주관하는 '소방방재청'에 의하면 겨울철이 다가와서 불을 많이 쓰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이 높아서라는데 2008년도 화재통계를 보면 불이 가장 많이나는 달은 겨울철이 아닌 2,3월이더군요. 11월이 불조심 강조의 달이라는 것은 아궁이에 불을 때던 옛날 기준으로 만든 것입니다.
▲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입니다. 그런데 왜 11월이 '불조심 강조의 달'일까요? 이 행사를 주관하는 '소방방재청'에 의하면 겨울철이 다가와서 불을 많이 쓰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이 높아서라는데 2008년도 화재통계를 보면 불이 가장 많이나는 달은 겨울철이 아닌 2,3월이더군요. 11월이 불조심 강조의 달이라는 것은 아궁이에 불을 때던 옛날 기준으로 만든 것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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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이랍니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관공서와 학교 교문 앞에는 '불조심 강조의 달' 펼침막이 내걸립니다. 학교 교문에 이런 펼침막을 내건 것은 제가 초등학생이던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는 펼침막만 내 건 것이 아니라, 아이들 가슴에 리본도 달게 했지요. 깜박 잊고 리본을 달지 않으면 등교 시간에 교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6학년 주번들한테 걸려서 눈물 쏟게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 년 내내 행사와 기념일마다 가슴에 리본을 달고 다녀야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1년 행사와 기념일을 인쇄한 사진과 같은 것을 문방구점에서 팔았습니다. 그 때 윗옷마다 왼쪽 가슴에는 옷핀을 꽂은 자국인 구멍이 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 제가 초등학생 시절 가슴에 늘 달던 행사 관련 리본들 일 년 내내 행사와 기념일마다 가슴에 리본을 달고 다녀야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1년 행사와 기념일을 인쇄한 사진과 같은 것을 문방구점에서 팔았습니다. 그 때 윗옷마다 왼쪽 가슴에는 옷핀을 꽂은 자국인 구멍이 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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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리본 달기는 언제부턴가 슬며시 사라졌지만, 11월이 되면 교문 앞에 걸리는 펼침막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늘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불조심 표어·포스터 그리기 대회입니다. 학교에서는 불조심 표어·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해서 '잘 그린' 아이를 뽑아 상을 줍니다. 학교에서 큰 상을 받은 아이는 학교 대표로 시군구대회에 나가서 다른 학교 아이들과 실력을 겨루게 되고 거기서 뽑힌 어린이는 더 큰 상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불조심 표어와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처음 시작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11월 불조심 강조의 달에 하는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한국화재보험협회가 주최한 불조심 포스터 수상작으로 1회 대회(1975년) 부터 11회 대회(1986년)까지 최우수, 우수, 장려상을 받은 작품을 모아보았습니다. 위 작품과 나머지 19회 대회(2008년)까지 수상작은 한국화재보험협회 홈페이지  http://www.kfpa.or.kr 에서 볼 수 있습니다.
▲ 2,30여년 전 불조심 포스터대회 에서 상을 받은 불조심 포스터들 한국화재보험협회가 주최한 불조심 포스터 수상작으로 1회 대회(1975년) 부터 11회 대회(1986년)까지 최우수, 우수, 장려상을 받은 작품을 모아보았습니다. 위 작품과 나머지 19회 대회(2008년)까지 수상작은 한국화재보험협회 홈페이지 http://www.kfpa.or.kr 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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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1월이면 초등학교에서는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열고 '잘 그린' 아이를 뽑아 상을 주고 전시회를 합니다. 그러나 뽑힌 작품을 보면 내용이나 형식이나 그림도구나 30여 년 전 모습과 크게 다를바 없습니다.
▲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 우수작 전시 모습 해마다 11월이면 초등학교에서는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열고 '잘 그린' 아이를 뽑아 상을 주고 전시회를 합니다. 그러나 뽑힌 작품을 보면 내용이나 형식이나 그림도구나 30여 년 전 모습과 크게 다를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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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불조심 표어 ·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조심 표어와 포스터 그리기 대회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포스터를 중심으로 그 까닭을 말해 보겠습니다.

잘 그리는 아이가 잘 실천하는 아이는 아닙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불조심 표어와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하지 말아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어린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가 본래 대회 목적과 거리가 있다는 데 있습니다.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는 대부분 각 시군구 소방서가 주최하는 것을 시군구교육청이 협조 공문 형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각 시군구에서 각 학교로 내보낸 공문에서 밝힌 '어린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을 고취하기 위해(ㅂ소방서)
어린이들에게 화재예방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생활 속에서 불조심을 실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ㅍ소방서)
겨울철을 맞이하여 아래와 같이 어린이 안전의식을 고취하기 위한(ㅇ소방서)
.......

세 군데만 알아보았지만, 대부분의 소방서가 밝히고 있는 어린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의 목적은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 그리고 '불조심을 실천하는 계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해서 어린이들에게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 그리고 '불조심을 실천하는 계기 마련'을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린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하면 위 세 가지 목적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그 까닭은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는 목적이 위 세 가지라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주는 관점도 바로 위 세 가지에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제가 초등학생시절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에서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주는 모습을 보면, 위 세 가지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포스터 그리는 실력이 우수한 아이에게 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조심 포스터를 잘 그리는 아이는 모두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 그리고 '불조심을 실천하는' 마음이 클까요? 절대 아닙니다. 포스터는 잘 그리지 못하지만,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 그리고 '불조심을 실천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큰 아이도 있고, 포스터 그리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 그리고 '불조심을 실천하는' 마음은 아주 적은 아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는 이 대회 목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포스터 그리기 대회는 거짓을 가르칩니다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하면서 상을 주는 그림을 뽑을 때 불조심에 대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잘 그린' 포스터 작품을 뽑다 보니, 이 대회를 둘러싸고 말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미술학원에서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이 상을 받고 아이가 애써 그린 그림은 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수두룩하게 일어납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자신의 학교와 반 아이가 상을 받게 하려고 교사들이 그려주는 모습을 줄곧 봐 왔으니까요. 또는 교사들은 아예 미술학원 다니는 아이에게 미술학원에서 그려오라고 부탁하거나 방과 후 특기적성 미술교사에게 그려 줄 것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이렇다보니 결국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 아이는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도 대회를 하기 전에 이미 누가 상을 받을 것인지 알고, 자신은 들러리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일 년 동안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같이 상을 주는 행사용 그리기 대회가 여러 차례 진행되는데, 그때마다 상을 타는 (정해진) 몇 명의 아이들을 빼고 나머지 아이들은 좌절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해가 갈수록 어른들이 손을 봐 준 그림으로 상을 타는 모습을 거짓 모습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치르는 과정과 상을 주는 관점이 본래 목적과 달라서 생기는 일입니다.   
 
30년 넘게 비슷비슷한 옛날식 포스터 그리기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포스터들을 보면 어디서 본 것 같은 것이 많습니다. 무슨 대회든지 상을 주는 대상을 뽑을 때는 내용과 형식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어찌된 게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타는 그림들을 보면 내용과 형식이 30여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그리고 있는 불조심 포스터 내용을 보면 아직도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성냥이 등장하고 있고, 아이들 그림에 담뱃불이 많이 등장합니다. 바탕은 노란 색이 대부분이고 포스터에 들어가는 표어는 위와 아래에 고딕체로 쓰고 있습니다. 또 포스터를 그리는 도구로 모두 포스터 칼라만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옛날 포스터 그리기에서 강조했던 '5도 이내(색깔)'라는 어이없는 심사 규정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상을 받는 어린이 불조심 포스터를 보면, 2,30여년 포스터와 내용과 형식과 방법이 비슷합니다.
▲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 우수작 전시 모습 최근에 상을 받는 어린이 불조심 포스터를 보면, 2,30여년 포스터와 내용과 형식과 방법이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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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에서 포스터 그리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포스터칼라로 그리면서 노란 바탕을 하고 있고, 고딕체 글씨와 '5도 이내' 색깔로 그리는 포스터는 현대를 사는 어린이들에게 그리게 해야 할 포스터 그리기에서도 거리가 아주 먼 옛날식 포스터 그리기 방법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는 미술과 어린이 미술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이 파행 운영됩니다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는 숙제로 내 주기도 하지만,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하는 일이 많습니다. 수업시간에 대회 규정인 4절지 캔트지에다가 계획부터 밑그림을 그려서 끝까지 잘 완성하려면 잘 그리는 아이들도 하루 종일 대여섯 시간동안 꼬박 그려야 합니다. 그러고도 다 못 그린 것은 또 집에 가서 그려 와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러저런 행사용 포스터 그리기 행사를 몇 번만 하면 교과 수업을 많이 빼먹어서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아이들도 이런 행사용 그리기 대회에서 자신이 상 탈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상 타는 아이가 누구일 거라는 것도 그리기 전에 이미 알고 있습니다. 불조심 포스터를 그린다고 해서  불조심을 더 잘 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이들과 교사가 포스터 그리기 행사를 거부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은 이런 행사를 하면 어찌됐든 하루는 적당히 편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인 까닭도 있습니다. 아이들도 포스터를 잘 그리지 못하고 포스터 그리는 것은 정말 싫지만, 적당히 교사 눈치보며 하는 척 흉내 내면서 편히 시간 때우는 것이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공부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어른들의 실적과 업적을 위해 어린이를 이용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하게하는 여러 가지 행사 관련 미술대회가 일 년에 여러 차례 진행되는데, 이런 행사용 미술대회가 과연 어린이들을 위해서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역시 어린이들에게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 그리고 '불조심을 실천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해 한다지만, 어린이들에게 이런 마음을 심어주는 방법이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어린이들을 위한다고 한다면,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 그리고 '불조심을 실천하는 계기 마련'을 해 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어른들이 미리미리 불이 나지 않게 안전장치를 철저히 해 두어서 어린이들이 불조심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이런 행사가 어린이들에게 불조심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준다고 하면서 오히려 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깊게 심어주고 공포감만 조성해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게 해서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 그리고 '불조심을 실천하는 계기 마련'하겠다고 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욱 많습니다. 따라서 구태의연한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는 지금이라도 그만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현실에 맞게 어린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불조심 관련 행사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초등학교 현장에서 해마다 11월이면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행사하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면서,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는 초등학생들에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태그:#불조심 포스터 그리기대회, #불조심강조의달, #행사용그리기대회문제,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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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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