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상파 방송보다 케이블 방송이 낫다는 말이 돌고 있다. 특히 <롤러코스터>와 <막돼먹은 영애씨>, <미세스 타운, 남편이 죽었다>는 케이블계에서 <선덕여왕>에 비유된다. 또한 막장 드라마, 막말 예능이라는 지적을 받기보다 호평 일색이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갈 문제는 바로 지상파 배우 혹은 예능인보다 더 실력 있는 숨은 인재들이 케이블 채널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한 후 지상파에 출연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상파의 스타들이 케이블에 출연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케이블 채널의 위상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를 차치하고 결국 마이너리그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한다면 그러한 계급쯤은 훌쩍 뛰어넘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이 미실에게 "무엄하도다. 어디 성골의 몸을 만지느냐"고 압박을 가하며 미실이 성골로 태어나지 못한 천추의 한을 폭발하게 만들어 버렸지만 실제로 방송가에서 계급 따위는 중요치 않게 된 것이다.
사실상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드라마계의 연기자 혹은 예능계는 분명히 진골과 성골의 차이가 존재했다. 아침드라마는 스타급보다는 왕성한 활동을 했던 왕년 스타가 출연했고, <사랑과 전쟁>에서는 어엿한 공채출신이지만 무명들이 출연해 재연배우 역할에 만족해야 했으며, 케이블 채널은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불륜녀에서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 김희정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연기만 혹은 재능만 있다면 언제 어디에 출연을 할지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케이스는 바로 김희정이다. 이 배우는 이미 <조강지처클럽>에서부터 자신의 출신을 벗어나 당당히 주인공을 꿰차며 힘찬 행보를 하고 있다.
김희정은 <조강지처클럽> 내연녀로 등장하는 얄미운 역이지만 심금을 울리는 연기를 펼쳐 시청자들로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이어 <태희혜교지현>이에 등장해 수다쟁이 아줌마로 등장해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이어 <수상한 삼형제>에 출연해 구박받는 며느리로 분했다.
사실 그녀는 <사랑과 전쟁>에 단골 주연으로 등장한 재연배우였다. 물론 그녀는 SBS 공채 출신이었지만 특별하게 도드라지는 외모가 아니어서 일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꾸준히 드라마에 알게 모르게 출연을 했고 그 기회의 초석이 바로 <사랑과 전쟁>이었다.
그녀는 그 프로그램에서 때로는 불륜녀로 때로는 조강지처로 출연해왔고 <사랑과 전쟁>을 보는 애청자라면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발전을 했던 것. 그리고 문영남 작가가 눈여겨보던 중 <소문난 칠공주>에 사고뭉치 부인으로 등장해 뻔뻔스러운 면모를 보이며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 <조강지처 클럽>에서 확실히 자신의 연기력을 발산한 것이다. 사실상 김희정은 이미 준비된 연기자나 다름 없었다. 그동안 단역과 조연을 두루 거치면서 스타성은 없지만 누구보다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연기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주책맞거나 불쌍한 역을 도맡아하고 있지만 변화무쌍하게 변신을 하는 모습 속에서 어느틈엔가 그녀를 우리는 성공 출신의 연기자보다 신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케이블 이미지 탈출한 고세원
또 한 명의 배우는 바로 <막돼먹은 영애씨>의 고세원과 도지원이다. 이 두 사람 또한 묘하게도 김희정을 캐스팅한 문영남 작가 작품인 <수상한 삼형제>에 출연하며 케이블 전문 배우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시작했다.
물론 도지원의 경우 간간이 지상파 방송에 등장했지만 고세원은 일생일대의 출연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고세원의 경우 KBS 공채 출신이지만 그 또한 지상파에서는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배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뮤지컬과 케이블 드라마를 병행하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영역을 쌓아갔다. 특히 뮤지컬계에서는 그래도 진골이 아닌 성골 대접을 받고 있는 배우이다.
또한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중간 투입되어 "~했다규~"라는 독특한 말투를 구사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에서는 껄렁껄렁하지만 능력은 없고, 그렇지만 착한 혁규 역으로 등장해 <막돼먹은영애씨6시즌> 현재 그는 비중 있는 연기자로 성장했다.
영애씨의 사무실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혁규를 필두로 가족의 이야기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실로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수상한 삼형제>에서는 왕재수로 출연하며 시청자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재수 없는 연기를 그야말로 진짜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그는 주인공 김이상와 어영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로 어영의 옛 연인으로 출연한다. 그는 어영을 배반하고 새로운 여자를 선택했지만 여전히 어영의 끈을 놓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상황. 물론 어영이 왕재수가 양다리를 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간의 행각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살 정도로 얄미웠다.
하지만 그 원망은 발연기로 지탄받는 스타급 배우보다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막돼먹은 영애씨>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색한 면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수상한 삼형제>의 초반 인기몰이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며 함께 출연하는 이준혁보다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예능계의 구원투수, 정가은
그리고 또 다른 주자는 예능계의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바로 정가은이다. 송혜교를 닮았다고 해서 시선을 집중시켰던 정가은. 하지만 케이블 채널에서 활약을 두드러지게 할 뿐 지상파 방송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특히 배우도 아닌, 가수도 아닌, 그렇다고 예능인도 아닌 그녀였기에 정체성마저 없었던 그녀가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한걸스>의 출연 계기로 그녀에게 예능 감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시아가 탈퇴한 빈자리에 그녀가 채워졌고 얼굴과 달리 허당 이미지를 뽐내며 몸을 사리지 않았다. 비록 그것이 싼티 난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녀에게 내숭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무한걸스 멤버들과도 융화되어 그들과 함께 무한걸스만의 독특한 매력을 뽑냈다. 그리고 드디어 <롤러코스터>에서 그녀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여자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에피소드에도 그녀는 남녀탐구생활을 위해서 기꺼이 한 몸을 바쳤다.
여자들의 화장실과 목욕탕 이용방법 등을 여자로서 차마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두 눈 깜짝하지 않고 해냈다. 그래서일까, 최근 케이블 채널 시청률 4%를 올리며 초대박 행진을 하고 있다. 그렇게 온 몸을 바친 결과 그녀는 <일밤>의 MC로 입성하며 지상파 MC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일밤>은 대대적인 개편을 앞두고 영입한 만큼 그녀의 재능이 인정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정가은이라는 정체성이 없던 그저 연예인이 불과했던 그녀가 예능인으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부딪혀야 할 산이 남아 있다. 실제로 재연배우, 케이블 전문 배우 등과 같은 출신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 지상파 방송으로 진출했지만 여전히 진골이라는 출신이 캐스팅에서 선뜻 선택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들에겐 그러한 제약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골이라는 계급을 완벽하게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그 다음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김희정은 좀 더 앞서 있는 배우로 <조강지처 클럽>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남긴 이후 광고까지 촬영하는 등 그야말로 진골 출신의 미천한 계급을 역전한 셈이다.
즉, 고세원과 정가은 모두 지상파에 발을 들여 놓았고 다시금 출신 성분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연기력과 재능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물론 그것을 인정받았다고는 하나 계급을 완벽하게 벗어날 만큼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진골보다 못한 성골을 뛰어넘을 그들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