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초기 발생했던 국민보도연맹원 등 요시찰 대상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을 경찰과 군 방첩대(CIC)가 조직적으로 주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는 26일 오전 서울 충무로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국민보도연맹은 좌익 인사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1949년 6월 정부에 의해 조직된 단체로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6월에서 9월까지 경찰과 군은 이들 보도연맹원에 대한 무차별 검속과 즉결처분을 단행하여 학계에서는 최소 10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국민보도연맹원 등 요시찰인에 대한 경찰의 연행과 구금조치는 1950년 6월25일 전쟁 당일 시작되었고, 전선의 남하에 따라 6월 28일 경부터 조직적으로 학살이 자행됐다"고 밝혔다.
한성훈 진실화해위 집단희생조사국 팀장은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 외에 군 방첩대(CIC)가 개입하여 요시찰인들의 과거 좌익 활동에 대해 취조한 뒤 그 정도에 따라 'A·B·C(D)'나 '갑·을·병' 등급으로 분류했으며, 'A(갑)' 등급으로 분류된 주요 간부들은 대부분 (전황이 급박하던) 7월 초순경, 나머지 예비 검속자들은 해당 지역에서 군과 경찰이 후퇴하기 직전에 학살됐다"고 말했다.
이날 진실화해위는 "얼마나 많은 보도연맹원들이 희생되었는지 전체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된 희생자 수는 4934명"이라고 밝혔다.
김동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이번에 조사, 발표한 사건들은 전체 보도연맹 사건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위원회) 직권조사 사건이기는 하나 신청사건 위주로 조사를 해서 미흡한 감이 있다"면서도 "사건 발생 59년 만에 정부조사로서는 최초의 체계적인 조사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상임위원은 "전국적으로 각 군 단위에서 적게는 100여 명, 많게는 1천여 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민군에게 점령되지 않은 지역이 희생자 가장 많아"
살해 형태로는 경찰이 트럭을 이용하여 창고 등에 갇혀 있던 보도연맹원을 외딴 곳으로 데려가 구덩이를 파게 하고 총살한 사례가 많았으며, 전황이 급박했던 군산 등지에서는 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던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발사하기도 했다고 김 상임위원은 말했다. 충북 등 일부 지역에서는 보도연맹원이었던 당사자가 체포를 피해 달아나자 대신 가족을 데려다 처형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위의 '지역별 추정희생자수 분포'에 따르면 전쟁 초기 인민군에게 점령된 서울에서는 보도연맹원의 희생이 없었으며 학살은 안양과 과천에서 시작돼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한성훈 팀장은 "(전쟁 기간 중) 인민군에 점령되지 않은 경남과 경북 일부 지역의 희생자가 가장 많았으며 국군이 후퇴하는 길목이었던 충북 청원 지방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충북 청원군에서 경찰에 의해 예비 검속되었다가 학살 직전 탈출해 목숨을 건진 김아무개(87) 할아버지가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김 할아버지는 "6일 동안 창고에 갇혀 있다가 공습이 시작되자 열려 있던 문으로 탈출했다"며 "당시 잡혀 있던 65명 중 내가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할아버지는 "(학살 현장이었던) 구덩이에서 삐삐선(군용 전화선)에 손과 발등이 줄줄이 엮인 희생자들이 나왔다"고 참혹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진실화해위,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 마련 권고그러나 보도연맹원의 예비검속과 처형명령을 내린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오랜 세월이 지난데다, 관련자들이 입을 열지 않고 있어 밝힐 수 없었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김 상임위원은 "당시 경찰의 사찰계나 군 방첩대는 가장 정치적인 기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최고위층 어떤 단위에서 명령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전쟁이라는 국가위기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국민의 인신을 구속하거나 처벌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근거와 절차가 있어야 한다"며 "당시 경찰과 군 방첩대 등은 임의로 예비검속한 구금자들을 집단 살해했다"고 지적했다. 또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법·제도적 조치 마련, 피해보상을 위한 배·보상법 제정, 화해와 국민통합을 위한 조치를 강구할 것 등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