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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음식, 네 입에 정말 안 맞을 거야, 게다가 너무 비위생적이어서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을 걸. 그러니 아무리 무거워도 각 사람당 라면 한 박스를 챙겨가는 게 좋을 거야. 죽지 않으려면 하루에 한 끼라도 라면으로 때워야 해."

한창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이미 다녀온 사람이 내게 해준 말이었다. 그는 아프리카에 있던 3개월 동안 10kg의 살이 빠졌다고 했다.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좀  기뻤다. 드디어 나도 살을 뺄 수 있겠구나! 부디 아프리카 음식이 내게 맞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름 귀국할 때까지 감량 5kg라는 목표마저 세우며 한창 들떠 있었다.

하지만 나, 니콜은 배고프면 돌이라도 씹을 식성을 가진 자가 아니던가! 나에겐 세상의 음식이 딱 두 종류뿐이다. '맛있는 것'과 '진~짜 맛있는 것'.

저렴한 내 입맛은 아프리카에 가서도 그저 빛을 발할 뿐이었다. 남들 모두 비위 상해서 못 먹고 못 눠서 앓아누울 때, 나는 늘 잘 먹고, 일어나자마자 왕성한 배변 활동을 해서 언제나 부러움 대상 1호가 되었다. 그래서 남들은 못 먹지만 나는 잘 먹었던 아프리카 먹을거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아프리칸 밥심의 원천, 우갈리

옥수수 떡덩어리에, 운좋으면 반찬이 곁들여 나오는 아프리카인들의 주식
▲ 우갈리 옥수수 떡덩어리에, 운좋으면 반찬이 곁들여 나오는 아프리카인들의 주식
ⓒ 이삭(giantyun)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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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건 꼭 우리나라 백설기 같다. 그냥 하얀색 떡 덩어리다. 하지만 백설기처럼 찰진 느낌은 전혀 없고, 달콤한 맛도 나지 않는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퍼석퍼석한 옥수수가루 뭉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프리카인들의 주식이기도 하다. 옥수수가루를 물에 풀어 약한 불로 오래 찌면 완성되는 요리다. 사실 풀 쑤듯이 옆에서 계속 휘저어주면 끈기가 생겨 좀 더 찰지고 쫄깃쫄깃한 맛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아프리카인들은 그런 것을 귀찮아하는 편이다.

역시 손으로 먹어야 제맛이다.
▲ 우갈리는 역시 손으로 먹어야 제맛이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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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농사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음식은 아주아주 귀한 것이다. 오랜 가뭄으로 이번에도 옥수수 농사를 망친 이들은 NGO 같은 구호단체에서 주는 옥수수 알갱이를 배급받아 하루에 한 끼 정도 이 우갈리를 해먹고, 나머지 끼니는 굶기 일쑤였다.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음식이라, 옆에 찬으로 양배추 같은 야채를 절인 음식이 나온다. 양념 육수를 많이 부어 국으로도 먹을 수 있고, 건더기를 건져 우갈리 위에 얹어 먹는 반찬으로도 사용된다.

일단 이 음식은 손으로 먹어야 제맛이다. 우갈리 한쪽을 크게 뜯어서 절인 양배추를 손가락으로 집어 올린다. 그런 다음 골고루 양념이 베일 수 있도록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 한 입에 쏙 넣는다.

사실 향이 역하지도,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도 아닌데도 이 음식을 꺼리는 이유는 단지 손으로 먹어서 매우 비위생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것을 주식으로 먹는 아프리카인들은 하나 같이 날씬하다. 물론 체형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아프리카인들이 팔 다리가 길고 매끈한 피부를 가진 이유는, 주식이 옥수수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2. 아프리카식 길거리 호떡, 만다지

밀가루반죽에 베이킹파우더만 넣어 튀긴 음식
▲ 만다지 밀가루반죽에 베이킹파우더만 넣어 튀긴 음식
ⓒ 후(2hottok)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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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가,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먹을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있는 음식, 그것은 바로 길거리 음식이다. 아프리카에서도 기름에 튀긴 고소한 도넛 등을 파는 길거리 음식이 매우 발달해 있다.

그중에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만다지'라는 우리나라 호떡 같은 음식이다. 우리나라처럼 질 좋은 밀가루에 고급 시럽이나 꿀이 들어가진 않는다. 그냥 밀가루를 반죽해 아무것도 넣지 않고 기름에 튀긴다. 가끔 우리나라 사람이 만들 때야 위에다 설탕이라도 뿌리지, 이들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튀긴 밀가루 덩어리를 잘도 먹는다.

아이들을 위해 만다지 80개를 만들었다.
▲ 만다지 만들기 아이들을 위해 만다지 80개를 만들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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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홈스 고아원 행사가 끝나고 여유로운 오후에 우리는 만다지 파티를 열었다. 생각보다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과자라 아이들에게 2개씩 돌아가고도 남을 만큼 80개 정도를 4시간 만에 후딱 만들었다. 크기와 양에 민감한 아이들이 싸우지 않도록 최대한 같은 모양과 같은 크기가 나올 수 있도록 반죽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래간만에 나온 간식에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한국에서 만약 이 음식을 먹었다면 퉤퉤, 하고 뱉어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나 역시 군것질거리가 흔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는 생밀가루 맛밖에 나지 않는 과자가 그렇게도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3. 살아 숨쉬는 아프리카 소막창

숯불에 구워 썰어서 도마 째로 건네주는 아프리카 소막창
▲ 막창 숯불에 구워 썰어서 도마 째로 건네주는 아프리카 소막창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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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도 곱창이나 막창 같은 내장을 불에 구워 파는 식당이 있다. 고기에 환장하는 우리들은 그곳을 찾아 마이마히유 시장을 헤맸다. 아주 작은 간이식당에 정말로 소막창을 숯불에 굽고 있었다. 숯불에 구운 막창을 총총 썰어서 도마째로 우리에게 주면 우리는 그것을 손으로 집어 후후 불어먹었다. 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데, 흭이 한마디 했다.

"막창을 제대로 씻지 않았어. 너무 더러워 다 똥으로 가득 찼다구. 이거 다 소똥이야."

누가 더 많이 먹을까 봐, 입에 한가득 넣고 우물거리고 있는 내게, 흭은 계속 똥을 외쳐댔다. 옆에 사람들도 하나 둘,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했지만, 돈 주고 산 아까운 소막창을 남길 수 없어서 나는 내내 똥을 외쳐대는 흭 옆에서 꾸역꾸역 그것을 다 해치웠다. 그 뒤로 아프리카 거리를 지나다가 소똥이 보이면 나는 웃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 얼마 전에 저거 되게 많이 먹었어."

소똥이 가득 든 음식을 그대로 입으로~
▲ 아프리카 막창 소똥이 가득 든 음식을 그대로 입으로~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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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소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이 생각이 난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의 식성은 결국 소똥마저 맛있게 잘도 먹은 것이다. 그런 내가 어찌 감량 5kg 목표를 이룰 수 있었겠는가. 아프리카 있는 동안 나의 몸무게는 난생 처음 보는 숫자를 기록하며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 이 음식들이 생각난다. 니맛도 내맛도 없는 우갈리와 만다지, 그리고 소똥으로 가득했던 막창. 추억이 깃들어 더 달콤했을지도 모를 아프리카에서의 먹을거리들이다.

글. 니콜키드박

덧붙이는 글 | 2009년 여름, 케냐와 탄자니아 여행기입니다.



태그:#아프리카, #케냐, #음식, #니콜키드박,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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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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