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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시집오실 때 이불을 쪽물 들여 해오셨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우리들은 그 이불을 덮고 자랐다. 이불들은 모두 윗부분만 붉은 색이고 나머지 아랫부분은 남색 빛이 진한 이불이었다. 어린 시절에 이불마다 왜 윗부분만 붉게 만든 것인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어머니께서 이불마다 윗부분을 붉은 색으로 한 것은 만일 전쟁이 나면 그것을 뜯어서 아군임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들려주셨다. 외침이 잦은 나라라 전쟁을 대비해서 그렇게 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쪽물들인 옷감
▲ 고운 쪽물 쪽물들인 옷감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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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물들인 옷감
▲ 고운 쪽빛 쪽물들인 옷감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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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의 남색 빛은 나중에서야 그것이 쪽물들인 것임을 알았다. 쪽염색은 그렇게 우리 생활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편리한 화학제품들이 나오면서 이제 쪽물들인 옷이나 이불들은 특수한 사람들의 것이 되어버렸다. 또 전통을 살리려는 일환으로 최근 들어 천연염색, 쪽염색 강좌가 곳곳에서 열리고는 있지만 일부러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배우지 않으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화가 되어버렸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한국 중요무형문화재인 염색장(115호) 정관채씨 댁을 찾았다.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나주 가는 길에 그냥 찾아갔는데 운 좋게 부부가 함께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가 평생 쪽물을 들이며 살아온 덕분에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정관채씨는 사실 어머니가 무형문화재여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어머니 대신 물려받을 수 있었으니 자칫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을 우리의 무형문화재가 대를 물려 이어질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더구나 그는 아직 젊고 현직에서 교육을 하고 있으니 쪽염색을 후대에 계승시킬 시간도 충분해서 우리 문화를 살려 나가는데 안성맞춤이다. TV광고에서 한 금융회사의 모델로 나온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연예인이 아닌 무형문화재를 광고모델로 기획해 신선해보였다.

현재의 무형문화재들은 나이가 많은데다 어렵고 힘들어서 배우려는 후학들이 없어 끊어질 위기에 처해있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쪽염색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목포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대구 효성 가톨릭대학원에서 쪽염색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영산포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올 봄에는 정가마을 입구에 쪽염색 체험장을 열었다. 후학들에게 우리 쪽염색을 잊지 않고 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좋은 환경에서 교육할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는 아직 젊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열정을 가지고 쪽염색의 보급에 힘을 기울이며 염색장의 길을 가고 있다.

쪽물들인 천으로 만든 작품
▲ 쪽염색 작품 쪽물들인 천으로 만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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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물들인 천으로 만든 작품
▲ 쪽염색 작품 쪽물들인 천으로 만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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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둘러보니 쪽나무를 심어놓은 넓은 터와 아름이 넘는 커다란 항아리들, 그리고 염색작업에 필요한 굴 껍질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쪽은 일년생 풀로 봄에 씨를 뿌려 음력 팔월경 새벽이슬이 내리기 전에 쪽을 베어 사용한다고 한다. 생가로 들어가니 사방에 쪽물 들여 만든 소품들이 앙증스럽게 걸려있었다. 쪽물들인 천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맵씨 좋은 안주인의 한 땀 한 땀 바느질 솜씨로 곱고 앙증맞았다. 젊은 부부가 함께 한 길을 가는 모습이 참 평화롭고 넉넉하고 아름다워 보여 그지없이 부러웠다.

쪽물들인 천으로 만든 방문 장식
▲ 아름다운 방문 쪽물들인 천으로 만든 방문 장식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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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는 호남의 중심지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나주목(羅州牧)으로서 모든 문화가 모여 꽃을 피웠던 곳이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지리적 환경은 쪽을 재배하기에 적합하여 오래 전부터 쪽염색이 발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 옛날 어떻게 쪽을 재배할 생각을 맨 먼저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문화에 지리적인 요건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 번 음미하게 되었다.

쪽색은 쪽빛 하늘 쪽빛 바다라는 말처럼 남색(藍色)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 쪽염료는 다른 천연염료와는 달리 자연에서 바로 재현할 수 없다는 것에 그 가치가 있다고 한다. 천연염색법 중 가장 어렵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는 쪽염색은 자연염료와 미생물의 발효작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주의 많은 지역에서 쪽염색을 해 왔지만 쉽고 편한 화학염료가 등장해 성행하면서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나주 다시면 샛골과 문평면 명하마을에서 겨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빠르고 편한 것을 선호하니 불편하고 힘들면 자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염색과정을 살펴보면 석회 만들기(구운 굴 껍질) - 항아리담기 - 석회 넣고 당그레질 - 쪽염료 분리 - 잿물 만들기 - 쪽염료 배합 - 6일후 염색시작(7∼10회 반복) - 맑은 물에서 잿물빼기 - 완성품 만들기 순이다. 쪽은 물들이는 횟수에 따라 연한 옥색에서부터 진한 감색까지 색이 다양한데 그중 보라색이 약간 섞인 남색을 가장 아름다운 쪽빛이라고 한다.

회수에 따라 다른 쪽빛 색상
▲ 쪽색상표 회수에 따라 다른 쪽빛 색상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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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의 한쪽 벽에는 물들이는 횟수에 따라 쪽빛이 얼마나 다양한지 미술시간에 사용하는 색상표처럼 만들어 걸어놓아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쪽염색이 이토록 아름답고 다양한 색상을 내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태그:#쪽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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