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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외무고시에 합격하고도 경찰조직에 투신하여 총수 자리에까지 올랐고 마침내 최대 공기업인 철도공사 사장에 임명되었다.

허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자신을 허철도(許鐵道)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직원수만 3만 명이 넘는 거대 공기업 사장은 고도의 경영능력을 요하는 자리이고 특히 내부 조직장악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아마도 정권핵심부는 대표적인 '강성노조'인 철도노조를 길들여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철도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경찰청장출신이 철도공사 사장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을 때 그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비전문가인 이철 사장이 취임했을 때와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되는 경우이다.

 

파업을 촉발한 '단협해지' 초강수, 악수중의 악수

 

11월 24일 철도노사는 심야교섭을 진행했다. 공사 측은 170개 단체협약 조항 중 120여 개의 개악안을 들고 나왔고 성과없이 끝났다. 놀라운 것은 25일 새벽 팩스로 '단체협약해지' 통보를 하고 같은 날 오전 10시 허준영 사장이 기자회견을 자처해서 '불법파업 엄단'을 공언한 것이다.

 

아직 파업에 돌입하지도 않았고 '필수유지업무'를 준수하는 합법파업을 예고한 상태에서 '불법운운' 한 것은 바로 당일 오후 충남지방노동위원회가 철도파업의 합법성을 확인하는 결정서를 송부함으로써 무식한 발언임이 확인되었고 '파업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생색조차도 내지 못한 채 엉뚱한 여론전을 시도한 것이다.

 

아마도 허 사장은 억대연봉, 신의 직장, 철밥통 따위의 세간의 여론을 환기하고 싶었겠으나 철도공사 수장으로서 자기식구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철도종사자들은 격분했다. 5000명 이상을 해고하겠다고 했다. 임금인상이 아니라 임금체계 개편이 중요쟁점인데도 오직 강성노조만을 탓한 것은 역으로 역대 최대인원의 파업참여를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허 사장은 이미 적자공기업이라면서 부실덩어리인 인천공항철도 인수를 확정해버렸던 전력이 있는 바 초기 조직장악력을 심각하게 의심받고 신뢰를 잃어버린 상태인지라 파업을 앞둔 허 사장의 잇따른 돌출, 강경 언행은 이미 안팎으로 질타를 받게 된다.

 

대통령의 질타와 공사 경영진의 오기

 

파업 3일째인 28일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 마무리발언을 통해 '화물운송에 극심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데 대해 걱정'이라며 '파업이 이미 예견된 상황인데 대비가 너무 소홀했던 것 아닌가'라며 질타했다고 한다.

 

우리는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더 강강한 대응'을 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사태수습에 최선을 다' 하라는 것인지 애매하기는 하지만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임명된 허준영사장에 대한 강한 질타임에는 분명하다.

 

철도공사는 '화물운송 차질'이 지적되자 부랴부랴 새마을, 무궁화호를 증편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화물연대 등이 철도파업으로 인한 대체수송 거부를 선언하고 나서서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파업장기화 부추기는 대체인력 투입

 

철도파업의 장기화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합법으로 규정된 철도파업에 대하여 정부나 공사가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많지 않다. 검찰은 집행부 170여 명에 대하여 수사를 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올 한해동안 진행된 부산지하철 파업, 철도기관사 파업 등의 선례를 보면 사법처리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말그대로 여론을 의식한 엄포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대체인력투입과 관련된 것이다. 현행법은 합법적 쟁의행위에 대한 대체인력 투입은 불법이다. 철도공사는 퇴직자, 군병력을 포함하여 5600명 이상의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운행차질이 없도록'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전산차질, 선로진입 사고 등 크고 작은 사고는 물론이고 여객-화물 전반에 걸친 운행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나아가 이들 대체인력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노조가 합법파업을 하는 이상 파업으로 인한 운행차질, 대체인력의 임금 등 각종 손해에 대한 청구를 할 수는 없다.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이같은 손실에 대하여 철도공사는 책임질 수밖에 없다.

 

이미 노조는 허준영 사장 등 경영진에게 부당노동행위로 고소고발을 해 놓은 상태인 바 철도공사 경영진은 민사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형사적 책임도 져야할 처지이다.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만이 최선의 길

 

'외압을 막아주는 우산사장 허철도'라고 불리길 원했던 허준영 사장은 이대로 가면 100년 철도역사와 60년 철도노사관계에서 최악의 CEO로 기록될 것이다. 허 사장은 내부여론은 외면한 채 외압을 등에 업고 노조탄압에만 골몰해 왔고, 허위사실로 철도직원들의 자존심을 철저히 무시했고 퇴로없는 일방통행으로 철도공사의 운명은 물론 온국민의 우려를 낳고 있다.

 

6일째로 접어든 철도파업은 이미 사상최장기 투쟁으로 되었고 지금 상태라면 더 길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해결의 실마리는 오직 대화에서 찾아야 한다.

 

스스로의 책무를 망각하고 노조길들이기에만 골몰하는 경찰청장 출신 사장 허준영씨는 지금이라도 그간의 무개념과 무지, 오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는 개인으로서 헛철도(虛鐵道)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는 것은 물론 철도발전을 가로막은 원흉으로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입니다.


#운순조조#철도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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