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가 가을의 시작이고, 또 언제가 가을의 끝인가. 한 해를 4등분해 칼로 두부 자르듯 계절을 나눌 순 없겠지만, 달력을 달랑 한 장만 남겨둔 11월 말 즈음이 가을과 겨울의 경계가 아닐까 싶다. 반팔 옷차림에서 갑자기 털옷을 꺼내 입어야 하는 얄궂은 기후 탓에 '뚜렷한 사계절'은 이미 말조차 사라지고 '두 계절'만 남았지만, 그래도 가을은 유난히 그 끝이 길다.
11월의 마지막 주말, 차분하게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조그만 절을 찾았다. 전라북도 완주의 깊은 산 속에 요새처럼 숨은 불명산 화암사다. 부끄러운 듯 안마당을 감춘 절에도 갈색의 쓸쓸한 가을빛이 그윽하게 담겼지만, 역시 화암사의 늦가을 정취는 절에 오르는 20여 분의 고즈넉한 길에 있다.
가을은 색깔로 왔다가, 소리로 간다. 울긋불긋 온 산을 물들일 단풍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바싹 마른 낙엽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을을 보낸다. 해마다 반복되는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만든 달력의 날짜로 결코 대신해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알겠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화사한 때깔을 뽐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을 나무는 그 잎을 모두 떨군 채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때때로 불어오는 스산한 가을바람마저도 나무의 존재를 무시하는 걸까. 나뭇가지가 바람에도 미동조차 않고 돌 마냥 굳은 듯 서있다.
차가운 철계단 위에 다닥다닥 붙은 예술작품
나무는 옷을 벗었지만,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에 지글거렸던 돌길은 수북하게 낙엽 옷을 입었다. 길의 움푹 팬 곳조차 낙엽이 가득 덮이다보니 발을 헛딛기 일쑤였다. 겨울에 소복하게 눈 덮인 들길을 걷는 그런 느낌이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뽀드득거리는 눈길과는 달리 발길에 서걱거림이 전해진다는 것뿐이다.
계곡은 이미 말라 버려 여름내 돌돌거렸을 물소리는 들을 수 없고, 물 흐른 움푹 팬 자취만 남았다. 길을 벗어나 그 계곡을 따라 올라가도 절에 닿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삭막하기 그지없는 그 길을 여름의 신록이나 가을의 단풍처럼 여전히 화사하게 가꿔주는 게 있다. 이 절과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가며 쓰고, 그리고, 깎고, 다듬어 걸어놓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절에 오르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차가운 금속판이 아니라 나무판에다 정성스럽게 깎아 만든 조각이다. 그 주변에 앙증맞은 그림까지 그려놓아 구경하며 천천히 걷노라면 조금도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다. 길가 평평한 바윗돌마다 누군가 소원을 빌며 돌멩이를 정성껏 쌓아올린 돌무지 탑과 함께 이 길에 살가운 사람 냄새를 풍겨주고 있다.
뗏목처럼 짠 나무다리를 건너고, 자연 그대로인지 사람이 만든 것인지 구별되지 않는 돌계단을 지나면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만나게 된다. 아이들 키 높이의 울타리를 두른 철 계단인데, 절 안마당에 들어서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다. 계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폭포가 걸려 있었음직한 낭떠러지다. 만약 이게 없었다면 가파른 벼랑에 매달리듯 올라야 했을 터다.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라 해도, 숲과 계곡, 바위를 갈라놓아 여느 곳 같으면 흉물스럽게 느껴졌을 법도 하건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길'로 여겨진다. 외려 없어서는 안 될 절의 일부이며, 옷매무새 가다듬고 절에 드는 마지막 관문이다. 계단을 다 올라서야 비로소 절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계단을 한달음에 오를 수는 없다. 가팔라서가 아니라 난간마다 다닥다닥 걸려있는 미술 작품들 때문이다. 거기에는 그림도 있고, 시도 있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낙서도 있다. 또, 신록의 봄과 시원한 여름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있고, 꼭 이맘때쯤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작품도 많다. 난간의 '미술 전람회'는 철 계단의 차가운 느낌을 따스하게 덥혀주려는, 이 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려다.
바람은커녕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절 안마당
계단을 올라서자 바위의 넓고 평평한 그곳에 화암사가 있다. 바위가 꽃잎이라면 절이 꽃술자리에 안온하게 들어앉은 모양새다. 꽃바위(花巖)라는 이름이 까닭 없이 붙여지진 않았을 게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곳엔 인적조차 드물어 대낮인데도 계절의 쓸쓸함이 더해져 적막할 지경이다. 절을 지키는 개의 컹컹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화암사의 상징은 중심 법당인 극락전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하앙식 구조의 목조 건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웃한 중국과 일본의 목조 건축에서는 흔히 나타나는 양식으로, 한때 일본 학계에서는 중국의 문물이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직수입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돼 왔던 것이다.
건물의 크기에 비해 크고 육중한 지붕을 떠받치려면 없어서는 안 될 구조물이지만, 건물의 정면만 봐서는 쉽게 찾아낼 수 없다. 극락전을 순례하듯 한 바퀴를 돌아 건물 뒤편에 서야만 대체 하앙이라는 게 뭔지를 눈치 챌 수 있다.
절은 지금 겨울 준비로 부산하다. 극락전과 마주하고 선 우화루는 현재 보수 공사 중이고, '입을 경계하라'는 뜻의 철영재 안에는 바알간 홍시가 익어가고 있다. 또, 주변엔 겨우내 땔감으로 쓸 간벌된 나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데, 언뜻 보면 동그란 나이테의 문양이 미술책에 나오는 몬드리안의 추상화와 닮았다.
절에 오르는 동안 내내 제법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걸었는데, 절 안마당에 들자 바람은커녕 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절이 성벽이 되어 드는 바람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햇볕이 안마당에 들 때면, 네 건물이 서로 어깨동무하듯 웅크리고 앉아 가운데에 놓인 화롯불에 손 녹이고 있는 것 같다.
적묵당의 넓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따스한 늦가을 오후의 볕을 쬐며 고요한 산사의 정취를 만끽한다. 초록빛을 찾아볼 수 없는, 춥디 춥게 맨살을 드러낸 불명산과는 달리 화암사는 아직 가을을 보내지 않았다. 매서운 칼바람이 들지 않으니 절 안마당에 눈이 쌓일 때라야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화암사의 가을을 배웅하며 나서려니 누군가가 인기척하며 부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주인이 누군지 알 길 없는 극락전 옆 부도 한 기가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도 역시 시나브로 가는 가을이 섭섭했던지 머리에 낙엽을 잔뜩 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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