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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빨간 열매가 영롱하다."

빨간 열매가 시선을 잡는다. 초록의 이파리 또한 독특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파리의 끝부분은 날카롭다. 내리는 비에 의해 열매에는 물방울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빨간 열매의 색깔과 초록의 이파리 그리고 방울지고 있는 물방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 하나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없어서 더욱 더 정감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롱한 모습
▲ 빨간 열매 영롱한 모습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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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가시나무.
크리스마스카드에는 어김없이 들어가는 문양이다. 뾰족한 이파리의 모습이며 빨간 열매는 한해를 보내는 성탄 카드의 디자인으로 굳어져 있다. 카드에 그려져 있는 무늬를 보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은 뾰족한 가시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호랑가시나무를 바라보게 되니, 여러 생각이 겹쳐진다.

나무 키는 2~3m이고 가지를 많이 있는데, 가장자리에 1~20개의 가시가 있다. 꽃은 4월부터 5월에 걸쳐 5~6개가 잎겨드랑이에서 무리지어 핀다. 열매는 10월 하순경 둥글고 지름이 12㎜ 미만인 주홍색으로 익어 이듬해 5월까지 달린다. 잎의 톱니가 가시이므로 호랑이처럼 무섭다는 의미에서 '호랑 등 긁기'·'호랑이발톱나무'라고도 한다. 감탕나무속에 120여 종이 알려져 있지만, 원예품종을 포함하면 500종 이상이 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 비는 내리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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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은 모습으로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위봉사다. 산사에 어울리지 않는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의심이 간다. 산사에 호랑가시나무가 있다고 하여 잘못될 일은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분별심 때문이리라.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있어 의식하지 않아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호랑가시나무를 보게 되니, 올해도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무엇 하나 성취한 것이 없는데, 속절없이 한 해가 멀어지고 있다. 어찌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야속한 마음이 앞설 뿐이다.

서두르다 놓친 것들
▲ 조급한 마음 서두르다 놓친 것들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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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시작하면서 다짐을 하던 때가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올 해에는 이 일만큼은 꼭 해내고 말 것이라고 마음을 굳게 다졌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허망하다. 그렇다고 하여 빈둥빈둥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임하였다. 노력도 하였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였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없으니, 난감하다.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니,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던 모습만이 어른거린다. 해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서고 있어, 바삐 움직이기만 하였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렇지만 해낸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참으로 허망하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배신감이 앞서게 된다. 그렇게 열심히 하였는데, 아무 것도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일을 망친 이유 중의 가장 큰 것은 욕심이 너무 앞섰다는 점이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발버둥만 치고 있었다. 그렇게 되니 자연 내실을 충실할 수가 없었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차근차근 절차에 따라 하나하나 이뤄나가야 하였다. 그런데 욕심을 먼저 앞세우게 되니, 내실을 다질 수가 없었다.

채워가며
▲ 알찬 오늘 채워가며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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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너무 서둘렀다는 점이다.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럼에도 성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발만 동동거렸을 뿐이다. 악순환이었다. 느림의 미학을 알지 못하고 바쁘게 서두르게 되니, 성취하는 일은 없었다. 마음만 바빴지, 실제로는 일의 진척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시나브로 이뤄낼 수 있다는 느림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 것이다.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을 발휘할 때에는 바닥을 칠 때라고 하였던가? 조바심이 앞서고 있었으니, 힘을 제대로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두르기만 하였으니, 자연 웃음을 상실하였다. 유머나 위트는 사라지고 삶이 건조해졌고 거칠어졌다. 일의 성취는 유머와 재치 속에서 피어나게 되어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바쁘게 서두르기만 하였으니, 어리석음의 극치다.

호랑가시나무의 빨간 열매를 바라보면서 한 해를 돌아다본다. 지나간 날들은 이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새 해를 알차게 채워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느림의 미학을 깨닫고서 느림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겠다. 작은 일에서 커다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기다리며
▲ 새해를 기다리며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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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산사에서 호랑가시나무를 바라보면서 내 삶을 조견해본다. 허점투성이고 실수를 밥 먹듯 하는 나이지만, 소중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해줄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충실하게 채워서 세상의 소금이 되고 싶다. 호랑가시나무 열매처럼 다름 사람에게 빛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호랑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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