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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노동조합의 총파업 찬반투표 개표 장면.
 KBS 노동조합의 총파업 찬반투표 개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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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KBS노동조합(위원장 강동구)이 지난달 26일부터 2일까지 총 7일간 벌인 '이명박 특보 김인규 퇴진 및 방송장악 분쇄 총파업 투표'는 재적 조합원의 과반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KBS 노동조합의 파업 찬반투표 역사상 부결되기는 지난 91년에 이어 두번째다.

2일 밤 공개된 개표결과에 따르면, 이번 총파업 찬반투표에 참여한 투표율은 84.5%로 전체 재적 조합원 4203명 중 3553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조합원 10명 가운데 2명 이상은 총파업 찬반투표에 참여했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2025명, 48.18%가 총파업에 찬성했고, 나머지 1470명은 반대, 58명은 무효표를 던졌다.

"전혀 뜻밖의 결과... 원인 분석도 어렵다"

과거엔 재적 인원의 25%만 넘기면 파업이 가능했지만 개정된 노동법은 재적 인원의 과반 이상을 얻어야 파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산술적으로만 분석한다면 약 2%의 부족으로 총파업이 가결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할 수 있다.

당초 KBS 노동조합은 1일까지 집계된 투표율이 72.5%로 알려지면서 파업 찬성도 압도적으로 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역 투표율이 90%로 높게 나타나는 반면, 본사 투표율이 62%로 저조한 것으로 알려져 노조는 막판 하루 동안 투표독려활동에 적극 나선다는 전략도 세웠다.

그러나 이 같은 노동조합의 기대와 달리 투표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고, 노조는 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혀 뜻밖의 결과라서 현재로서는 정확한 분석을 내놓기도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최성원 KBS 노동조합 공정방송실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며 "원인분석을 좀체 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최 실장은 "MB 낙하산 사장 퇴진투쟁의 일환으로 노조가 꺼낸 총파업 카드가 부적절하다는 것이 조합원의 여론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매우 당혹스럽지만 향후 활동 로드맵을 곧 제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합원 여론으로 총파업 반대 입장이 확인됐지만 그렇다고 김인규 사장 퇴진투쟁을 중단하지는 않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최 실장은 "노조는 앞으로도 김인규 사장의 출근저지투쟁과 위원장 단식농성을 계속 이어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KBS 노동조합이 총파업 찬반투표 개표를 하고 있다.
 KBS 노동조합이 총파업 찬반투표 개표를 하고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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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높았는데... 상식 깬 투표 결과

총파업 부결 소식이 긴급 타전되면서 KBS 구성원 사이에서는 여러 원인분석이 나돌고 있다. 이번 파업 부결은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조합원의 불신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과 MB정권에서 KBS에 내보낼 사장군 가운데 그나마 김인규 사장이 낫다는 내부의견이 일정 정도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김인규 사장이 선임됐을 당시 즉각적으로 파업에 나서지 못하고 질질 끌었기 때문에 압도적인 파업찬성을 이끌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돈다. 시기적으로 노동조합이 느슨하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노조가 파업을 적극적으로 이끌려고 했던 것이냐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KBS 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노조 활동에 대한 불신이 이번 총파업 투표에 반영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에 대해 노조집행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총파업 투표는 높은 투표율과 반대로 파업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도 핵심 포인트로 짚어볼 만하다. 대개 투표율이 높으면 파업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번 KBS 노조의 총파업 투표는 이런 상식을 깼다.

김인규 KBS사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취임식이 열리는 여의도 KBS본관에 도착하고 있다.
 김인규 KBS사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취임식이 열리는 여의도 KBS본관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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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김인규가 낫다?

이 같은 상황을 놓고 일각에서는 조직적인 반대표 운동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분석하기도 한다. 파업에 반대하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행태를 보이나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 파업반대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조직적인 파업반대 여론몰이가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김인규 사장이 후보로 낙점됐을 때부터 KBS 내부에는 '차라리 김인규가 낫다'는 여론이 조성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병정' 별명을 갖고 있는 이병순 사장의 연임이나 강동순 후보보다는 김인규 사장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일은 잘할 것이라는 평가와 분석이 그것이었다.

KBS 내부 몇몇 직군에서는 MB정권에서 특별히 정치적으로 색깔이 없는 사장이 오기 어렵다면 차라리 김인규 사장이 낫다는 주장이 나돌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파업반대 여론에도 이 같은 주장이 내포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최성원 실장은 "김인규 사장을 받자는 사내 여론이 이번 파업반대여론에 포함됐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구성원 가운데 일부는 파업이나 대량해고 사태로 내부혼란이 빚어진다면 KBS의 숙원사업인 수신료 인상 등 여러 정책들이 난항을 면치 못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해 파업반대를 피력한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노조 집행부의 구속과 해고, 사장실 점거농성 등으로 대규모 해직사태가 날 것을 우려해 예방용으로 파업반대를 피력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언론노조 "저항 않는 KBS, 역사의 심판 받을 것"

어쨌든 이번 파업찬반투표에서 파업이 부결됨에 따라 KBS의 MB특보 출신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은 중대고비를 맞게 됐다. 내부에서 MB특보 출신 사장에 대한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되면서 오히려 외부적으로 KBS에 대한 시민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커졌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KBS 스스로 부당한 공영방송 사장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면 시민이 먼저 KBS를 공격하게 될 것"이라며 "내부의 소극적 형식적 저항으로는 MB특보 출신 사장을 결코 막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 위원장은 "이제 KBS는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됐다"며 "앞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낙하산 사장 저지투쟁을 즉각적으로 벌이지 못하고 총파업을 1주일이나 미뤄둔 KBS 노동조합 집행간부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KBS 노동조합은 이번 파업이 부결됨에 따라 3일 오후 2시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열고 이번 총파업 투표결과에 따른 향후 투쟁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노동조합 중앙위원과 비대위원들을 중심으로 사내여론을 종합한 뒤 '노조 책임론'에 대한 대응도 정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김인규 사장은 3일로 예정된 대시청자 담화를 무기한 연기했다. KBS 홍보팀은 2일 밤 긴급문자메시지를 보내 노조의 파업부결로 사장의 담화를 연기한다고 알렸다.

99년 방송법 개정반대 이후 10년 만에 재연될 예정이던 MB 특보 출신 사장 퇴진을 위한 KBS 총파업은 내부 구성원들의 반대여론에 밀려 결국 '불발의 역사'를 쓰게 됐다.


태그:#KBS 노조 총파업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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