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9년,한해에 대한 단상

●거리마다 목도리와 털옷의 물결! 겨울로 바짝 들어선 시점이다.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내 집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는 계절! 인간이면 누구나 꿈꾸는 아늑한 행복을 일구고 싶은 욕망, 어쩌면 지난하고 고달픈 상처의 연속이지만 그 꿈이 있기에 걸어가는 과정이 행복한 인생을 누구나 소망할 것이다. 2009년의 마무리 시점,1년간의 자신의 행보를 되짚어보면서 꿈에 도달하기까지 행복했던 여정을 지나왔는지를 짚어보고, 다가올 새해에의 희망을 다시 꿈꾸어보자. 그리고 과연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행복>Happiness

2007년

허진호 감독

임수정, 황정민 주연

2007 청룡영화상 감독상

 

일상의 섬세함을 조심스럽게 집어내서 서랍 속의 오래 묵은 소포지로 감싼 선물 같은'허진호표' 멜로중 하나인 이 작품에는 으레 그래왔듯 세밀한 시선이 곳곳에 배어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외출>그리고 최근의 <호우시절>에 이르기 까지 일상 속 소시민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그 한켠에 자리잡은 질문이 이 영화에 숨어있다. 

 

이 영화<행복>은 삶에 메마른 이들, 혹은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촉촉한 단비를 내려줄 것이다. 더불어서 지금 ,겨울 초입에서 다시 보는 이 영화는 마음속에 켜 둔 따뜻한 불빛 하나를 향해 가는 지친 나그네의 발걸음에 하나의 물음을 제시해 줄 것이다.

 

 

영화 속으로

 

생각 없이 현재만 쫒아서 살던 한 사내, 영수. 젊음의 거리에서 친구와 동업하던 화려한 클럽이 불시에 망하고, 애인의 이별 통보마저 이어지자 이참에 앓고 있던 간경변이나 치료할 겸 시골 요양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어본다. 한없이 차가 달려서 도착한 곳은 먼지 풀풀 날리는 길에 구멍가게 하나만 달랑 놓여진 촌구석이다. 건들거리며 음료수를 먹던 영수는 가게 앞 평상에서  촌스러운 차림새의 여자 하나와 마주친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희망의 집'에 도착했을 때, 아까의 그 여자를 또 만나게 된다.

 

여자는 은희(임수정)라는 이름을 가진 폐질환 환자였고, 8년 동안 '희망의 집'에서 살며 식사 일을 거들고 농사를 도우며 자신의 요양도 겸하고 있었다. 외부와 고립된 자연 속에서 유일한 희망인 '건강'을 찾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그곳 환자들은 그 삶에 나름 만족하며,자신들의 울타리와 그 안에 자리한 서로 비슷한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영수도 차츰 정 많은 장난꾸러기 아저씨들 틈에서 아웅다웅 살다보니 요양원 생활에 익숙해지려던 참이다. 그리고 한번씩 있는 단체 포크댄스에서 빙 돌아가며 짝이 바뀔 즈음 은희가 댄스 파트너가 되면 알수 없이 설렌다. 그런 영수가 은희도 싫지는 않다. 오히려 그녀가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더욱 욕심을 부려서는 같이 살자고 한다.

 

결혼이란 구속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현재의 행복을 둘이서 나누며 죽는 날까지 재밌게 살아보자는 은희의 말은 또 다른 '희망의 집'을 꿈꾸게 하고 그들은 언덕배기의 시골 농가를 얻어서 함께 밥 먹고 웃으며 자신들이 어쩐지 너무 행복한 '그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에 겨워서 웃음이 난다. 여자의 등쌀에 장바구니 들고 시장보러 가며 '천원만 더줘'라고 애교 섞인 투정도 부리는 평범한 삶을 살면서, 영수는 '이것이 희망의 전부이고 행복의 표본일거야' 라는 스침도 생긴다.

 

 

그러던 중 예전 애인(공효진)과 영수의 친구가 함께 찾아온다. 옛애인은 다시금 영수에 대한 미련이 생긴 참이었고 얼마 뒤 영수는 서울로 그녀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고 숨쉬던 화려한 도시와 생활을 다시 보게 되자 시골 생활이 갑갑해 지기 시작한다. 은희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와 봐야 아픈 몸으로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현실과 재미도 없는 시골 생활이 이어질 뿐이라는 사실이 짜증난다. 그러다 보니 은희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보기가 싫어진다. 더불어서 얼른 돈을 벌어야겠다는 열망만 커진다. 그래서 여자의 병도 고치고 자신도 남자답게 멋지게 살고 싶다.

 

"너 우리나이에 노후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 자그마치 4억은 있어야 돼."

영수는 삶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처져서 지낼 수 없다는 판단으로 열의에 들떠서 말한다. 서울 갔다 온 뒤로 그는 행복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생겼다. 언제까지 목빼고 살아갈 순 없다. 자신의 병도 여자의 병도 돈이 있어야 고칠 것 아닌가?언제까지 어린애 소꿉놀이로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생각하니 마음이 급하다.

 

"난 그런 거 몰라. 그만한 돈이 왜 필요해, 욕심 없으면 돈 없이도 살수 있어."

은희는 시큰둥한 얼굴로 밥을 퍼먹는다. 자신이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환자이기에 그녀에겐 기대나 목표보다는 현재에 마음 편한 것이 곧 행복이다. 그녀와는 더 이상 대화의 진전이 없다고 느낀 순간, 영수는 자신 혼자라도 행복이란 놈을 찾고 싶은 욕구가 끓어오른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허구헌날 촌구석에서 지질이 궁상떠는 은희가 더더욱 미련스러워 보이고 싫어진다.

 

"야, 넌 밥 천천히 먹는 거 지겹지 않냐? 난 지겨운데."

그리곤 날이 갈수록 어긋나는 관계. 영수는 급기야 술먹고 집에 와선 헤어져 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눈물로 억지를 부리다가 화를 내며 달래도 봤다가 더 이상은 힘도 맥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은희는 영수를 떠나보낸다.

 

서울로 돌아온 영수는 다시 예전처럼 술 마시고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며 광란의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돌보지 않는 몸에 자신의 병이 점점 깊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던 중 은희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 비통해진 영수. 눈 내린 벌판에서 은희의 유골을 감싸고 절규한다. 행복을 찾으려고 서로가 헤어졌는데 오히려 불행이 더 일찍 찾아온 기분에 그는 애닯기만 하다.

 

행복이 뭐길래

 

태어난 이상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 때론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남들처럼 살면 그게 행복이겠지' 싶어서 남들이 하는 걸 따라해 보기도 한다. 남의 행복을 제 것인 양 빼앗아보기도 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향해서 몰두하는 그 누군가의 행복해질 권리조차 뺏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선 행복이 무엇이라 말했나? 적어도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로 행복을 정의내리진 않는다. 오히려 '대체 행복이 뭐길래?' 라는 물음을 관객에게 던져본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서 '가도 가도 결국은 쓰러지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수긍하는 듯이도 보인다. 하지만 꿈을 꾸고, 그 꿈에 기대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인간들의 면면을 담담히 그리고만 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흔히, '바라는 모든 것이 충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는 심리상태'를 행복이라고 정의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복의 개념은 사람마다 크기와 가치가 다르게 마련이다. 또한 각자 다른 형상의 행복에 대해 값어치를 매긴다는 것 역시 무모하고 쓸모없는 짓이리라.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그저 현실에 감사하며 있는 그대로 살길 원하는 은희에겐 '내일의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행복으로의 지름길'이기도 했다. 그녀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영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그 행복을 오래 누리고 싶어서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도 꾸몄다. 꿈이 소박한 그녀,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노력하고 일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고정 불변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살아있는 것 조차도 감사해야 하고 그 덕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을 챙길수가 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다.

 

반면, 영수는 도시의 화려한 생활에 익숙해 있다가 낯선 시골에서 만난 갑갑한 삶으로 인해서 그곳의 분위기 만큼이나 갑갑한 여자에게도 쉽게 빠져들어 버린다.그리고 나름, 이게 행복이란 생각에 그녀가 제시하는 행복 설계도에 참여도 해본다. 하지만 그에겐 잃어버린 꿈이 있다. 이젠 그걸 향해서 재기 해보고 싶다. 자신을 신통찮게 여기고 차버던 옛 여자에게 보란 듯이 잘 된 모습을 보이고도 싶다. 결론은 돈이다!돈! 촌집에서 궁상 떠는 저여자의 병원비까지 감내하며 말년을 걱정없이 함께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벌자!하지만 그의 이런 절박함에 여자는 콧방귀로 응대하고 그런게 행복이냐고 비꼬았다.

 

결국 둘다 행복해지지도 못했고 행복을 논하던 순간부터 비참한 길을 가게 된다. 도대체 행복이 뭐길래?뭘 어찌 살아야 잡을 수 있는 건데? 만약 은희가 영수의 가치기준을 맞추며 일방적으로 희생하며 그의 꿈을 함께 쫓아갔더라면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아니면 영수가  궁상쟁이 은희를 일평생 뒷바라지 하며 그녀의 모토대로 '순응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다 해결 되는 건가?그 어떤 답도 이 영화는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실상에서도 이런 명제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기도 하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1862)을 쓴 프랑스의 문학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1802~1885)는 이렇게 말했다.'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 그것은 상대의 꿈과 자신의 지향점의 합일을 거쳐서 도달되는 힘들고 가파른 고갯길임은 분명하다. 은희와 영수의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인간이 꿈꾸는 행복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그러기에 행복이란 자신이 꿈꾸는 것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스치는 감정의 부스러기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해가 바뀔때면 새로운 희망으로 꿈을 꾸며 더 나은 내년을, 더나은 미래를 기약한다. 설혹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지만 그 꿈의 끝에는 행복이 기다릴 것이라는 '미련하지만 건설적인 계획'도 품어본다.그리고 인생 자체가 일장춘몽(一場春夢) 일지라도 달콤한 꿈으로 점철된, 익숙하지만 드라마틱한 동경의 우물을 열심히 파내려간다. 그 끝을 알수 없는 깊이를 들여다 보며 언젠가 길어올릴 수많은 행복이 자신의 폐부를 씻어내리는 시원한 상상도 해보는 것이다. 기대와 좌절로 서성이는 12월의 어느 날이다.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

어떤 이는 꿈을 잊은 채로 살고

어떤 이는 남의 꿈을 뺏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은 없는 거라 하네

 

세상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세상에 이처럼 많은 개성들

저마다 자기가 옳다 말을 하고

꿈이란 이런 거라 말하지만..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나는 누굴까 아무 꿈 없질 않나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나는 누굴까 혹 아무 꿈 꾸지 않나

 

 

-봄 여름 가을 겨울:'어떤이의 꿈' 중에서-


태그:#영화 행복, #임수정, #황정민, #허진호, #행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