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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성당 방면에서 여황산을 올라 북포루를 바라보는 길
 태평성당 방면에서 여황산을 올라 북포루를 바라보는 길
ⓒ 정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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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봉 밝아오면 여황산에 비치니" 통영동중 교가의 첫부분이다. 노래에서 알 수 있듯, 통영시 중심부의 산이며 통영의 주산(主山)이 바로 여황산이다. 생각해보면 통영 관내의 산들 중에 여황산만큼 통영 역사에 그 이름을 깊이 남긴 산은 없을 것이다.

여황산 자락을 타고 통영성 성벽이 조성돼있었으며, 여황산 통영성의 토성벽은 오늘날 '토성고개' 이름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통제영이 들어선 이후, 조선시대의 여황산 정상에는 통영성 3루 중 하나인 북포루가 자리잡고 성벽 너머를 살폈다. 당시 통영성 북문이 고성과 진주로 이어지는 도로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북포루는 내륙 방면을 살피는 통영성과 통제영의 중요한 감시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통영성의 눈 역할을 한 북포루와 여황산이지만, 지금은 통영시민의 조용한 휴식공간으로 우리 이웃과 같은 포근함을 주는 산이 되었다.

 북포루로 가는 길

통영시내에서 여황산을 올라 북포루로 가는 길은 넷이다. 명정동 충렬사 방면에서 여황산을 오르는 길이 있으며, 토성고개의 태평성당 옆 골목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있고, 북신동 북신성당 방면의 길과, 무전동 멍게수협 앞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토성고개의 태평성당 옆 옛 우물터(신상지변정新上池邊井)를 지나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다 길을 건너면 여황산 자락이 나온다. 산자락에는 인근 주민들의 텃밭들이 자리잡고 있다. 텃밭에는 고추, 박, 파, 배추 등 주변 동네 사람들이 반찬용으로 가꾸는 작물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어데 다른데는 멧돼지 잡는다더만, 요는 시내라 안되는갑지요?" 밭을 다듬던 동네 어르신 한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요즘은 그나마 덜하지만,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주택 가까운 텃밭까지 내려와 작물을 파헤치고는 한다는 것이다. 텃밭들 옆으로 난 콘크리트 배수로 바닥에 깨진 박 한덩이가 보인다. 누군가 텃밭에서 박을 따오다가 놓쳐 굴러간 모양이다.

텃밭들을 지나 등산로를 걸어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북포루가 나온다. 법운암 앞 건널목에서 북포루까지는 여유있게 걸어도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무전동 방면 등산로나 명정동 방면 길도 시간거리는 비슷하다.

여황산과 북포루의 사람들

아침과 낮의 여황산 길과 북포루는 중년 이상의 인근 시민들이나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 주부들이 많다. '많다'고는 해도, 여황산을 찾는 사람들이 미륵산의 경우만큼 많은 것은 아니다. 여황산은 명정동에서, 태평동에서, 북신동에서 올라오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여황산 오를때는 굳이 등산화에 등산복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경사도 별로 없고 길도 편하고 말입니다."
북포루에 앉아 통영시내를 바라보던 어르신 한분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도 산은 산이지요 나이든 사람들 산오르기 좋으라고 이렇게 길도 편하게 해놨으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길이 너무 편해서 젊은 사람들이 덜 오나?"

북포루에 앉아 바라본 풍경
 북포루에 앉아 바라본 풍경
ⓒ 정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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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포루 누각 바로 아래 벤치가에는 운동삼아 올라온 주부들이 훌라우프를 돌리고 있고, 벤치에는 도시락가방이 놓여 있다. 역시, 말 그대로의 '등산' 느낌은 약한 산이 여황산이다. 어느 쪽 입구에서 출발해도 정상 북포루까지 최대 30분이 걸리지 않고, 오를 때나 내릴 때나 발 미끄러질 걱정 없는 완만한 경사이다. 길이 단조로운 편이라 여황산이 등산객을 끌어들일만한 매력은 약한 것은 사실이나, 무전동 멍게수협부터 출발해 북포루를 지나 천암산까지 조성된 등산로를 걸어보면 적당히 괜찮은 트레킹 코스가 된다.

북포루에서 바라본 통영 야경
 북포루에서 바라본 통영 야경
ⓒ 정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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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여황산 꼭대기 북포루는 통영을 조망하는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이다. 통영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며, 북포루에서 어느 쪽으로 시선을 돌려도 통영의 특정 지점을 조망할 수 있다. 통영 시내의 야경을 찍기에 북포루만한 곳도 드물다. 그렇다보니, 외지에서 찾아온 여행객은 오전시간보다는 밤에 북포루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여황산과 북포루는 관광지라기보다는 인근 주민의 휴식공간이다.

북포루의 역사

조선 후기 통영성에는 3곳의 포루(鋪樓)가 축조되어 있었다. 3포루는 동, 서, 북의 산마루에 있었고 이는 1694년 제69대 통제사인 목림기(睦林奇)가 세운 것이다. 포루는 통영성을 방비하던 산성(山城) 중군(中軍)이 순찰을 돌고 경비를 하던 초소이다. 때로는 장수가 군사들을 지휘하던 장대(將臺)의 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동(東)포루는 성 동쪽 동피랑 꼭대기에 있었으며 "동장대"라 했고 서(西)포루는 통영성 서쪽 서피랑 꼭대기에 있었고 "서장대"라고 했다. 오늘날 유일하게 복원되어 남아있는 것이 여황산 정상의 북포루이다.

오늘날 북포루의 모습
 오늘날 북포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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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北將臺)라고도 불리는 북포루는 통영성 토성 유적이 1991년에 경상남도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지난 1993년 2월에 복원되었고, 2003년 태풍 매미의 피해로 파손되었다가 보수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한편, 서피랑의 서포루 복원사업이 통영시에 의해 진행중이며, 내년 5월경 복원된 서포루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여황산과 북포루는 시민의 것

서포루 복원 뿐만 아니라, 현재 여황산 아래 세병관을 중심으로 한 통제영 복원사업도 머지 않아 결실을 볼 예정이다. 이를 고려할 때 여황산의 북포루부터 출발해 토성벽과 북문, 북문지와 북문정까지를 포함한 통영성 북부 유적의 복원도 언젠가 이루어질 일로 보아야 한다. 서포루 동포루가 복원된 이후에는 여황산과 북포루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게 될까, 어떤 모습의 여황산과 북포루가 통영시민을 위한 것일까.

통영시민의 휴식공간 북포루
 통영시민의 휴식공간 북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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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포루에서 만난 명정동 거주 박모씨는 "나중에 통영성 성벽을 복원하고 북문 유적지를 새로 세운다 해도 여황산 산길이 미륵산같이 북적거리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여황산과 북포루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통영시민의 편안한 휴식처로 남았으면 하는 소망을 전한다. 개발이라는 것이, 꼭 관광객 여행객을 끌어모으는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지금은 통영대교 건너 미륵산이 사실상 통영을 대표하는 산이 되었지만, 통제영과 통영성의 역사를 보면 세병관을 품에 안은 여황산이야말로 통영의 주산(主山)이며 통영의 수호봉(守護峰)이다. 세병관에서 건너다보이는 미륵산은 통영의 객산(客山)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통영향토역사관 김일룡 관장은 "객산인 미륵산의 화기가 강해서 세병관 축조 당시 기둥 주춧돌에 해태상을 조각해 화기를 다스리려 했다"고 전한다.

주산의 이름이 쇠퇴하고 객산이던 미륵산이 지금 사실상 통영을 대표하는 산이 되었다는 것은, 통영시 중심부가 쇠퇴하고 미륵도와 죽림 등 시 외곽 지역이 통영의 얼굴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과 묘하게 겹쳐보인다. 지금 통영은 옛 통영성 바깥 지역이 살아나고 통영성 안쪽은 쇠퇴한 상태다. 통영 구시가지 중심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재생시켜야 한다는 것은 통영시와 통영시민의 당면 과제 중 하나다.

통영성 유적을 복원하고 여황산을 개발하는 것도 통영시 구 중심부 재생의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개념은 꼭 경제적 효과 창출을 노리는 것만은 아니다. 진행중인 서포루 복원을 포함해, 통영성 복원은 '관광객 유치' 보다는 '통영시민을 위한 공간' 조성이 되어야 여황산의 기운과 통영사람의 기운을 북돋우는 '지속가능발전'이 되지 않을까.

잘 조성된 여황산 등산로
 잘 조성된 여황산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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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동 멍게수협 앞의 등산로 안내판
 무전동 멍게수협 앞의 등산로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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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려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통영, #통영의 길, #여황산, #북포루, #통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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