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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을 유별나게 기다린다. 지난 1985년 프랑스 정부에서 이날을 햇와인인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판매 개시일로 공식 지정한 이래로 말이다, 나도 보졸레 지방에서 생산된 햇와인을 마시기 위해 평창동에 갔다.

 

나는 매년 11월 '보졸레 누보 데이'에는 친한 선후배들과 미술전문출판사인 평창동에 소재한 '재원'에서 와인을 한잔씩 한다. 레드와인에 어울리는 육류와 과일, 채소와 간단한 식사를 준비한 파티의 주관자는 재원출판사의 박덕흠 사장이다.

                   

시인이며, 미술평론가인 박 사장은 와인에도 일가견이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을 수집하고, 친한 선후배들과 1년에 5~6번씩 와인파티를 한다. 평소에도 좋은 와인을 구하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열기도 하지만, 11월 행사는 가까운 지인들을 전부 불러 모아 밤을 세워가며 최고급 와인을 종류별로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숙성되지 않은 햇와인인 보졸레 누보는 한국식으로 보자면 갓 독에서 나온 막걸리나 고춧가루와 마늘, 파, 배추를 버무린 겉절이 김치와 같은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 프랑스에서 흔히 '와인의 왕'으로 불리는 보졸레 누보는 우리의 막걸리처럼 벌컥 벌컥 마시는 와인으로 유명하다.

 

마시는 방법과 시기가 비슷해서 인지 요즘 한국에서는 막걸리와 보졸레 누보의 경쟁관계가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나도 와인보다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특히 살균하지 않은 생 막걸리는 등산이나 농사일을 거들며 한 잔씩 하면 그 맛과 정취가 일품이다.

                   

         

아무튼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1년에 5~6번 정도 방문하는 재원출판사에서 다양한 와인을 맛보는 기쁨을 얻게 된다. 올해도 프랑스산 햇와인과 4~5년 된 남미산, 아프리카산, 호주산, 국산 와인 등을 두루 맛보았다.

 

사실 저녁시간에 배가 한참 고픈 시간에 와인을 마시는 행운은 여러 가지 기쁨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바비큐와 올리브유를 발라 오븐에 구운 토마토, 북어머리로 국물을 내어 끓인 어묵, 단감 등을 곁들여 텁텁한 보졸레 누보를 두어 잔 마셨다.

 

한참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나니, 박 사장은 올해의 특급와인으로 경북 봉화군 물야면에 올라온 알코올14%, 당도13%인 산머루 100% 발효주인 '엠퍼리(Empery)'를 소개했다. "붉은 색 와인으로 태백산 아래 봉화군 물야면의 고랭지에서 무농약으로 재배된 유기농 산머루를 천연 효모만을 넣어 발효 양조한 것"이라고 했다.

           

모두들 한잔 가득 부어 맛을 음미하며 마셨다. 산머루를 만든 와인이라 '색이 짙고 향도 좋았고 깊은 단맛이 났다. 약간 신맛과 뒤끝이 오래도록 남는 향은 깔끔한 경상도 산골의 정취와 깊은 계곡의 숨결을 담은 듯'했다.  

 

박 사장은 "혀끝을 쏘는 듯한 청량감이 있는 탄산수로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고 칭송될 정도로 유명한 오전약수와 태백산의 맑은 공기, 깊은 계곡, 마을 앞의 넓은 저수지, 강한 햇살, 일교차, 야산에서 자생하는 유기농, 무농약의 산머루가 천연 효모를 만나 3~4년 숙성 발효된 깊은 맛의 와인이다."라고 맛의 깊이와 기원을 알려주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국내 최고의 와인으로 알려진 '마주앙'보다 먼저, 아니 국내에서 유일하게 영국 런던의 소더비사가 발간하는 세계명주사전 '와인리포트'의 세계 100대 와인에 2004년, 2005년, 2007년에 걸쳐 3번씩이나 등재된 세계적인 명품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일본의 모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세계명주사전에도 2002년, 2003년, 2008년, 2009년에 수록되기도 한 명품 와인"이라고 전했다. 와인을 잘 모르는 나도 감동을 하면서 한잔 더 마셨다.

 

나는 회사일이 남아 있어 급하게 '엠퍼리(Empery)'를 한잔 더하고 집으로 갔다. 너무 좋은 와인을 마시고 와서 인지 야근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사실 요즘 나의 주요 관심사는 귀농자들에게 단순한 농사 이외에 수공업적 수준의 농산물 가내가공업의 성공사례를 발굴하는 것이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찾아주자는 의미가 강하다.

                

작은 와인 공장에 관심이 가서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고 나서 바로 봉화군 물야면의 산머루 와인  '엠퍼리(Empery)'의 생산, 판매업체인 (주)에덴의 동쪽(대표:노종구, http://www.empery.co.kr)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노종구 대표는 요즘 몸이 좋지 않아 서울에서 1년째 병원생활을 하고 있는 관계로 그의 부인이 전화를 받았다. "평일에는 서울에서 간병을 하고, 주말에는 봉화에서 와인 생산과 판매를 전담하고 있다"는데, "와인이 필요하면 지금 주문하던가 주말에 방문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주말에 고향 영주에 갈 일이 있으면, 잠시 방문하여 와인도 사고, 농장도 둘러볼 기회를 달라"고 졸라 방문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주말인 28일(토) 오전 11시에 물야면 오전리의 선달산 아래 생달 마을을 찾았다.

 

중앙고속도로 영주시 풍기IC를 나와 부석사를 빗겨 지나면 물야면에 닿는다. 물야면 소재지를 지나 큰 저수지를 돌아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면 오전약수로 가는 길이고, 좌측 길로 들어서면 바로 우측에 생달 마을과 '에덴의 동쪽'이라고 쓰인 와인창고와 산머루 농장 등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주머님에게 와인공장을 물어보니, "서울에서 오신 손님이군요. 여기에 차를 세우고 들어오세요"라며 나를 맞았다. 군고구마와 차를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이 허리가 좋지 않아 거의 1년째 통원치료를 하고 있어, 평일에는 주로 서울에 있고 주말에만 내려와 농장일과 와인 생산과 판매를 혼자하고 있다."라며 "16년 전 서울에서 이곳으로 귀촌하여 처음에는 사과 과수원을 하다가, 밭 가운데 있는 산머루로 소주를 부은 과실주를 담아 마셨는데 너무 맛있다는 평가를 받아 와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은 서울사람이고, 나는 봉화와 가까운 영양 사람인데, 엄친이 원래 영양과 대구에서 오랫동안 양조장을 하셨다. 막걸리가 참 맛있는 집이라고 소문이 났었죠. 이곳에서 와인을 담그게 된 연유가 '술을 만드는 기운(氣)'이 나에게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럼 와인을 만드는 기술이나 비법은 있나요"라고 물어보니, "사실 와인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을 했다. 2년 정도 독학으로 공부하여 와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1997년 회사를 설립하고 1998년부터 와인을 만들어 팔고 있다." 라며 "비법은 전혀 없다. 그거 좋은 산머루에 천연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는 것뿐이다. 이곳 오전리의 물과 산이 좋고, 유기농 무농약의 산머루를 가공하여 즙을 만들고 다시 효모를 넣어 3~4년의 숙성을 통하여 와인을 만드는데, 너무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정성과 애정, 시간이 맛의 비법이라면 비법이다."라고 한다.

                 

"일본과 영국에서 세계 최고의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유는 뭐죠?"라고 물어보니, "와인을 처음 만들고 판로가 없어 고생을 하다가 우연히 오사카 박람회에 참가를 했는데,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주더군요. 하지만 어떤 여자가 와서 맛을 보더니 몇 번을 꼬치꼬치 물어보면서 맛의 비밀이나 생산량 등등을 물어보더니 농장을 한번 둘러보자고 하더군요. 일본 최고의 와인수입업체의 임원으로 저희 산머루 와인을 이제까지 맛본 와인 중에 최상등급 중에 속한다고 칭찬을 하더군요. 그래서 그 길로 일본에 수출을 하게 되었고, 일본에서 명주사전에 먼저 등록된 다음, 일본업자들이 우리 제품을 영국에 보내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영국 소더비사가 발간하는 세계명주사전 '와인리포트'에 세계 100대 와인으로 3번 소개가 되었죠."라고 했다.

 

"이런 유명한 와인이, 제 고향 영주와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봉화군 물야면에 농장이 있는데 제가 왜 이제까지 몰랐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군요?" 라고 하니, "남편은 서울사람이고, 나는 영양 사람이라 이곳 봉화군과는 당초 인연이 없었고, 우리 부부 모두가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하는 외고집이라 그렇지. 또한 와인의 생산량도 현재 연간 5~6만병 정도로 수출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국내 판매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도 홍보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저 아는 사람들에게만 파는 정도죠. 대기업이나 대공장처럼 만들 수 있는 상품도 시설도 되지 않으니 요란을 떨면서 팔 수 없지."라고 한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13가구가 하나가 되어 산머루작목반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확량의 일부는 산머루 그대로 팔거나 즙으로 만들어 팔고, 나머지를 가지고 와인을 만드니 생산량이 많을 수 없고, 또 시골이 인력이 풍부한 것도 아니라 가내수공업형식으로 두 부부와 이웃 노인들의 도움으로 만들어내는 와인의 양은 분명 한계가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와인을 3병 산 다음, 집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에 저수지가 있고 뒤쪽은 산이다. 계곡 안에 집이 10채 정도 되는 것 같고, 산머루와 사과밭이 여러 곳 있다. 이곳의 산머루를 이용하여 시골 노인네들이 모여 와인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최근 이곳을 방문했던 호주 출신의 와인평론가 '데니스 고스틴'씨는 "깊은 산속에서 좋은 물과 맑은 공기, 뜨거운 햇살을 받고 고냉지에서 자란 봉화군의 산머루로 만든 '엠퍼리'는 '용이 잠자는 호수와 같은 깊은 맛'이 숨어 있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또한 영국 소더비사의 '와인리포트' 편집인인 '톰 스티븐슨'은 "이탈리아인들이 즐겨먹는 말린 과일인 아마로네 스타일의 농축된 과일 맛의 달콤한 레드와인, 짙은 자주색으로 이국적인 야생의 말린 베리향을 지니고 있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고급와인과 동급수준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와인 창고를 같이 돌던 안주인은 "산머루는 옛날부터 한방약재로 쓰이며, 허약체질개선, 두통, 요통, 폐렴, 폐결핵, 지혈, 이뇨, 해독 등에 효과가 있고, 동상, 피부염, 관절염 등의 치료제로도 쓰이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만성 신장염, 배뇨 장해, 소화기 출혈 치료에 좋고, 외상에 의한 출혈에 외용으로도 이용한다."고 알려주었다. 특히 "무좀, 아토피 등의 피부질환에도 와인을 직접 피부에 발라도 치유효과가 있으니, 마시다 남은 와인의 경우에도 미용 및 피부질환 치유제로 사용이 가능하다."라며 마지막 한잔까지도 버리지 말고 약용, 미용, 목욕용으로 쓰라고 한다.

 

11월 하순이라 산머루가 달려있는 농장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어렵게 간청을 하여 와인생산 공장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경상도 봉화에서도 세계최고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과 귀농자들에게 희망인 수제농산물가공업체의 성공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여 기쁜 하루였다.

 

 


태그:#산머루 와인 , #‘엠퍼리(EMPERY)’ 와인, #경북 봉화군 물야면 , #세계명주사전, #와인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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