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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이 내 가방이다.
▲ 가방 크기 비교 맨 오른쪽이 내 가방이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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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키가 주는 혜택

나는 완소녀다. '완전 소형 여자'. 요즘 이 나라를 한창 시끄럽게 했던 단어, 루저 중에서도 '캐루저'라고 할 수 있다. 지프차나 4륜구동 같은 좀 덩치가 큰 차를 타게 되면 사람들이 "니콜, 너는 차를 타는 게 아니라, 집에 들어가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할 정도니까.

그렇다고 '작은 키'로 인해 인생에서 큰 실패감을 맛본 기억은 별로 없다. 사람보다 마네킹 기럭지에 맞춰 나온 옷을 구입하지 못하는 슬픔이 가끔 찾아오긴 하지만 비싼 옷을 지를 마음을 절제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 소개팅이나 취업면접에서 '키'가 합격을 좌지우지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작은 나도 아직까지 겪어본 적 없는 일이다.

글쎄, 온전히 '키' 때문에 탈락된다고? 그렇다면 정말 감사한 일 아닌가. 키가 삶에서 가장 큰 목표이자 꿈인, 머리 빈 소개팅남, 그리고 상사와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니까. 부득이하게 신체조건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는 직업들이 있는 건 안다. 그건 그냥 꿈꾸지 않으면 된다. 그것 말고도 세상엔 하고 싶은 일이 널려 있다. 걱정과 좌절로 자신의 키를 1cm라도 키울 수 없다면, 작은 키를 활용할 수 있는 긍정적 요소를 찾는 것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배낭여행을 다닐 때 작은 키 때문에 혜택을 톡톡히 본 사람이다. 내 체구에 큰 여행가방은 재앙이다. 나도 힘들지만 그걸 매고 다니는 나를 지켜보는 사람도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남들이 수십 리터에 달하는 배낭을 짊어질 때, 나는 일반 책가방을 메고 두 달을 다녔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축하를 받는 아주 특별한 생일파티
▲ 흭의 생일 아프리카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축하를 받는 아주 특별한 생일파티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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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신기한 건 동행자 중에 가장 가벼운 배낭을 가진 내가 도움을 받는 것이다. 기내에서도 승무원 외에 일반 사람이 내 짐을 들어 넣어줬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서양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나의 짐이 우선이었다. 동행자의 가방이 내 것보다 족히 2배는 무거웠음에도 "도와줄까요?"하며 사람들은 내게 먼저 손 내밀었다.

슈퍼마켓을 찾아 먼 길을 걷고 있을 때 경찰차가 와서 태워준다던가(길 잃은 미아라고 생각했을 수도), 멋진 길거리 공연을 비록 늦게 왔을지라도 키 작은 내게 맨 앞자리를 양보해준다던가. 그런 일들이 내게 숱했다. 그러면서 나는 수많은 여행객과 한 번 더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프렌들리한 성격으로 변모했다. 그래서일까? 키 때문에 복잡한 버스에서 숨을 좀 쉴 수 없다거나 바지를 많이 잘라야 하는 정도는 기꺼이 참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인들은 일단 팔 다리가 우리보다 1.5배 길다. 그러니 함께 있는 동안 내가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장난과 놀림을 받아야 했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 사람들은 나를 실제 나이의 반토막인 '15'살로 봤고, 숱하게 waguhe(와꾸헤, '꼬맹이'라는 뜻의 아프리카 끼꾸유 부족어)라고 불렀다.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물으면 "she is thirty. but she is very short"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애부터 어른까지 모두 나를 와꾸헤로 불렀지만,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고 얼굴색도 다른 이곳에서도 나의 작은 키가 사람들과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 되레 행복했다. 그리고 이곳의 모든 사람도 그저 와꾸헤는 나를 부를 친근한 또다른 이름이었지, 뒤엣말은 늘상 나를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는 것들 투성이었고,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고 만끽했다.

#2. 니콜, 넌 참 좋은 심장을 가졌어

수업 중에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아주 멋진 음악이 되었다.
▲ 까만땅콩의 음악수업 수업 중에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아주 멋진 음악이 되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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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여유로운 오후, 조이홈스 아이들을 돌보는 안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 안티는 중간중간에 "빗소리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후다닥 테라스로 나가 하늘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바닥 위로 빗물이 느껴지진 않았다.

이곳에 비가 내리지 않은 지 5년이 지났다. 우리가 케냐에 도착한 7월은 우기를 막 끝낸 시점이었으나, 그래서 비를 가득 머금은 땅에 수풀이 우거져야 했으나, '우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비가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은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다. 하늘과 땅밖에 없는 이곳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농사를 지어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아 매년 옥수수 농사는 실패했고, 그래서 굶는 사람, 그래서 죽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이상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문득 비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갔다. 그러다가도 금세 먹구름이 걷히는 일이 허다했다는 안티의 말에 곧 실망하려던 순간, 후두둑 - 후두두둑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비에 젖은 까만땅콩이 잔뜩 음악교구들을 이고 주방으로 건너왔다.

"노래와 춤을 연습시키고, 파트를 나눠서 멋진 공연을 하려는 찰나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가히 환상적이었어!"

우리는 그날 저녁, 아프리카인들과 밤새도록 춤을 췄다. 컨테이너 지붕 위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소리는 그 어떤 악기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이곳 사람들은 우리를 'lady'에서 'angel'로 부르기 시작했다. malaika ya nmvua(마라이까 야 음부아, 비의 천사라는 스와힐리어) 이날 이후 우리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 손잡기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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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땅을 고르러 가는 고아원 큰 아이들을 돕겠다며 따라갔다. 딱딱한 땅을 삽으로 내리쳐 부서뜨려야 하는데, 매번 나는 내리친 삽의 반동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에 한참을 웃었다. 고아원 큰 아이 중에 한 명인 카존이 말했다.

"Waguhe, you have a good heart."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너, 참 착해'라고 해석하는 게 옳겠지만, 나는 왠지 그냥 "너 참 좋은 심장을 가졌어"로 듣고 싶었다. 내가 이 말을 듣기 위해 아프리카에 왔구나.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는 용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지 않았다면, 나는 5년 째 내리지 않았던 비가 땅에 떨어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풍경을 만날 수 있었을까. 만기가 아직 차지 않은 적금 통장을 이자가 아까워 깨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곳에서 "꼬맹아, 넌 참 좋은 심장을 가졌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세상은 키 작은 사람을 '루저'라 부른다 해도,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행복을 모르는 세상의 위너가 되기보다, 행복한 실패자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고 자발적인 루저가 되기로 매일 아침 결심한다.

글. 니콜키드박

덧붙이는 글 | 두달 동안의 아프리카 여행기



태그:#아프리카, #여행, #니콜키드박, #나눔, #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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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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