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얼(Teacher), 티처얼"하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학생 10여명과 교사 3명이 모두 놀란다. 발음까지 매우 이상하고 괴성처럼 들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듣는 귀를 의심했다. 곧바로 다시 생각하니 "선생님, 선생님"하고 부르는 말이었다.
한국의 중학교 교실에서 보통 그렇게 선생님을 큰 소리로 부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감히 수업시간 내내 소리내어 선생님하고 불러본 기억이 별로 없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 미국 학교 교실에서는 "Teacher! Teacher!"하고 선생을 부르는 경우가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필요한 질문이나 일이 있으면 손을 들게 하거나 손을 들고 허락을 받은 후에 학생이 발언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티처얼, 티처얼"하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굳이 선생님을 급하게 불러야 할 경우는 Mrs/Mr 성을 붙여서 부른다. 우리 말로 하면 이 선생님, 김 선생님 한다고 할까.
그러나 보통 명사로 "티쳐, 티쳐"로 부르면 선생님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선생, 선생"하면서 학생이 선생님을 낮추어 부르는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학교 선생님에 대한 권위는 미국에서 아직도 높이 인정되는 그러한 교육현장에서 "선생, 선생"하고 외국인 학생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성을 낸다면 곱게 받아들여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우리나라의 중요한 교육정책이 되어야 할까? 아닐 것이다. 외국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함께 습득해야지 '어륀지'라고 발음만 고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상은 지난주에 미국 중학교 수업현장에서 발생한 극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의 경우 어느 곳에 가든지 3개월이 지나면 처음의 긴장도도 풀어지고 약간은 제자리를 찾는 것 같다. B라는 한국 중학생의 경우도 지난 9월초 미국중학교로 전학해 왔다. 등교 첫날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만 갖게 된다. 카운셀러의 안내로 학교 담임 선생과 학교 시설, 간단한 학교 규칙등을 소개하며 준비물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서 건강진단서를 의사로 부터 받아오도록 학부모에게 부탁하는 정도였다.
오리엔테이션 이후에 학부모가 제안하여 찍은 이 학생의 표정이 생생하게 카메라에 잡혀 있다. 사진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하던가? 굳다 못해 창백해진 피부까지도 카메라는 포착해서 옆에 서서 찍힌 다른 사람들의 미소띤 얼굴과는 큰 대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토록 굳은 표정을 한 B이지만 아마 다음날부터 시작된 수업시간의 분위기를 보고 지극히 안도하는 것 같았다. 한국 학교에 비해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실제의 수업현장이 급속도로 그를 긴장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보인 모순적인 행동들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복도를 지나가다 아무나 마주치면 "헤엘로 헤엘로"를 연발하며 고성을 지른다. 그것도 그냥 한번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대응할 때까지 큰 소리 쳐댄다. 며칠이 지나자 거의 전교생이 한국에서 새로운 학생이 왔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몇몇 어린 여학생들은 필자를 보고 조용히 다가와서 새로온 학생이 적응을 잘 해나가는지 근심어린 표정으로 묻기 시작했다.
그런 B는 아침에 등교하면서 책상 위에 얼굴을 쳐박고 자거나 팔로 턱을 괴고 앉아 졸기 일쑤다. 스쿨버스 안에서는 주로 잠을 자는 것 같다는 사실을 버스기사가 선생님께 알려 왔다. 처음에 그러한 이상한 행동을 본 이곳 선생님들은 걱정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시차 때문일까? 아픈 탓이 아닐까? 간호사에게 보내야 하나? 아니면 학보모에게 연락을 하여 병원을 데려가도록 해야 하나?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본인은 아프다는 것도, 간호사한테 가는 것도 거부했다. 특이한 것은 부모한테 연락을 한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앉아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가 알게 된다는 것을 막으려는 가장 저항적인 자세를 보이자 선생님들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학교는 자는 곳이 아니고 잠을 자려면 집에 돌아가서 자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교사는 당연히 'Social worker, speech theraphist, psychologist, counselor'들과 상의를 한다. 그들의 결론은 학부모를 불러 회의를 하자는 것이다. 회의중에 보인 학부모의 반응이 매우 의외였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학생이 졸면 별실에 보내서 잠을 좀자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 학부모는 지난 금요일 또 한번 선생님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 그날은 인근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실습교육을 떠나는 날이다. 이미 문서로 참가자들을 다 모집하였고 자원봉사자들도 참가서명을 마친 후였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나타나서 무조건 동행하겠고 우겼다고 한다. 한 선생님은 10번 이상을 불가하다고 설명하고 나서야 겨우 물리쳤다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카메라 등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곳 학교에서는 학생의 안전상 사전 서명이나 약속없이 아무나 동행시킬 권한이 교사에게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례이다. 결국은 학생 B만이 아니고 학부모마저 미국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여겨진다.
겉으로만 보면 미국 학교의 수업 분위기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실제로 이곳 학생들은 매우 자유스럽다. 수업은 항상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자력으로 토론을 해나가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조금은 어수선하게 보이고 시간 낭비만 많이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피교육자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창의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가르치는 교사가 최고로 인기가 많다. 그러나 자율속에도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바른 자세와 진지한 수업참여는 계속된다. 자유 속에 질서와 책임의식은 간단없이 강조되고 연마되는 것이 이곳 교육 현장이다. 모든 사물이나 현상이 그렇듯이 겉으로 관찰되는 게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이곳에서 B와 함께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일본이나 중국은 알이도 한국은 잘 모르고 있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은 '니하우'나 '고니찌와'하면서 나에게 인사를 한다. 물론 일반 미국사람들은 지도에 극도로 약하다. 대한민국이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지고 태반일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다르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의붓아버지와 살면서 경제난으로 현지 초등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다. 하와이에서 낳아서 성장기의 대부분을 동양인들과 어울리며 보냈다. "안녕하세요, 같이 갑시다"하는 말을 좋은 발음으로 할 정도로 친근함을 표시할 줄 안다. 동양적인 예절을 알고 매너 또한 너무 좋아 일본에선 머리를 너무 숙인 인사로 미국내 보수차의 맹공을 받기도 했다.
한마디로 미국 대통령 중에서 전무후무하다 할 정도로 동아시아를 알고 이해하는 드문 정치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한국 취임이래 유난히 한국 교육 예찬론을 펴오고 있는 것이 우리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취임 직후 미국 국내에서 시작하여, 그 후 유럽 G20에 참가하여, 심지어 아프리카를 첫방문해서 이집트의 대학 강연장에서 까지 한국을 계속 언급했다.
지난주에도 연 이틀간이나 중요한 공석에서 한국학생 예찬론을 폈다. 한국의 교육열이나 열공하는 학생들을 미국학생들이 배우면 미국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희망은 티브이를 보거나 컴퓨터게임이나 하면서 허송세월하는 학생들이 이루어낼 수 없고 21세기를 준비하면서 과학, 수학, 외국어를 열공하는 한국학생들을 본받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오바마 대통령이 B가 다니는 교실수업을 직접 목격했다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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