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도 없고 졸속 추진'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행정안전부의 마산·창원·진해 행정구역 통합 의견 안건은 진해시의회에서 '그렇게 해서' 통과되었다. 진해시의회는 7일 오후 2시20분경 기립표결로 8대5로 '찬성의견'으로 처리되었다.
이날 마산·창원시의회도 같은 안건을 상정했는데, 마산시의회는 18명 찬성(반대 1명, 기권 2명)으로 통과되었고, 창원시의회는 논란을 빚다가 11일 본회의 때 처리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는 주민여론조사를 통해 전국 4곳을 자율통합 대상으로 선정했다가 마산·창원·진해시의회에만 행정구역 통합 의견(찬성반대)을 묻는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은 집행부를 거치지 않고 시의회에 바로 보내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행정안전부는 3개 시의회에서 찬성하면 통합되는 것으로, 반대하면 주민투표로 결정할 방침이었다. 이런 속에 시민사회진영과 일부 시의원들은 행정구역 통합 여부는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3개 시의회 의원들의 정당 분포를 보면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해 안건이 상정되면 찬성의견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창원시의회(20명)는 한나라당 16명과 민주노동당·무소속 각 2명, 진해시의회(13명)는 한나라당 11명과 민주당·무소속 각 1명이며, 마산시의회(21명)는 한나라당 19명과 민주노동당 1명, 무소속 2명이다.
진해시의회 처리 여부에 관심 쏠려... 방청도 못하나
이날 3곳 시의회 가운데, 진해시의회에 관심이 쏠렸다. 마산창원진해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주민투표로 행정구역통합을 결정해야 한다며, 진해시의회에 모여 들었다. 배명갑 전국통합공무원노조 진해시지부장은 주민투표를 요구하며 진해시의회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본회의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렸다. 본회의 시작 전 시민들의 방청 여부를 놓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시청 공무원은 "의장의 지시로 질서 차원에서 방청석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며 일부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이에 시민들은 "시민이 와서 방청하겠다는데 왜 못하게 하느냐"거나 "60세 평생을 진해에 살았는데 여기도 한 번 못 들어온다는 말이냐", "의장이 직접 와서 설명하라", "말도 안 되는 소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통합 여부를 결정하는 시의원들을 지켜보겠다는 시민들의 바람을 막을 수 없었다. 방청석이 모자라 많은 시민들이 계단과 뒤편에 서서 본회의를 지켜보았다.
회의가 열리기 전 의사국 담당자가 "방청석에서는 의사 진행에 대해 찬반을 말할 수 없고, 소란을 피우면 모든 방청인을 퇴장시킬 수 있다"고 안내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의장이 잘못하면 우리가 쫓아낸다"는 말이 나왔다.
행정안전부 반쪽 짜리 공문 보고 처리해야 하나?
의원들이 들어오고, 김형봉 의장이 자리에 앉자 본회의가 시작되었다.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김 의장은 "미디어법, 용산참사, 4대강살리기 등 올해 사회 이슈가 많았다"며 인사말을 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집행부의 시정연설을 비롯해 새해 예산안 심의 등 모두 8개의 안건이 상정되었다. 그 중에는 행정구역 통합 의견 안건도 들어 있었다.
진해시의회 총무사회위원회는 행정안전부가 낸 공문이 절차를 어겼다며 '행정구역 통합의견 반대'를 결의해 본회의에 올라와 있었고, 배학술 의원이 '행정구역 통합 찬성'이란 내용의 수정안과 김성일 의원이 '행정구역 통합은 주민투표로 해야 한다'는 내용의 수정안이 올라와 있었다.
먼저 정영주 의원(민주당)이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정 의원은 "지방자치법에 따르더라도 행정구역을 변경하는 문제는 주민투표로 해야 한다"면서 "주민투표를 하지 않고 시의원들이 결정한다면 주민주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진해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제기한 '주민투표 청원서'를 왜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는지를 따졌다. 김형봉 의장은 "청원서 접수 사실은 맞다. 상임위에서 충분히 논의를 거쳤고, 청원서 처리는 앞으로 일정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의원은 "주민청원은 주민투표에 관한 것이기에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김 의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준섭 의원이 5분자유발언을 통해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그는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반강제적으로 통합할 것을 시의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면서 "원칙도 없고,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행정안전부의 공문을 보면 찬성반대만 제시하도록 되어 있는데, 찬반 이외에 얼마든지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행정구역 변경은 법률로 정해서 하도록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정회 뒤 비공개로 의원간담회 열어
이어 김호기 진해시장 권한대행이 시정연설을 했으며, 집행부에서 낸 새해 예산안 심의 등에 대한 안건을 처리했다. 마지막 안건으로 행정구역 통합 의견안건를 다룰 차례였다.
주민투표를 요구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김하용 부의장이 일어섰다. 그는 "행안부에서 보낸 반쪽짜리 공문을 보고, 우리가 왜 총대를 메야 하느냐. 그 속셈이 뭐냐"면서 "지역 주민들 보기가 두렵다. 행안부가 진해시를 거치지 않고 온 공문인데, 이것을 처리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김 의장은 "원활한 회의 진행을 한다"며 정회를 선언했다. 이날 오전 11시30분경 의원들은 간담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논의했다.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시민들은 그래도 방청석을 떠나지 않았다.
정회한지 1시간만인 낮 12시30분경 본회의를 속개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오래 기다린 시민들은 방청석에서 불만을 쏟아냈다. 방청객들은 "의장이 10분이라더니 지금이 몇 시냐. 의장이면 공인인데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또 "문제는 공천만 받으면 시켜주니까 그런 것이다"는 말도 나왔다.
'통합 찬성 수정안' 설명에 방청객 비웃어
진해시의회 총무사회위원장인 강호건 의원이 행정안전부가 낸 공문에 따라 처리했던 '행정구역 통합 반대의견'에 대해 설명했다. 강 의원은 "주민들의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주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마땅하다는 의견에 따라 반대의견을 제시하기로 심의했다"고 밝혔다.
김하용 부의장은 김형봉 의장한테 질문을 쏟아냈다. 행안부가 낸 공문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느냐고 따졌다. 김 의장은 "법적 근거는 없다. 그래서 의원 발의로 처리하려고 한다"고 답변했다.
'행정통합 찬성 의견 수정안'을 낸 배학술 의원이 그 배경을 설명했다. 배 의원은 "진해는 남해안 시대의 중심도시로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통합만이 남해안시대의 중심도시가 될 것이다. 통합해야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때려 치아라. 끝났다"며 비웃는 말이 쏟아졌다.
'주민투표 수정안'을 낸 김성일 의원이 배경을 설명했다. 김 의원은 "지금 행안부가 하는 것을 보면 개헌도 국회가 하면 된다는 식이다. 개헌은 국민의 손에 의해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통합 찬반은 주민투표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옳소"라는 말이 나왔다.
배학술 의원의 수정안 설명에 대해 정영주 의원이 질의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배 의원이 단상으로 나와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배 의원은 "나갈 수 없다. 단상에 나가서 질의하라"고 요구했다. 관련 규정을 살펴본 김형봉 의장은 배 의원이 단상에 나와 답변하도록 했다.
배 의원은 "창원과 마산의 큰 산이 두 개 있다. 통합해야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영주 의원이 "행안부의 여론조사는 18만명 중에 1000명 정도만 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전체 주민의 의사냐"고 하자 배 의원은 "13명 의원은 시민의 대표다"고 말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치아삐라"는 말과 함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김형봉 의장은 "방청석에서 소란을 피우면 결단하겠다. 반대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하용 부의장도 배학술 의원한테 여러 질문을 쏟아냈다. 배 의원은 "이달곤 장관이 창원 출신인데, 통합하면 재정이 열악한 진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 부의장은 "국민 전체가 행복해야 한다. 장관이 개인 재산을 내놓으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배 의원은 "힘있는 의원이 자기 지역구에 돈을 많이 가져 가지 않느냐"고 했다. 방청석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게 말이냐"는 반응이 나왔다.
"언제 표결 방법에 대해 물었느냐", "똑바로 해라"
이어 김형봉 의장은 질의 종료를 선언하면서 방망이를 세 번 두드렸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기립표결하겠다며 선언했다. 정영주 의원은 "언제 표결 방법에 대해 물었느냐"고 따졌다. 방청석에서는 "똑바로 해라"는 말이 나왔다.
다시 질의응답하는 시간이 벌어졌다. 김하용 부의장은 "주민투표 수정안을 낸 김성일 의원에 대해 질문할 게 있는데, 왜 김 의원에 대한 질의는 받지 않고 질의종결을 선언하느냐"고 따졌다. 이어 김 부의장은 김성일 의원한테 수정안을 낸 배경에 대해 물었다.
오후 1시 40분. 다시 정회했다. 배학술 의원이 낸 수정안에 '의견서'가 첨부되지 않아 수정안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김형봉 의장은 정회를 선언했다.
회의는 10여분 뒤 속개되었다. 주준식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지금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어떤 게 진해 발전을 위함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찬성과 반대 의견도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진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주 의원은 "진해 동부․서부로 나눠 의견이 나뉜다. 김학송 의원은 동부와 서부의 입장을 다 안다며 3개시 통합이 잘못된 일이라면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하용 부의장도 단상에 섰다. 그는 "통합 문제는 중요하다. 진해 발전을 위해 주민투표를 해야 하기에 한나라당 탈당도 했다. 진해가 없어지는 문제 아니냐. 통합 결정은 주민주권에 해당하므로 주민투표로 해야 한다"며 "사흘 나흘, 1주일이 걸리면 어떻나. 조급하게 결정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후 2시10분경, 폐암을 앓아오던 이재복 진해시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형봉 의장은 공무원으로부터 쪽지를 전달받아 그같은 사실을 알렸다. 순간 시의회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질의답변 종료를 선언했다. 수정안부터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기립 표결하기로 했다. 먼저 김성일 의원이 낸 '주민투표 수정안'은 부결되었고, 배학술 의원이 낸 '진해창원마산 행정구역 통합 찬성의견 수정안'에 대해 찬성 8명, 반대 5명으로 처리되었다.
점심도 굶으면서 이날 진해시의원들의 모습을 지켜본 한 방청객이 말했다.
"코미디가 따로 없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