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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소제굴, 그리고 열 살 터울로 태어난 동생 꽃얄리군
 완소제굴, 그리고 열 살 터울로 태어난 동생 꽃얄리군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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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출산대장정'으로 태어난 꽃얄리군.
 '블록버스터 출산대장정'으로 태어난 꽃얄리군.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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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미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끔씩, 우리 아이의 결락이 눈에 띄었다. 형제자매 없이 자란 아이는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거나 몸으로 치고받으며 싸워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아이는 또래들 틈에서 갈등이 생기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있었다. 눈을 깜박이지 않으려고 힘주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여운은 길었다.

아이는 24개월 될 때까지 지나치게 울었다. 나는 아기보고 전생에 일제 강점기 독립군이었다가 일본군한테 잡혀 잠 안자는 고문을 당한 거였느냐고 성질내며 같이 울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무서워서 도망치며 달리다가 마라톤에도 빠졌다. 용하다는 무당이 나를 세워두고 둘째를 낳지 않으면 내 삶은 한 없이 불행해질 거라고 했지만 끄떡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나는 한 방에 훅 갔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4년은 금방 가요. 이제 런던 올림픽 준비해야지요"라고 하는 인터뷰는 나를 끌어당겼다. 그만큼의 시간이라면, 이 세상에 없던 한 존재를 내 몸에 품었다가 낳고, 젖 먹여 키우고, 똥오줌을 가리고,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의 세월이었다.

"4년은 금방 가요" 금메달리스트의 말에 둘째를 결심하다    

고민하면 자신 없어질 게 뻔했다. 남편에게 "아기 낳을까?" 했더니 20년은 젊어져 청년 같은 얼굴이 되었다. 무조건 좋다고 그랬다. 당장 산부인과에 가서 풍진 항체 검사를 했다. 서른일곱인 내 나이는 객관적으로 많은 편이었지만 내 친구들은 이제 첫 아기를 낳거나 알맞은 터울로 둘째 아기를 임신한 상태여서 노산이라는 걱정은 덜 했다. 

눈물의 씨앗이 되어버린 꽃바구니.
 눈물의 씨앗이 되어버린 꽃바구니.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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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내게 바로 왔다. 그러나 동생 낳아달라는 말을 해 본 적 없는 아이한테 어떻게 말해야 될 지 고민하고 있는데 작은 시누이가 보낸 축하 꽃바구니가 와 버렸다. 저녁밥을 먹던 아이는 숟가락을 내동댕이치고 서럽게 울었다. 그 뒤로도 불러오는 내 배에 맞춰서 점점 크게 "우리 셋이서만 살자!"고 울었다. 

그래도 '간지' 나는 임산부 생활이었다. 아침밥을 꼭 차리는 남편은 같은 음식을 두 번 이상 먹지 않게 약속이 많은 밤 시간에도 반드시 집에 들러 저녁밥을 챙겨주고 나갔다. 나는 오래 오래 벼러온 결심을 행동으로 옮겨 재택근무자가 되었다. 10년 전 첫아이를 낳을 때처럼 출산 날까지 일하고 순산하는 해피엔딩을 향해 고고씽~.

'블록버스터 출산대장정'의 길로 말려든 건 임신 29주째였다. 저녁밥 먹으러 가려는데 하혈을 했다. 병원에 갔더니 진통이 3분 간격으로 오고 있었다. 입원하고서 아기가 나오지 않게 잡아주는 주사를 맞았다. 씻지도 않고 누워서만 지냈는데도 닷새째 되던 날에 산부인과에서는 3차 병원(대학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임신 29주째... '블록버스터 출산대장정'의 길에 오르다

그 곳은 차원이 달랐다. 임신 16주부터 누워 지내는 산모, 날마다 태반이 떨어져나가서 대소변조차 받아줘야 하는 산모, 뱃속의 아기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산모, 주기적으로 배에 작은 구멍을 내서 양수를 빼내야 하는 산모... 나는 임신성 당뇨에 철분 수치가 낮긴 했지만 뱃속 아기는 1.2kg이니까 괜찮은 편이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먹히지 않는 위로였다. 

무엇보다 아기가 어떤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쑤시고 아팠다. 임신이 바로 될 줄 모르고 날마다 골프연습장(아기 심장에 무리가 간다고 골프는 하지 말라고 한다)에 다녔고, 감기약도 먹은 적 있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권하던 양수 검사도 하지 않았다. 회진을 도는 의사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 아기의 건강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 침대는 사람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장치가 있는가. 꿈을 꾸면 항상 아기를 낳았다. 태어난 아기는 내 엄지손톱만 했다. 게다가 점점 작아져서 눈송이만 해졌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소리도 못 내고 울면서 아기를 찾으러 다니다 깨 보면 새벽이었다. 이 굴욕적인 병원 생활에 대한 복수는 건강한 아기 낳는 것밖에 없는데 날이 갈수록 자신이 없었다.

멍 때리게 되고, 싼 티 나는 쌍꺼풀을 생기게 만들던 주사. 저렇게 많은 주사를 날마다 달고 살았다.
 멍 때리게 되고, 싼 티 나는 쌍꺼풀을 생기게 만들던 주사. 저렇게 많은 주사를 날마다 달고 살았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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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로 끝나지 않았다. 아기가 나오지 않게 도와주는 주사를 맞으면서 누워만 지내는데도 진통은 시도 때도 없이 왔다. 주사약 단계를 높이면 말이 어둔해지고, 똑바로 있으려고 해도 멍 때리게 되고, 싼티 나는 쌍꺼풀이 생겼다. 조산을 막아주는 순한 주사약은 세 번까지만 보험 적용이 되고, 그 다음부터는 80만원이었다.

입원한 지 3주 넘어서 중간 정산하라고 나온 병원비는 410만원. 임신 34주가 되면 아기는 신체의 모든 기관을 완성한다. 그러나 가장 늦게 완성되는 폐는 아기가 이 세상에 나와야지만 그 상태를 알 수 있다. 병원에서는 그래서 최대한 35주까지 버티라고 했다. 작은 시누이는 병원비 걱정일랑 하지 말고 그 때까지만 참아내라고 했다.

병원 생활도 길어지니까 일상이 되었다. 보고 싶은 아들 완소제굴, 갑자기 떠나온 우리 집과 밥벌이, 봄이 왔는데도 꽃길을 못 걸어봤다는 불평 따위는 접었다. 한참 건너 뛴 태교를 위해 우리 집에서 가장 긴 책인 <토지>를 가져다 달래서 끝까지 다시 읽고, 웃음이 빵 터지면서 신나게 봤던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도 복습.   

임신 35주째 퇴원, 그러나 '임신성 혈소판 감소증'으로 다시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임신 35주도 꽉 채웠다. 나는 퇴원했다. 최대한 뱃속에서 아기를 키우는 게 중요하니까 집에서도 누워 지냈다.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으로 좋았다. 통쾌했다. 완소제굴이랑 남편이랑 셋이 밥 먹고, 같이 누워 자고, 둘 다 지각 좀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일상은 감격 그 자체였다.

임신 37주를 채우면 동네 병원에서 아기 낳아도 된다는 희소식도 들었다. 그래서 홀가분하게 임신 말기 검사를 했더니 임신성 혈소판 감소증이었다. 혈소판은 피를 지혈시키는 기능을 하는 건데 아기 낳다가 지혈이 안 되면, 최악의 경우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당연히 3차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통보!

2009년 5월 11일, 다시 입원이었다. 절대 대학 병원에 오지 않겠다는 내 결심은 '까였다'. 고적전인 생활양식을 지킬 줄 아는 시댁 식구들은 5월 11일과 5월 12일 오전 중에 아기를 낳으면 좋다고 했다. 만 10년만의 출산은 초산과 같아서 아기 낳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2시간. 그래서 촉진제 맞는 시간은 5월 12일 새벽 0시로 잡혔다.

남편은 군산으로 돌아가서 일을 마치고 밤에 오기로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우리 아기가 잘 있나, 진통이 올 만한가 심전도 검사를 받았다.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내 코에 산소마스크가 씌워지고,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주치의를 불렀다. 내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빨라졌지만 어떠한 짐작도 하기 싫었다.

이미 고속화도로로 들어선 남편의 차가 되돌아오는데 걸린 30분 동안에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뱃속 아기의 호흡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남편이 수술동의서를 쓰자마자 나는 수술실로 옮겨졌다. 입원 기간 동안 긍정의 말은 별로 해주지 않아서 내 속을 후벼 파던 담당 의사는 내 손을 잡아주며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진짜였다.

아이는 건강했다... 그리고 세월은 빨리 지나갔다

태어난지 19일째 되던 날 꽃얄리군. 건강하게 태어난 것 자체로 평생 효자로 등극!
 태어난지 19일째 되던 날 꽃얄리군. 건강하게 태어난 것 자체로 평생 효자로 등극!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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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뵤! 아기는 건강했다. 예정일보다 3주 앞당겨 수술해서 꺼냈지만 스스로 호흡했다. '얄리'(스페인말로 미인)라는 태명처럼 눈코입이 또릿또릿하고 잘생긴 미남아기였다. 하늘에 대고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었지만 24시간 동안 움직이면 안 됐다. 모든 것이 고맙고 기쁘고 좋았다. 나도 출산 뒤 뱃살 걱정하는 평범한 산모가 된 거다. 

작년 여름에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 말처럼 시간은 금방 갔다. '출산대장정'을 거쳐 태어난 꽃얄리군은 기어 다니고, 잡고 선다. 서랍을 열어 형아가 아끼는 카드를 꺼내 '후지르고', 방바닥에 펼쳐진 형아 책은 빛의 속도로 기어가 빨거나 찢는다. 학교 갔다오는 형아한테 열광하면서 쫓아다니는 걸 보면,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이 세월이 참 좋다.

형아 하는 일에 저절로 레이저를 쏘며 다가가는 꽃얄리군.
 형아 하는 일에 저절로 레이저를 쏘며 다가가는 꽃얄리군.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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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소제굴은 꽃얄리군 태어나고 100일이 지나도록 일기장에 단 한 번도 동생 얘기를 쓴 적이 없다. 저항이었다. 같은 학원 다니는 누나들한테 문자도 많이 받고, 핸드폰은 비밀 번호까지 걸어놓고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가면서도, 나보고 자기를 꽃얄리군처럼 안아 달라, 재워 달라, 입혀 달라, 사랑해 달라고 들볶았다.

"아! 둘째를 너무 일찍 낳은 거야. 적어도 스무 살 터울은 둬야 했는데..."

한숨은 쉬고 있지만 10년 동안 외동이었던 완소제굴과 그 옆 꽃얄리군을 보면 기분이 좋다. 보톡스 맞으면 이럴까나? 꽃얄리군은 갓난아기처럼 아직도 밤새 예닐곱 번씩 깨서 유격훈련 시키지만 내 얼굴은 반짝반짝, 아기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서 '쌩쇼'를 한다. 이러는 나한테 완소제굴은 너무나 맞는 말을 해서 반항하게 만든다.

"엄마, 낼 모레 마흔 살인 거 잊지 말라고요~"
"왜 이러셔? 내년까지는 미모의 30대 여성이거든!"

동생이 갓난아기 적에는 예뻐하는 척만 했던 형아 완소제굴.
 동생이 갓난아기 적에는 예뻐하는 척만 했던 형아 완소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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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태우며 태어났지만 지금은 잘 크고 있습니다...^^
 애 태우며 태어났지만 지금은 잘 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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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저, 사고쳤어요>에 응모합니다.



태그:#열 살 터울,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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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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