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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를 제자리로 돌리고 나서 한껏 신이 난 아내. 산달이 다가오는 어느 주말, 난 그녀에게 이끌려 출산교육을 받으러 안산 조산원에 가야만 했다. 또 빤한 이야기겠지만, 역아도 돌리고 했으니 뭔가 다를 수도 있겠거니.

늦게 도착한 조산원에는 우리 말고도 7~8쌍의 부부가 앉아서 조산사의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가깝게는 서울, 멀리는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온 부부도 있었다.

조산원의 교육 내용은 그 전과 대동소이했다.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병원과 조산원 출산의 차이점, 조산원에 대한 우리의 편견, 그리고 출산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상식과 체조 등등.

앞선 조산원과 차이점이 있다면 안산의 조산사는 산부인과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 의견을 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조산사는 조산원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분만실 임상경력 23년을 바탕으로 산부인과의 중요성 역시 인정하였다.

산부인과의 모든 검사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며, 결국 태아 사망률이 낮아진 건 산부인과를 비롯한 의학의 발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 조산원에서 해결하지 못할 태아라고 판단되면 산모를 산부인과로 보내는 게 옳다는 그녀.

다만 조산사는 모든 걸 산부인과에서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맹신이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산부인과를 가야만 아이가 큰다고 생각할 만큼 산부인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우리의 현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조산사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아내가 불쑥 말을 거들기 시작했다. 처음 산부인과 갔을 때 만든 '고운맘 카드'가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산부인과에 대한 맹신을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고운맘 카드'는 정부에서 출산 장려를 위해서 임산부에게 인심 쓰듯이 진행하는 제도이지만, 그 카드의 20만원을 국가가 지정한 의료기관, 대부분 산부인과에서만 쓸 수 있도록 해놔서 오히려 그만큼 쓸데없는 지출을 조장한다는 지적이었다. 어차피 딴 곳에 쓰지도 못하는데 병원에서 불필요한 검사라도 받으라는 식의 선심.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과일이라도 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불평불만은 책상 위 결정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일 것이다. 왜 20만원을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게 만들어 놨는지. 셋째 정도 낳은 산모들은 산부인과에 몇 번 가지 않아도 무리가 없다던데, 그 돈을 조산원에서도 쓸 수 있게 풀어 놓던가.

우리의 선택은 결국 조산원으로 좁혀지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까꿍이
▲ 까꿍이의 모습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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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조산원에서의 두 번째 교육이 마무리 되었고, 난 이 정도라면 큰 무리가 없는 이상 아내가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조산사의 말마따나 결국 아이를 낳는 건 산모인 바, 그 산모가 가장 편안해 하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물론 아내는 아직까지 집에서의 출산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눈치 상 그녀 역시 가정분만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응급사태가 걱정되긴 했지만 다행히 조산사는 자신의 능력 외의 태아에 대해 욕심내지 않는 듯 보였고, 조산원은 근처의 산부인과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다만 문제는 위급할 때에도 산모가 끝까지 자연분만을 고집하는 경우인데 그땐 내가 강제라도 병원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그러나 아내에게 그런 진심을 알리지는 않았다. 만약 나 또한 조산원에서 낳자고 이야기 하다가, 혹여 응급사태가 생겨 병원에 가게 된다면 아내가 그만큼 더 실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조산사의 도움만으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산모와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산모. 어쩌면 이 구분은 출산과 관련되어 현대의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인지도 모른다. 무조건 약물을 투여하거나 수술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정 힘들 경우에만 의학의 힘을 빌리는 것이 가장 최선의 출산법인 이상 현대의학이 가야 할 길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 서구 유럽에서 가정분만이 증가하는 사실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이는 결국 현대의학의 힘은 빌리되 남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요, 과거 출산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과 현대의학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세계적 추세와 달리 아직까지 산부인과에만 연연하는 우리사회. 이는 우리의 굴곡진 근대사와 관련이 깊다. 근대의학 자체가 선진문명의 일환으로서 폭력적으로 수입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중요한 전통이나 가치를 너무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조산원이 출산의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산부인과 또한 정답이지 않은 이상, 우리가 할 일은 좀 더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사례를 비교해서 더 낳은 출산법을 찾는 일일 것이다.

또 다른 위기의 시작 ""여보, 나 갑자기 열이 막 올라"

복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
▲ 선택의 밤 복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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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교육도 받았겠다, 아기용품도 어느 정도 구비해 놨겠다, 이제 까꿍이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던 임신 36주 차 어느 날. 회사 직원들이랑 점심시간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다급한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눈물범벅이 된 그 목소리.

"여보, 나 갑자기 열이 막 올라. 산부인과에 가니까 37.79도로 신종플루 거점병원으로 가래. 어떻게 하지?"

갑자기 맥이 풀렸다. 신종플루. TV 속에서나 볼 수 있던 그 신종플루가 우리 이야기가 될 줄이야. 우선 울고 있는 아내를 달랜 뒤, 어머니와 거점병원인 고대구로병원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를 부탁했다. 회사에 돌아오고 나선 하루 내내 임산부와 신종플루 관련 검색어 찾기.

서둘러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온갖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과연 어찌해야 되는 것일까. 아이를 배고 있는 산모는 음식도 허투루 먹으면 안 된다는데, 아내에게 타미플루를 먹여야 하는 것일까?

아직 신종플루 확진도 받지 않아 확률도 반반인데 타미플루를 먹는 게 옳은 일일까? 지금까지 아내의 상황을 봐서는 극본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며칠 밤 샜던 것이 탈이 된 것 같은데 지금 우리가 침소봉대하는 것은 아닐런지.

선택의 밤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산부인과, #조산원, #신종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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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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