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큰손자가 학교에서 끝날 때쯤이면 학교 앞으로 가곤 한다. 지난 7일에도 녀석에게 갔다. 제 집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 이 책 가지고 가서 공부해"한다. "이게 무슨 책인데?" "이 책은 내가 컴퓨터 배울 때 공부하던 책이야. 아마 할머니도 몇 가지는 배울 게 있을 거야."
너무나 어른스러운 말에 말문이 막혔지만 손자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난 책을 받아들고 대충 흩어보니 기초가 아주 잘 되어 있는 책이었다. 책을 펼치면서 "진짜 이것도 할머니가 모르는 거였는데. 배울 거 많은 것 같은데. 그래, 할머니가 이 책 가지고 가서 공부할게"했다. 손자가 그러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작은 손자가 신종플루에 걸려 큰손자가 우리 집에 와있을 때였다. 녀석이 컴퓨터를 한참 만지더니 바탕화면이 멋지게 바뀌어 있었다. 난 "우진아, 이거 우진이가 한 거야? 대단하네"했다. 녀석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는 "응, 내가 했어. 친구네 놀러갔더니 이런 바탕화면을 해났어. 멋있지? 내가 우리 집에도 해놓고 할머니 것도 이거로 깔아준 거야."한다.
"그런데 이런 사진은 어디에서 찾았어?"
"인터넷에서 찾았어. 할머니도 마음에 들어?"
"그래, 멋있다. 마음에 들어."
그렇게 손자가 한 번씩 해 주는 것 중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제법 있다. 또 한 번은 바탕화면에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문구를 쓴 것을 깔아놓은 것이다.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물어보니 아주 신나해 하면서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하여 녀석이 자신이 배우던 책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었나 보다.
큰손자는 방과후학습으로 컴퓨터를 배운다. 6개월 정도 배우더니 이젠 내가 녀석에게 배워야 할 정도가 된 것이다. 난 컴퓨터를 체계적으로 학원을 다니거나 동사무소에서 배운 적이 없다. 처음에는 아들이 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게 됐고 처음에는 게임부터 시작했다. 게임을 하다 보니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한 가지 두 가지 나도 모르게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 글쓰기가 나에게는 가장 큰 스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올리기도 별로 큰 어려움 없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동영상 편집이었다. 아들은 일 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니 딱히 누구한테 물어 볼 사람도 없었고, 사람이 있다 해도 동영상 편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혼자 동영상 편집에 성공한 것이 꿈만 같다. 하지만 동영상을 편집할 당시에는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기본적인 것은 캠코더에 설명을 보고 해결했다. 그러다 막히면 인터넷을 뒤져서 해결하곤 했다. 그래도 좀처럼 내가 원하던 영상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동영상 편집으로 씨름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 먹는 것도 잊은 채 동영상 편집에 몰두했지만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끙끙거리다가 드디어 내가 원하던 대로 편집이 되었고 자막도 넣을 수 있었다. 그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편집을 하려 하니 무엇을 건드려야 편집이 되는지 또 헷갈렸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그렇게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건드려보다 다시 해냈다. 그때는 동영상 편집하는 순서를 꼼꼼하게 필기를 해놓았다. 그다음부터는 차례를 잊어버려도 상관없었고 자주 하니 필기해 놓은 것도 필요 없게 되었다.
요 며칠 녀석이 준 책을 보면서 실습을 해보곤 한다. 아주 쉽게 풀이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많은 도움이 될 것같다. 옛말에 80살 된 노인이 3살 손자에게 배운다더니. 녀석과 더 많은 공감대와 소통을 위해서, 모르는 것은 더 자주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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