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개혁은 경제정상화의 신호탄인가, 경제혼란의 신호탄인가. 사회주의 북한에 '경제정상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단행된 북한 화폐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물자공급 문제 즉, '북한이 내부적인 물자공급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외부지원으로만 가능한 것인가'라는 쟁점으로 정리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가 10일 오후 국회에서 연 '북한의 화폐개혁,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도 이런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홍익표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는 주제발표에서, 북한이 화폐개혁에 나서게 된 배경을 ▲ 인플레 압력과 원화의 구매력 저하 ▲ 북한정부의 재정능력약화 ▲ 시장확산 및 일부 부유계층의 등장에 따른 통제필요성 ▲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의 격차확대 ▲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의 목표달성을 위한 적극적 경제조치 등으로 정리했다.
이어 화폐개혁의 목적에 대해서는, 화폐유통체계의 정상화와 국가통제강화, 은행 역할 강화와 이를 통한 유휴화폐의 효율적 활용 및 '원(은행)에 의한 통제강화라고 주장했다. 표현은 차이가 있지만, 진보-보수진영이 북한의 화폐개혁 배경과 목적에 대해 대체적으로 이같이 정리하고 있다.
그는 화폐개혁의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시장의존이 제한적이고, 북한 당국의 주민장악과 통제력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에 폭동이나 반정부 시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번 화폐개혁의 성패는 ▲ 공급부족 현상 해소 ▲ 확보된 자금의 효율적 활용을 통한 경제발전 ▲ 금융과 기업부문에 대한 추가적 개혁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공장가동률 하락, 내부공급 불가"... "150일전투-대중경협으로 능력 확보"이후 토론자들은 북한의 물자공급능력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북한은 150일 전투를 성공시켰고, 석탄과 전력생산량을 늘렸기 때문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수준의 물자공급은 가능하다"며 "북한경제가 갈 데까지 갔다고 보는 시각 때문에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원자재가 필요한데 오히려 최근에 원자재 부족이 심화돼 공장가동률은 20%대까지 떨어졌고 비료수확량도 줄었다"고 반박하면서 "결국 중국의 외부지원으로 메워야 하는데, 중국에서 들여오는 건 생필품이 아니기 때문에 공급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이것이 다시 물가상승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150일 전투 등에서 노동력과 제한된 자원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일정한 수준까지 생산력을 확보했을 것이고, 북한이 그런 판단없이 화폐개혁에 나섰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얼마나 지탱할 수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의 여력을 가진 상태이며, 그 범위 밖의 부분은 외부지원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은 계획경제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현재까지 왔고, 150일 전투도 자본축적이 아니라 짜내는 수준"이라면서 "이번 화폐개혁은 극약처방이고 임시처방이기 때문에 벌어놓은 시간 내에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을 계기로 근본적인 대외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북한의 내부 공급능력을 회의적으로 보는 측은, 대미·대남 관계개선을 통한 물자공급을 통해서만 북한의 경제문제 해결이 가능하며, 이번 화폐개혁도 이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발제자인 홍익표 교수는 "북한은 150일-100일 전투와 중국과의 경협을 통해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공급 능력을 확보했다고 본다"면서 "대미관계가 개선으로 물자가 공급된다 해도 거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를 염두에 두고 화폐개혁에 나선 것은 아니라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음은 토론자들의 중요발언 요약.
"핵심키워드는 2012년 강성대국-후계작업"
고유환 교수: "한마디로 경제적인 친위쿠데타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신흥상업계급인 '돈주'의 출현이 양극화를 초래했고, 이들이 군부-관료와 결탁해 기득권화할 경우 안정적인 후계구축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기 어렵다. 상당히 시장화 진행됐고, 내부자원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핵포기와 평화협정을 맞교환하는 결단이 나오지 않고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개혁개방의 사전정비 차원의 조치일수 있다.
현 정부 들어,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퍼줬음에도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번 화폐개혁을 통해 북한에 무시할 수 없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햇볕정책과 남북교류협력이 (시장화 증진과 신흥상공인의 등장과 같은) 북한의 변화를 촉진한 것임을 입증한 것이다.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위에서 추수하여 억제하는 형태로 화폐개혁이 나타난 것이다."
임을출 연구교수: "북한의 화폐개혁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핵심키워드는 '2012년 강성대국'과 '후계문제'다. 경제강성대국건설을 위한 재원마련과 공식후계작업 마무리를 위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화폐개혁이 노동자, 농민에게 이익이 될 것이고, 신흥상공인이 패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농민에게 안정적인 임금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는데, 국가가 재정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이것이 가능한가. 신흥상공인은 누구인가. 일부가 아니라 굉장히 광범위하다. 거의 모든 계층이 직간접적으로 시장에 의존해서 살았기 때문이다. 북 당국으로서는 신흥상공인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강성대국, 후계체제건설위해서는 이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경제재건은 내부자원만으로는 힘들며, 외자유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 관건은 북미관계와 6자회담이고 거기서 진전이 돼야한다."
조봉현 연구위원: "북한의 화폐개혁을 보면서 암행어사 마패가 생각났다. 문제가 심각할 때 어사를 보내는 방식으로 나선 것이고, 김정일 위원장의 힘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이번 조치는 이렇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시장의 부작용이 확산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북한 수뇌부는 이를 방치할 경우 통제불능으로 갈 것을 고민하면서, 문제폭발직전에 대책을 낸 것이다. 시점은 왜 하필 지금일까. 150일전투도 실패로 끝났고, 100일전투도 곧 끝나는데 이것도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북한과 미국이 물밑에서 상당한 접근을 했고, 특히 경제분야에서 엄청난 논의를 했다고 한다. 보즈워스 대표가 방북하는 시점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본다. 단기적으로는 집단행동이 나타날 수 있으며, 화폐개혁이 실패할 경우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박경순 부소장: "이번 조치는 1959년도 화폐개혁처럼 강성대국 건설의 기치아래 제2의 천리마 운동을 펼치고 그 결과 여러 부문에서 생산의 정상화가 실현됐다고 보고 이런 자신감아래 단행한 것이다. 정도문제는 있겠지만 그 목적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번 화폐개혁의 성공여부는 시장의 위축에 따른 공급부족 심화현상을 국가공급망 체계가 담보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