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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숙지원(淑芝園) 텃밭에 우리가 먹을 만큼의 마늘을 심었다.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 비료조차 뿌리는 일도 없기에 약간 씨알이 작은 감은 있다. 하지만 오래 보관해도 상하는 일이 없고 시장에서 파는 마늘에 비해 맛과 향이 비교할 수 없다고 자랑하는 아내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풋풋한 마늘을 보며 아내는 전라도 말로 "오지다"면서 솎으기도 아깝다고 한다.

마늘은 우리 밥상에 빠지지 않는 식품이다. 고기 구워 먹을 때나 회를 먹을 때도 항상 곁들여 먹는 것이 마늘이요. 비록 고추처럼 드러내지 않더라도 밥상에 오르는 많은 반찬에 빠지지 않는 양념이 마늘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마늘이 건강식품이라는 소개와 함께 항암제 등 약품으로 개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마늘에 대한 유별난 사랑을 말하는 사람도 많고, 마늘을 가공하여 상품화하는 광고도 보인다.

아무튼 마늘을 통해 각종 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기대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마늘은 버릴 것이 없는 농작물이다. 어린 풋마늘은 입맛 없는 겨울에 데친 나물이 되어 식탁을 푸르게 하고 봄에는 마늘쫑이 되어 밑반찬으로 상에 오른다. 자란 마늘은 우선 음식에 빼놓을 수 없는 양념과 약이 되고, 마늘 대는 말려 불을 때거나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유용한 농작물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늘의 성장 과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마늘은 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에 수확하는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농작물이다. 추위가 오기 직전 늦가을에 심으면 겨울에 싹이 트고 동토에서 눈보라를 이기고 자라면서 겨울 텃밭을 푸르게 한다.

마늘밭 전경.한 접 반을 심었는데 금년 겨울에 솎아먹고도  내년 봄 네 접 이상은 수확할 것이라고 한다.
▲ 마늘밭 마늘밭 전경.한 접 반을 심었는데 금년 겨울에 솎아먹고도 내년 봄 네 접 이상은 수확할 것이라고 한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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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서 좋은 식품이 마늘뿐이랴, 또 자칫 황량해질 겨울 텃밭을 푸르게 하는 농작물이 마늘뿐이랴? 그렇지만 곰을 사람으로 환생시켰다는 이야기 속의 식품이 마늘 말고 또 있던가?

곰이 마늘을 먹고 여자가 되었다는 설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그 설화를 그대로 믿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설화는 마늘이 우리민족에게 전래된 과정과 오래 전부터 우리민족의 밥상을 지켜왔음을 알게 해 주는 한 자료다. 그렇더라도 마늘의 신비로움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50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함께 해온 마늘이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유전인자에 마늘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마늘의 정령이 숨어 흐르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마늘을 다른 농작물과 다르게 보는 이유는 또 있다. 더 큰 나무도 추위에 숨을 죽이고, 옷을 입은 사람도 겨울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연약한 줄기로 언 땅에 뿌리를 내리고 눈보라에 몸을 내맡기면서도 몸을 굽히지 마늘의 모습을 보면 결코 꺾이지 않는 의연함이 느껴진다. 또 집단으로 모여 있는 마늘의 모습은 숱한 외침과 불평등으로 인한 가난 속에서도 이 땅의 역사를 지켜온 서민의 원형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동장군에 맞서는 마늘을 본다. 신화 속 주인공이면서 사람들의 난치병을 치료해주는 약품이 되는 마늘이다. 가늘고 여린 잎으로 차가운 북풍에 맞서 자랄 수 있는 힘을 가진 식물이다. 한국 사람이 먹는 거의 모든 음식에 양념이 되어 맛을 살려주면서도 자신을 감추는 마늘이다. 마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는 영감(靈感)을 주는 영물(靈物)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솎아먹기 좋을만큼 자랐다. 된장을 찍어먹어도 마늘 맛이 제법 풍긴다.
▲ 현재 마늘의 모습 솎아먹기 좋을만큼 자랐다. 된장을 찍어먹어도 마늘 맛이 제법 풍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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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를 굽혀서라도 몸을 드러내는 것을 성공이라고 여기는 사람, 한 번도 추운 곳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틈을 내어 한 번 쯤 마늘밭을 찾아 겨울 추위에서 푸릇푸릇 살아있는 마늘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을 드러냄이 없이 밥상의 음식을 음식답게 만들어주는 마늘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치, 경제적으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계절이다. 서민들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좌절과 절망의 고통을 겪는 분들도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마늘, 겨울에도 굽히지 않는 마늘을 생각하며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마늘, #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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