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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한국노동연구원 노조지부장.
 이상호 한국노동연구원 노조지부장.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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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국책연구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직장폐쇄 조치가 단행된 한국노동연구원 앞에 박기성 원장 명의로 '노동조합의 장기간 쟁의행위로 인해 정상적인 연구 및 경영활동이 불가능하여 불가피하게 직장을 폐쇄하게 되었다'는 공고문이 나붙어 있다.
 2일 국책연구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직장폐쇄 조치가 단행된 한국노동연구원 앞에 박기성 원장 명의로 '노동조합의 장기간 쟁의행위로 인해 정상적인 연구 및 경영활동이 불가능하여 불가피하게 직장을 폐쇄하게 되었다'는 공고문이 나붙어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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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성 원장은 결국 사퇴했다. 노조도 86일 만에 파업 철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한국노동연구원 노조원들은 직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노동연구원 사측이 여전히 직장폐쇄를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조가 복귀하기로 한 15일 오전, 사측은 연구원 전체메일을 통해 "직장폐쇄 해제를 공식적으로 통보하기 전까지는 사무실에 들어오거나 업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통보했다. 사측이 내세운 조건은 조합원들의 '파업종료확인서'. 이미 노조는 조건 없는 파업 철회를 결정했는데도, 사측은 "더 이상 파업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업무에 복귀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요구하고 있다.

연구원 노조에 따르면, 이날 오전 직무대행인 김주섭 연구관리본부장 등은 노조 측에 전화를 걸어 확인서와 관련, "다시 파업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부터 무단협 상태인 노조에 파업권까지 포기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지난 2월 단체협상 해지로 불거진 노동연구원 사태는 14일 박 원장의 사퇴와 노조의 파업철회로 새 국면을 맞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박 원장은 사라졌어도 "노동3권을 헌법에서 제외해야 한다"던 그의 소신은 노동연구원에서 여전히 현실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여의도에 위치한 연구원 건물에서 만난 이상호 노동연구원 노조지부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오래간만의 출근을 앞두고 전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 지부장은 "어느 정도 압박을 예상했지만 이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다른 조합원들도 출근은 했지만 복귀는 못한 채 연구원 안에서 대기해야 했다.

파업 포기 요구하는 노동연구원 "업무 수행해서는 안 됩니다"

이상호 지부장은 박 원장의 사퇴에 대해 "노조의 투쟁 성과도 아니고, 이것으로 사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오히려 상황이 악화됐다고 그는 보고 있었다. 조합원 집단 고소 고발과 '파업 포기' 요구 등 압력 수위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미 전날 연구원 사측과 관리감독 기관인 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하 경인사연)은 업무방해죄·퇴거불응죄 등의 혐의로 조합원들을 각각 고소 고발했다. 박 원장의 사표가 수리되던 날 벌어진 일이다. 특히 경인사연이 고소한 조합원들 중에는 뇌졸중으로 투병 중이거나 임신으로 사실상 파업에 참여하지 못한 연구원들도 있다.

이상호 지부장은 "박 원장의 튀는 행보가 부담스러워 정부가 장수를 바꿨을 뿐"이라면서 "이제 정부가 직접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 오후 6시께 사측과 만나 "빨리 기관을 정상화해야 한다, 복귀하면 청소부터 해야 한다"는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사측은 밤새 태도를 바꿔 직장폐쇄 유지 방침을 통보하면서 "위(경인사연)에서 내려온 일"이라고 강조했다. 경찰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5일 오전 한국노동연구원 사측은 연구원 전체메일을 통해 직장폐쇄 유지를 통보했다.
 15일 오전 한국노동연구원 사측은 연구원 전체메일을 통해 직장폐쇄 유지를 통보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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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연구원 노조는 '노동'의 상징성이 큰데다가, 경인사연 내 다른 국책연구기관들도 줄줄이 단협이 해지된 상황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이 지부장은 "다른 연구원들도 이 쪽 상황을 보고 있다, 우리가 단협 체결을 못하면 다른 공공부문도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단협 해지를 무기로 사용하는데 이것이 민간으로 확대되면 집단적 갈등이 불거진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연구원 사태는 51명 규모의 노조가 대응하기에는 그 변수가 복잡하고 해결의 물꼬도 트기 어렵다. 그러나 이상호 지부장은 "조직력은 오히려 강화됐다"면서 파업 재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 지부장은 박기성 원장에게 공을 돌렸다. 그가 적절한 시점에서 반노동 행보로 조합원들을 단결시키고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켜준 덕분이다. 사상 초유의 연구원 파업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박 원장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연구원은 김주섭 연구관리본부장의 직무대행 체계로 운영되고 있으며 신임 원장은 1~2달 뒤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핵심인 단협 역시 그때까지 교섭이 보류된다. 이 지부장은 새 원장의 자격으로 "노동기본권을 대변할 정도의 가치관"과 "연구의 과학성·객관성 보장"을 꼽았다.

다음은 이상호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

장수만 바뀔 뿐... "정부가 직접적으로 노조 공격"

- 박기성 원장의 사퇴를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정부가 한발 물러선 것으로 봐야 하나.
"노조의 투쟁 성과라고 보진 않는다. 박기성 원장은 정부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직장폐쇄 이후 교섭에서 노조가 대폭 양보를 했고, 잠정 합의된 내용은 정부가 보기에 공공부문에서 최고 수준이었다. 이렇게 합의할 때 주변에서도 박 원장을 많이 설득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갑자기 박 원장 개인이 노사 합의를 틀고 직장폐쇄를 했다. 폐쇄 사유도 사실관계에 어긋났다. 정부에서도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본다. 전쟁에서 질 것 같으니까 장수를 바꾼 것이다."

- 새 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두 가지 면에서 따져볼 수 있다. '리더'로서 연구원장은 설득을 통해서 조직 구성원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박 원장처럼 군대처럼 해선 안 된다. 연구조직엔 창의성과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이곳은 노동을 연구하는 조직이다. 사회 주체들이 우리 연구보고서를 보고 정책을 판단한다. 아무리 보수적이라도 한국 헌법질서 속에서 노동기본권을 대변할 정도의 가치관은 있어야 한다. 어차피 과제 선정권은 정부에 있고, 국책연구기관은 그에 따를 수밖에 없지만, 연구 방법과 결과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내야 한다. 원장이 이를 보장해야 한다."

- 박 원장의 경우 파격적 언행과 도덕성 문제로 물의를 빚었지만, 그 때문에 싸움의 대상이 뚜렷하고 여론도 노조에 우호적이었다.
"단순히 사측이 단협을 해지한다고 해서 노조들이 다 이렇게 장기 파업하지는 않는다. 노조가 독해서가 아니라 박 원장의 무리한 공격 때문에 자기 방어를 한 것이다.

그러나 박 원장이 투쟁의 핵심은 아니다. 상황이 오히려 악화된 것 같다. 정부가 더 직접적으로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 파업종료확인서를 요구하는 것도 노무사를 끼고 철저하게 계산해서 하는 행동이다. 이렇게 되면 살기 위해서 노조가 다시 (강경하게) 투쟁하는 악순환이 될 것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적어도 노동문제에 대한 상식을 갖고 일해온 사람들이다."

- 파업을 철회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무엇인가.
"(박 원장 사퇴로) 투쟁할 대상이 사라졌고, 장기 파업으로 기관 정상화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반면 단협 체결이라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고, 무방비 상태의 조건 없는 복귀라는 점 때문에 걱정했다."

- 단협 체결까지 갈 길이 멀다. 파업은 철회했는데 다음 수는 무엇인가.
"단기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사측과 경인사연이 고소 고발을 했고, 이후 사측이 징계도 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과서적으로 합법 투쟁을 했다. 평화로운 파업이었고 원장 출근저지나 기물 파손도 없었다. 다른 노조활동가들이 '너희처럼 파업하는 게 어디 있냐'고 할 정도였다. 법에 의해서 판단 받으면 100% 이길 것으로 본다. 그 정도 싸울 힘은 있다."

- 현재 조합원들의 상황은 어떤가. 다시 파업할 수도 있나.
"일단 준비는 되어 있고 교섭하다가 잘 안되면 파업권을 행사할 수 있다. 조직력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화됐다. 다행히 파업기간 내 임금이 50% 보전되어 경제적 부담이 적었고, 전국 최고의 강사가 교육하는 등 파업 프로그램도 확실했다. 무엇보다 적절한 시점에 박기성 원장이 (반노동적 행보로) 제 발등을 찍었다. 박 원장 때문에 파업이 가능했다.

사실 처음엔 86일은커녕 전면파업 자체를 예상 못했다. 나도 단협 해지 공문을 받고 펑펑 울었다. 외부 피케팅도 그 이후 처음 해봤다. 그때만 해도 조합원들이 피켓에 '박 원장'이라고 쓰면 잡혀가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다. 국정감사 당시 국회 앞 1인시위도 결의가 된 소수의 사람만 했다. 그러나 해보니까 별것 아니라는 걸 체험하면서 순번대로 1인시위를 했다. 그렇게 확장됐다."

- 여전히 무단협 상태다. 교섭은 어디까지 진행됐으며 이후 전망은 어떤가.
"직장폐쇄 이후 교섭에서 노조가 대폭 양보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협보다 조직이었다. 단협 수준이 높아도 조직이 깨지면 안 된다고 봤다. 쟁점 중에서 근로시간 중 조합활동은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쌍방이 합의했다. 평가위원회 참여도 '노사 동수'에서 상징적으로 2인만 남겨 사실상 의결권을 포기하고, 평가 결과의 정보 투명성을 보장받기로 했다. 고용안정위나 직선 노조간부에 대한 징계 제한에 대해서도 잠정 합의했는데 그 부분은 박 원장이 (거부해) 틀어버렸다.

이후 교섭은 신임 원장이 와야 시작할 수 있다. 김주섭 직무대행은 자신에게 교섭 권한이 없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 원점에서 새로 논의할 수는 없고 (그동안 합의된 것을 바탕으로) 빨리 마무리되어야 한다."

"새 연구원장, 노동기본권 대변할 가치관은 있어야 한다"

이상호 한국노동연구원 노조지부장.
 이상호 한국노동연구원 노조지부장.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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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기관 통폐합설까지 나왔다. 실제로 정부가 연구원을 없앨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연구원을 해산하려면 이사회 의결과 국회 승인 등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고, 수많은 사회적 시선이 있어서 명분상으로도 쉽지 않다. 만약에 해산한다면 그것이 이 정권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다만 구조조정 카드는 유효하다고 본다."

- 다른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연구 자율성 침해와 단체협약 일방해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때문에 경인사연 소속 다른 연구원들의 단협이 전혀 안 되고 있다. 다들 이쪽 상황 보고 있다. 우리가 단협 체결을 못하면 다른 공공부문도 못한다. 우리 문제가 개별 사용자와 교섭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판단에 의해서 되는 것이라서 어려운 면이 있다. 우리가 정부를 접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단협 해지를 무기로 사용한다. 이것이 일상화되고 민간으로 확대되면 집단적 갈등이 벌어질 것이다. 사용자가 해지할 땐 좋겠지만, 많은 노조가 싸울 수밖에 없다."

- 그동안 조합원들이 가장 힘들어한 것은 무엇인가.
"조합원 3분의 2가 여성인데 남편이나 시부모 등 집에서 반대가 크다. 파업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색깔이 덧씌워진다. 다행히 국정감사 기간 동안 박 원장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가고 이후 직장폐쇄가 이어지면서 시선들이 호의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확인받은 것이다. 사태 초기만 해도 부정적이었던 언론 흐름도 지금은 달라졌고, 일부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에서 승소해 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태그:#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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