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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좀 잘 한다는 음식점들은 틈만 나면 프랜차이즈 체인으로 변해버려 아무 곳에서나 생각날 때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조그마할 때 먹었던 음식 맛과 정성은 아무래도 예전보다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던 식당에서 수저를 든 순간 기대이상 좋은 맛을 보게 되면 횡재했다는 기분과 함께 이걸 알려야 되나 혹은 나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하나 망설여지곤 한다.

항아리에 담아오는 숭늉. 누릉지도 꽤 들어있다.
 항아리에 담아오는 숭늉. 누릉지도 꽤 들어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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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O'이란 식당이 그랬다. 내 근무처 바로 뒷골목에 있었지만 홍어삼합, 홍어회, 아구찜이란 팻말이 있는 것을 보고 술집에 점심 먹으러 들어가긴 좀 그랬는데 거의 1년이나 된 후 이집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갑자기 몰아닥친 강추위와 바람 때문이었다.

반찬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반찬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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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기로 찬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었고  매체의 손길은 좁은 골목이라고 그냥 놔두지 않은 듯 벽에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청국장을 시키고 한쪽에서 홍어삼합에 낮술을 하고 있는 손님들의 소란을 애써 피하며 신문을 보고 있으려니 우선 반찬이 쟁반에 담겨 나온다.

생선조림
 생선조림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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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면서도 된장 맛이 돋보였던 해물된장
 담백하면서도 된장 맛이 돋보였던 해물된장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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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8가지 정도 깔리는 반찬들. 묵은지를 위시해서 오징어볶음, 해조무침, 김무침, 부추부침개, 시래기무침, 멸치볶음 들이 나온다. 신문에 눈을 팔며 젓가락으로 김무침을 집어 입안에 넣고 씹으려니 쫀득, 약간 매콤, 달싸한 맛이 느껴진다. '아니 무슨 김무침이 이래?' 생각하며 다시 집어보니, 이럴 수가? 빛이 약간 비쳐지는 얇사한 풋고추말랭이조림이 아닌가?

고추말랭이조림
 고추말랭이조림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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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장
 게장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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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반찬으로 나오는 게장은 너무 짜서 많이 먹을 수 없는데 적당히 짜면서도 게맛을 덮어버리지 않는 간맛이 있다
 보통 반찬으로 나오는 게장은 너무 짜서 많이 먹을 수 없는데 적당히 짜면서도 게맛을 덮어버리지 않는 간맛이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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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뿌리
 맛의 뿌리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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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걷어치우고 남이야 떠들썩하든 말든 반찬을 하나씩 먹어본다. 씹기좋게 말랑한 오징어볶음을 비롯하여 반찬들이 상업적으로 파는 그런 것들도 아니요 가짓수만 채우기 위한 반찬은 더욱 아니었다. 이렇다보니 반찬 하나를 먹는데도 내가 예상했던 맛과 어떻게 다른지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윽고 나오는 청국장. 뚝배기에 팔팔 끓여 나오는 청국장은 깊은 맛과 맛깔스런 냄새 둘 다 만족시킨다.

청국장이 맛과 냄새가 겸비된 것을 찾기 힘든데 여기 것은 어느정도 박자를 갖췄다
 청국장이 맛과 냄새가 겸비된 것을 찾기 힘든데 여기 것은 어느정도 박자를 갖췄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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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청국장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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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만 그런가 하고 연달아 이틀을 더 가서 해물된장, 콩비지까지 시켜본다. 너무 꺼륵하지 않고 시원한 해물된장, 들깨 냄새가 살풋나며 된장 양념이 약간 가미된듯한 콩비지, 집에서도 간혹 비지를 해먹지만 왜 비지를 밥에 비벼먹어야 맛이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반찬은 매일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데 데친 양배추와 된장을 먹어보고 맛의 원천이 어디인지 깨닫는다.

그저 덤덤하니 콩요리에 덤으로 나오는 비지인 줄 알았는데 밥에 비벼먹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 콩비지
 그저 덤덤하니 콩요리에 덤으로 나오는 비지인 줄 알았는데 밥에 비벼먹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 콩비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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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지 않고 씹기 좋을만큼의 질감을 가진 오징어조림
 딱딱하지 않고 씹기 좋을만큼의 질감을 가진 오징어조림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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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일 계속 갔더니 무뚝뚝할 것 같은 아줌마는 의외로 싹싹하고 친절하다. 단골인지 전라도 사람이 오면 걸찍한 사투리로 이야기도 나누는데 해남사람이다. 내일은 쉬고 나중에 홍어탕이나 삼합을 한번 먹어봐야지 하며 만 원짜리로 계산하려니 쥔아줌마가 그런다.

'잔돈 처넌짜리가 업승께 내일 또 옷씨오~ 잉' 

너무 삭지 않고 잘 숙성된 맛을 보여주는 파김치. 등심구이나 삼겹살을 먹을 때 올려놓고 먹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은...
 너무 삭지 않고 잘 숙성된 맛을 보여주는 파김치. 등심구이나 삼겹살을 먹을 때 올려놓고 먹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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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반찬이 될 수 있구나
 이런 것도 반찬이 될 수 있구나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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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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