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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사측의 승리로 마무리됐다고 평가되는 8일간의 한국철도공사 파업의 이면에는 사측의 주도면밀한 파업유도와 노조 무력화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10월초 철도공사 인사노무실이 작성한 '전국 노경담당팀장회의 자료'라는 문건과 지난 12월 7일 철도공사 전국 소속장 회의 자료로 쓰인 인사노무실 작성 문건을 입수, <경향신문> 16일자를 통해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사실 이같은 의혹은 철도공사 노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얘기되어왔던 것인데, 이 의원의 폭로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철도공사 파업 당시 파업의 불법성을 강조해왔던 사측이 '단협해지→파업, 복귀→중징계'라는 시나리오를 갖고 치밀하게 대응해왔다는 것이 낱낱이 드러난 셈이다.

 

16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만난 이 의원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이자 형사범죄가 이 문건으로 드러났다"며 "이런 식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 동안 간다면 노동상황이 심각한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음은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명백한 부당노동 행위이자 형사범죄, 공공기관 단협해지 줄이어"

 

- 이번에 입수해서 폭로한 철도공사 문건이 갖는 의미는.

"철도공사 파업 전인 10월에 작성된 '전국 노경담당팀장회의 자료' 문서는 회사가 대화의 길보다는 노조로 하여금 빨리 파업을 하게 하고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하는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파업을 철도공사가 유도했다는 사실이다. 도덕적으로도 대화를 가장 중시해야 하고 노조와 타협하고 대화를 폭넓고 아량있게 이끌어야 하는 회사가 일부러 파업으로 가게 했다는 것이다.

 

두번째 문서, 12월 7일자인 '조직안정화를 위한 전국 소속장 회의 자료'는 파업 이후 관리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직을 변경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이고 형사 범죄다."

 

- 두번째 문서 중 담당과장 등 관리직의 노조가입자 관리 방안 부분이 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인가.

"노조탈퇴 권유를 계획하고 지시했다는 문서가 나온 것인데, 그 실행 행위가 확인되고 부당노동행위로 고발되면 검찰이 수사해야 하는 부분이다. 고발하지 않아도 검찰이 직권으로 수사해야 하는 부분이다. 철도공사 사장이나 노무관리를 하는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고발해야 하는 문제다. 현재 노동단체와 인권단체 등이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가 나오면, 이 문서에 따라 어떤 일들이 이뤄졌는지 사건별로 자세하게 나올 것이고, 그 사건들에 부당 노동행위가 있으면 당연히 형사 처벌되도록 고발해야 한다"

 

- 이 문건에 대해 그냥 철도공사라는 한 회사 안에서 일어난, 사회적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

"이번 일은 일반 사기업에서 전근대적인 노사관을 가진 경영진이 그냥 이렇게 하는 것에 머무르는게 아니다. 철도공사는 공기업이고, 그동안 정부가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여러가지를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바꾸려고 하는 꾸준하게 해온 정책들이 여기서 나타나고 있다. 단협 해지는 철도공사 뿐 아니라 노동연구원 등 여러 공공기관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말에 이명박 대통령이 공공기관장들을 직접 불러다가 워크샵까지 해가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어중간하게 타협해선 안된다'고 발언을 했고, 파업 중에는 직접 철도공사 상황실을 방문해서 노조와의 싸움을 북돋우는 매우 이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철도공사 노조 파업을 노동운동 전체에 대한 공격의 본보기로 삼으려고 한 것 아니냐는 것이 이 문서로 드러난 것이다."

 

- 이번 철도공사 파업을 신속히 잠재운 것을 앞으로 노조 관계의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는 말인가.

"실제로 철도공사 노조를 여기서 잠재우면, 앞으로 '공공기관 선진화' 등 노사 관계의 전반적인 변화를 정부가 의도대로 끌고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나서서 노조와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

 

"조폐공사 파업유도가 검찰 주도라면 이제는 기획재정부가 노사 파행 유도"

 

- 1998년 조폐공사 파업유도의 경우, 검찰의 파업유도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번에는 국가 기관 개입에 대한 정황은 없나.

"실제로 국가기관 개입 정황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 전체에 대해 단협 해지라는 초유의 사태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런 방향으로, 계속 세게 나가야 한다는 외부의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 한 굳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런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검찰 내부에서 그런 일들을 기획하고 검찰 간부가 전화로 지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기획재정부를 통해서 그런 방침들이 공식적으로 내려가고 있다.

 

기관장 평가라는 이름으로 '공공기관 선진화' 내용에 있는 노사 관계의 변화를 얼마나 실현했느냐, 단체협약을 얼마나 바꿔냈느냐에 따라 기관장평가 점수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단체협약과 노사관계' 부분이 15점이었는데, 지금은 20점으로 올렸다. 100점 만점에 5점을 올렸다면 비중이 많이 오른 것 아닌가. 이제는 이런 부분을 합법적으로 기관장 평가에 반영해서 성과급이나 기관장 유임여부도 다 연결해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훨씬 노골적이고 공공연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철도 공사 사장도 '내가 파업을 유도했다'고 말을 하진 못할 것이다. '노조가 너무 강경하게 대응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대응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려고 하지만, 회사는 대화보다는 충돌하려고 했다는 점이 이 문서에서 다 드러났다. 이제는 대화를 하지 않고 단체협약을 해지해서 노조와 확 붙어서 부숴버리겠다는 의도가 이 문서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고, 이것이 스스럼 없이 많은 공공기관에 퍼트려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 12월 7일 문서에 보면 '정부와 언론 등에서 조기에 불법파업으로 규정하지 않아 역대 최장기간 계속되는 상황에 대처가 미흡했다'는 부분도 있더라. 

"사실상 여론전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기 이전에 단체협약 해지, 교섭결렬의 원인 제공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 사측에 유리하게 여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 단협해지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한국전력 산하 5개 발전사이고, 그 전에 기획재정부가 단협해지 상황을 월별로 모니터링하라고 지시했다. 기획재정부 주도 하에 단협해지 시나리오가 만들어졌고 지금은 그 일부인 철도공사 뿐일 수 있다. 금속 부문 민간현장에서도 단협해지가 나타나는 등 공공부문에서 민간부문으로 퍼져나가는 상황이다. 중앙노동위원회나 노동부가 나서서 이에 대한 입장을 나타내야 하지 않을까.

"단체협약 해지라는 것이 당사자간 권리이기 때문에 중앙노동위원회가 나서기는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노사 관계를 합리적이고 대화 분위기로 풀어야 할 책임이 있고 노사관계가 과열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정부가 노사 관계를 파행시키는데 골몰했다는 것이다.

 

단체협약을 바꾸는 것을 공공기관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 사실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놓은 개선책이었다. 민간도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기준을 정해 합리적인 평가를 통해서 공공기관들이 스스로 경영을 개선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작년 7-8월에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위원들을 바꾸기 시작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민간위원으로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안건도 미리 안보내주고, 참석하라는 얘기도 제대로 안하고 그러면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제도는 유지되더라도 정부 정책을 끌어가는 최고통수권자가 바뀌면 사회가 얼마만큼 후퇴하느냐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만하다."

 

- 앞으로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이런 일들이 반복될 것 같은데.

"이것은 정치적 신호다. 노무현 정부 시절 말미 1~2년 동안에도 공안기관들이 한나라당으로 줄을 섰다. 이제는 이런 기관들이 국민들에게 줄을 서게 해야 한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가 중요하다.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를 어떻게 끌고 갈지. 어떻게 하면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이 무력화되지 않게 할 것이냐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 지방선거때 정국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이다. 

 

"대통령이 노동계 이간질, 이런 식으로 3년 가면 심각한 상황 온다"

 

- 예전에는 작은 단위,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측의 노동탄압이 많았다면 이제는 중산층 이상의 임금을 받는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정부는 공기업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과 높은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공격의 대상이 쉽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실제로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서 '저 사람들(공기업 노동자)은 평생 직장에 높은 임금을 받고 다니면서 뭐가 부족해서 파업을 하느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더 어려운 사람,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가 우선 보장돼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보다 안정된 직장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보장돼야 할 헌법상 기본권이 무시돼선 안된다. '그 사람에게 오늘 보장되는 권리가 내일 나에게 보장되는 수준의 권리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사회적 격차에서 오는 미묘한 심리와 갈등을 노동계를 무력화시키는 것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난다. 더 많이 보장받고 있는 사람들의 것이 무너지면 그 아래 계층은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데, 정부가 자꾸 이런 식으로 이간질을 하고 있다. 대통령이 철도공사 상황실에 가서 '우리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고 있는데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보장 받고도 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는가.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2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이제는 살기를 느낀다. 노동문제에 대한 정책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이런 것을 어떻게 하면 제한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굉장히 연구를 하면서 노동관계법 개정 문제 같은 것들을 내놓고 있다. 이런 식으로 단체 교섭권이 계속 줄어들고, 단체행동권이 이렇게 제약되고 계속 가면 노조는 남아있을 수 없지 않나. 이런 식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 동안 계속 가면 노동상황이 꽤 심각한 상황에 처하겠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 최근 환경노동위위원회에서 임태희 노동부장관이 타임오프제와 관련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제약할 수 있다'고 했다.

"노동 관계법 처리 상황을 올해 말까지 지켜보고 있다. 민노당은 이영희 전 장관 사퇴권고안을 낸 적이 있고 결국엔 교체됐지만, 임태희 장관도 지금 하는 것을 봐선 이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다. 그 전에 노동부 장관께 헌법을 차분하게 읽어보시라고 하고 싶다. 누구든지 헌법이 명령한 것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정책 구상을 하나하나 하기 전에 노동법을 헌법의 차원에서 어떻게 인식해야할 지 공부를 더 하셔야 하겠다. 헌법상이 기본권을 국가 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공공복리 이 3가지 이유로 침해할 수 없다는 것. 헌법상의 기본권 제한에 관한 국가권력의 자기 통제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단체행동권 제약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공부 부족이다."


태그:#이정희, #철도공사,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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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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