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군대 가기 전 대학 2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다니는 수도권 지역 모 대학 학과의 학생들은 4년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 단, 여기에는 직전 학기의 학점이 일정 학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그 조건 학점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울 만큼 높지 않고 평균 B+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노력만 한다면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그 외에도 1년치 유학 학비 지원 등 이목을 끌 만한 특혜가 많다. 이유는 대학의 인지도와 입학 성적이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 비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학금을 비롯한 혜택들은 우수한 수능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본 대학을 지원하게 만드는 학교 측의 전략이자 지원 방침이다.
천정부지 대학 등록금이 대부분 학생들의 부담이듯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 형제가 없다는 것과 우리집 형편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학 입학에 두 번이나 실패한 전적이 있던 만큼 그간의 부모님의 힘겨운 투자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라도 이 학과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
이후 내겐 4년 장학금이라는 달콤한 혜택이 보장된 것 같았지만, 문제는 앞서 말한 그 평균 B+ 학점을 유지해야 된다는 조건에 있었다. 상대 평가로 학점을 받는 상황에서 실제로 우수한 학생들과 함께 겨루어 B+ 학점을 유지하는 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학은 학점이 전부가 아니니 청춘을 불살라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외치지 않는가?
4년 장학금에 걱정 않던 부모님, 그런데결국 내심 걱정이던 그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2학년에 오르면서 학과 공부에 소홀하다 보니 직전 학기 성적이 B+에 못 미친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다음 학기 등록금 면제자 명단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사립대학이 아니라 그보다는 다소 적은 200만 원이 조금 넘는 한 학기 등록금이었지만 이 어디 적은 금액인가?
부모님은 4년 장학금 수혜에 대한 세세한 조건을 모르고 계셨다. 따라서 그 학기 장학금을 탈 수 없었던 나로선 부모님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 금액을 갑자기 요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만약 그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당연히 학업에 소홀한 내 과오를 들어 노발대발하실 것이 틀림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방학 두 달 중 한 달을 의무적으로 계절학기를 듣게 되면서 내게는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부모님께 말 못할 걱정을 속으로만 앓다보니 어느새 다음 학기 등록금 납부일이 코 앞에 다가왔다.
부모님 몰래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갖가지 궁리를 하던 중, 불현듯 학자금 대출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린 나이였고 학자금 대출이라는 것에 대한 절차와 방법을 전혀 몰랐다. 또 막연하게 대출이라면 겁부터 나고, 부모님 동의 없이는 할 수 없기에 그 전엔 한번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내 눈에 인터넷 광고가 하나 들어왔다.
대학생이라면 부모 동의 없이도 10분이면 대출 가능?'대학생 학자금 대출, 재학생 휴학생 모두 부모 동의 없이도 10분이면 가능!' 나는 재빠르게 광고 링크를 따라서 대출업체 웹사이트를 방문했다. 아리따운 여인과 학생들이 버젓이 메인화면 모델이었고, 가족 같은 대출업체 사이트 분위기는 경계심을 풀기에 충분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상담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하자, 내 조건이면 충분히 대출 가능하단다. 그리고는 가장 중요한 이자율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연 8~66%.
당시 나는 부모님 몰래 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고, 한번도 대출을 받아 본 적이 없던 탓에 대출 금리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이 무뎠다. 또한 8~66% 중 최저 이자율인 연 8%의 이자를 생각하고, 당시 정부 학자금 대출 연이자율 6%대 보다 다소 높은 정도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상담자는 친절한 말투였지만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금리에 대해서 월 이자율로 따지면 4% 정도라는 등 그 수치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게끔 복잡하게 설명했고, 연체율에 대해서도 속독하듯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일단 대출이 필요했고,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에 눈이 멀었던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네, 알겠습니다"라고 계속 대답하며 순조롭게 호응해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정말 마술 같이 내 통장으로 300만원이 정확히 입금이 되었다.
빌린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들은 쉽게 무감각진다. 막상 자기 손에 돈이 들어오면 그것이 원래 자기 돈이라는 착각에 휩싸여 언젠가 피땀 흘려 갚아야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일쑤다. 그런데 하물며 내가 처한 상황은 단순히 돈을 빌린 게 아니었다. 살인적인 금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에서 받는 대학생 학자금 대출금리 범위는 연 8~66%이라고 나와 있었지만, 실제로 학생들에겐 백이면 백 모두 55%에 육박하는 최고치에 가까운 이자율에 적용된다. 개인 대출 조건에 따라 책정된 이자율이라지만 대학생이 직장, 소득, 담보가 없다는 이유에서 모두가 대출 신용이 낮은 똑같은 조건이 아닌가? 연 50%가 넘는 금리는 일 년 뒤에는 자기가 빌린 금액의 반 이상을 그저 이자로만 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300만원을 대출 받았고, 이에 55% 연이자율이 적용되어 한달에 13만원이 넘는 이자를 내게 됐다. 학생인 나에겐 말로만 듣던 사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인기 연예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광고하는 구원자 느낌의 대출업체 금리는 죽기 진적의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게 아니라 확인 사살을 하는 무시무시한 '걷어차기'였던 것이다.
하루라도 이자날을 어기면 핸드폰은 불이 났다학생 신분으로 소득이 전혀 없는 마당에 300만원 원금 상환은 꿈 같은 이야기였고, 매달 13만원의 이자를 내야하는 압박과 스트레스에 학업도 뒷전이었다. 적게 쓰고 용돈을 아낀다면 월 13만원 정도를 못 낼 것까진 없었지만, 그건 원금을 상환해 나가는 게 아닌 그저 날강도 같은 고금리 이자를 내는 것 아닌가. 본의 아니게 난 매달 이자 납부날이 다가오면 또다시 부모님께 추가 용돈을 거짓말로 받아냈고 그 악순환은 계속됐다.
더욱 두려웠던 건 지독한 이자 납부 재촉이었다. 단 하루라도 이자일을 넘기면 내 휴대전화는 문자 메시지와 전화로 불이 났다. 물론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았다. 대출을 받을 때 상냥했던 직원은 온데간데 없고, 차갑고 엄중한 목소리로 정확한 이자 가능 일자를 요구했다. 그것도 3일 이상의 기한을 주는 건 상상할 수 없으며 그 기간을 넘을 시에는 부모 동의 없는 대출이라는 빌미로 집으로 전화를 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이 시작됐다.
간절한 부탁 끝에 하루, 이틀 이자날을 연기해 주는 것도 공짜는 아니었다. 철저하게 하루하루에 연체 금리율이 적용되어 이자는 빠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렇게 그 학기 4개월이 끝나갈 무렵 난 이미 빌린 돈의 20%에 육박하는 60만원 정도를 온전히 이자로만 내게 되었다.
결국 방학이 시작될 무렵, 나는 더이상의 악순환에 휘둘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맞아죽을 각오로 부모님께 모든 사실을 실토했고 큰 '폭풍'이 지나간 후 원금 상환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어머니께서 내가 대출받은 회사 직원과 통화하며 학생들에게 부모의 동의 없이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따져 물었고, 몇 번의 강도 높은 항의 끝에 마지막 달 이자를 제하고 원금만 상환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의아했던 점은 대출업체가 내게 원금 일시불을 조건으로 한달 밀린 이자를 제해 준 것이다. 1원 미납, 하루 연기도 용납하지 않던 사람들이 한달 연체 이자를 순순히 제하여 줄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생 대출은 꿈도 꾸지 마세요당시 내가 제2금융권에서 빌릴 수 있었던 최대 금액은 700만원이었다. 그것도 학생의 신분으로 부모의 동의 없이 말이다. 2년 전쯤 제2금융권의 대출금리가 연 최대 44%를 넘을 수 없는 새로운 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44%라는 이자율도 여전히 비정상적인 어마어마한 수치임은 틀림없다.
피를 말리는 대학교 등록금 문제,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학자금 대출. 이런 상황에 도움이나 주려는 양 손을 뻗쳐대는 제2금융권의 야릇한 검은 유혹은 제2, 제3의 학생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더 위험한 건 학생들이 마음만 먹으면 굳이 학자금 용도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명목으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올해 수능을 치른 수험생을 비롯해 많은 대학생들이 내년 2월부터 대학 생활에 부푼 꿈을 만끽하기도 전에 벅찬 등록금 문제와 힘겨운 전쟁을 시작할지 모른다. 공교육비 감소가 급선무되어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 낭떠러지에 내몰리는 학생들을 아예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무늬만 학생을 위한 학자금 대출은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