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11월) 말까지 전 한양화학 자리에 지은 임시 건물로 이주를 마친 군산 공설시장 상인들이 16일 오후 1시30분부터 5시까지 장사도 잘되고 몸도 건강하게 해달라고 고사를 지내고, 집에서 준비해온 음식과 막걸리를 시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가설무대 위 비닐 기둥에는 '문화·예술이 숨 쉬는 전통시장 문화행사'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 가장 오래전(80년)에 생긴 지역 재래시장임을 설명하는 듯했고, '이제! 시민의 힘이 필요합니다'는 구호는 재래시장을 이용해달라는 상인들의 호소처럼 느껴졌다.
바다 냄새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군산 공설시장은 서민경제를 이끌던 군산의 중심지이기도 했는데 서민들의 웃음과 정이 넘치는 만남의 광장이자 사랑방이었으며, 이웃집 아저씨부터 대통령 소식까지 접할 수 있던 공간이었다.
임시 시장 입구에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벌어진 뒤풀이는 초청가수들의 노래, 제기차기 시합, 전통 예술단원들의 각종 공연, 담요와 옷가지 계란 등 상인들이 협찬한 푸짐한 경품 추첨, 손님들과 상인들의 흥겨운 노래자랑으로 이어졌다.
초청 가수들의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노인과 젊은이들이 우리의 전통놀이인 제기차기 대결을 벌였는데, 시시때때로 환호성이 터져 열기를 더해주었다. 또, 남편 차례가 되니까 부인이 나와 응원을 하고 어쩌다 실수할 때는 웃음바다가 되어 추위를 도망하게 했다.
사회자가 아무나 무대로 올라오라고 해서 노래를 부른 가수와 가위바위보를 시켜 이기면 경품을 나눠주고, 방금 와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분이 계시면 손을 들라고 해서 선물을 건네주어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정육점과 계란가게 아주머니의 하소연
천 원짜리 지폐 끝 번호 맞추기 추첨으로 당첨되는 손님에게 계란 한 판을 1천 원에 팔았는데 번호가 다른 손님들도 무대 앞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마침 계란가게 아주머니가 앞치마를 두른 정육점 아주머니와 손뼉을 치며 대화를 하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주머니, 저기에서 계란을 한 판에 1천 원씩 팔고 있는데 장사에 지장이 없나요?"
"아뇨, 우리가 다 기부헌 것인 게 괜찮아요.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지만 새 건물이잖아요. 그려서 앞으로 장사 잘되고 건강하게 혀달라고 고사를 지내고, 음식이랑 혀가지고 손님이랑 나눠 먹는 거예요."
키가 자그마한 계란가게 아주머니는 고운 피부만큼이나 서글서글하고 말씨도 고왔는데, 옆에서 공연을 구경하며 무대를 향해 손뼉을 치고 있는 정육점 주인아주머니에게 이사한 후 어떤지 물어보았다.
"임시 시장이지만 정육점과 계란가게가 입구에 마주하고 있어서 좋겠는데요. 정육점은 장사가 어떤가요?"
"열흘 됐으니까 아직은 몰라요, 여기로 이사한 것을 몰라서 못 오는 손님들이 많거든요. 공사를 시작하니까 중간에서 막혀가지고 역전 손님들은 안 와요. 그려서 어려운 점이 많죠. 어떤 사람은 다리 아파서 안 온다고 허기도 허고."
"임시 건물로 옮기느라 어려웠겠는데요?"
"30년 넘게 장사 혔는디, 22년 전에 권리금을 1억 5천이나 주고 가게를 사서 들어갔기 때문에 억울헌 점이 많아요. 그려도 아직은 말을 못혀요. 어떻게 지어서 어떻게 분양을 허냐가 문제예요. 시에서는 가게를 지어서 준다고만 혔지, 다른 말은 안 혔거든요."
정육점 아주머니 하소연이 끝나기 무섭게 계란가게 아주머니가 말을 받았다.
"시에서는 전기 들어오게 허고, 컨테이너 박스만 빌려줬지, 가게 내부 시설은 전부 우리가 혔어요. 짐 옮기는디만 2백만 원이 들어갔는디 누구한티 하소연하겠어요. 말일까지 비어 달라, 안 허믄 철거를 헌다고 혀서 나온 거에요. 원래는 다 보상을 해줘야 되거든요."
정육점과 계란가게 아주머니는 언니, 동생 하면서 무척 가까운 사이로 보였는데, 한 사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특히 시장 재건축을 앞두고 시청에서 상인들과 대화 한 번 없었다는 말을 몇 차례 강조했다.
1918년에 개설된 군산 공설시장은 2006년 정밀안전진단 결과 D 등급을 받아 재건축이 결정되어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문화관광형 전통시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이며 내년 말쯤에 새 얼굴로 개장할 예정이다.
손님과 상인이 하나가 되었던 뒤풀이
초청가수들의 신나는 뽕짝에는 '앙코르'가 터져 나왔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예술단원들이 부채춤, 장구춤, 창 공연을 할 때는 흥이 난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몰려가 춤판을 벌여 분위기를 돋우었다. 손님과 상인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모습이 흐뭇하고 넉넉하게 했다.
상인들이 증정한 경품이 무대에 쌓여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 각종 과일과 담요, 바지, 덧버선, 양말, 감귤, 돼지고기, 마늘, 무, 고추장, 운동화, 나나스키, 계란 등이 서민들이 이용하는 전통 재래시장임을 입증하는 것 같았다.
특히 사회자가 젓국과 새우젓, 홍어, 고등어, 조기 박대 등이 나왔다고 할 때마다 손님들 표정이 밝아지며 시선이 모아지고 환호성이 터졌는데, 째보선창과 이웃한 재래시장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자랑이 끝나고 발길을 돌리려니까 "나는 용가리 통뼈라 끝까지 이사 안가유!"라며 호언장담했던 국숫집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해서 여기저기 찾아봤더니 시장 깊숙이에 가게를 차리고 있었는데, 마침 공연을 마친 예술단원들이 뜨거운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고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얼굴을 알아보고는 "아이고 누가 컴퓨터를 보고 와서 얘기 허는디, 저번에 내가 그르케 얘기 혔다고 불이익 받으믄 어떻게 헌데유"라면서 걱정스러워했다. 해서 "아닙니다. 오히려 함부로 못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웃는 게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가설무대에서 춤으로 흥을 돋우던 아저씨가 빵 심부름을 하고 있어 아주머니 남편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인사를 드렸더니 환하게 웃으며 "추운디 전주에서 와가지고 고생헌 예술단원 아가씨들이 '짜~자잔'허게 나오게 잘 좀 찍어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국숫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되어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올해 들어 처음 보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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