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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일) '역사 문화와 함께하는 종로, 중구 걷기 모임'은 경복궁 전철역에 모여서 청와대 앞을 지나 자하문까지 올라 청운공원을 둘러본 다음, 아래로 내려와 국립 농학교와 맹학교를 거쳐 옥인동, 체부동 일대를 살펴보았다. 

 

경복궁역 인근은 흔히 효자동이라 불린다. 청와대 앞이라는 강한 이미지보다는 고풍스러운 효자동이라는 이름이 나는 더 정감이 간다. 이곳에서 출발을 하여 경복궁 담장을 따라 올라 청와대 방면으로 향한다.

 

길을 출발하기 무섭게 우측 경복궁 귀퉁이에 국립고궁박물관 표지판이 보인다. 나중에 가족과 함께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좌측에 코오롱그룹이 운영하는 디자인센터가 있고, 그 옆은 대림미술관이다.

                       

늘 근엄하면서도 소개된 공간으로 알고 있었던, 청와대 인근에도 미술관과 기업의 건물이 있다는 것에 놀란다. 좀 더 가면 우측에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迎秋門)이다. 참 뜻이 좋다. '가을을 맞이하는 문'이다.

 

영추문은 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던 곳으로 특히 서쪽 궐내각사에 근무하던 신하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문은 지난 1975년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된 것이라 별로 볼품은 없다.

 

이어 길을 더 가면 '메밀꽃 필 무렵'이라고 하는 메밀국수와 만두 등을 만들어 파는 유명한 식당이 보인다. 휴일 아침이라 그런지 고요하다. 이내 미술평론가인 김달진 선생의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이 보인다.

 

그림을 조금 알거나 공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월간<서울아트가이드>를 발행하는 김달진 선생을 알고 있을 것이라 사려된다. 나는 조만간 평일 오후에 한번 방문하고 싶다.

                 

그리고 이내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실이다. 국제적인 구호단체인 유니세프의 사무실이 너무 한적한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국가 권력의 코앞에서 멋지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로 전쟁 피해로 고통 받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구호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유니세프는 긴급 구호, 영양, 보건, 예방접종, 식수 및 환경 개선, 기초교육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국전쟁 직후 우유, 담요, 의류 등 구호물자 공급에서부터 영양 개선, 예방접종, 의료요원 훈련, 교육사업 등을 펼쳐온 것으로 알고 있다.

               

좀 더 길을 가면 이제부터 경찰과 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를 경비하는 시설과 정부기관이 들어서 있는 곳이라,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막 지나갔다. 무궁화동산 앞 횡단보도 곁에는 일본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이 몰려있다.

                     

우리 일행도 독수리와 가족 동상이 있는 이곳에서 사진도 찍고 청와대의 뒷산인 북악(백악)산을 바라본다. 겨울이지만, 산이 좋다. 시원과 바람과 함께 경복궁과 청와대의 뒷산인 북악이 오늘따라 더 당당해 보인다.

                        

잠시 쉬다가 이내 횡단보도를 건너 '무궁화동산'에 선다. 원래 궁정동 안가가 있던 자리다. 3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의 안가에서 연회를 벌이다가 그의 절친한 후배였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총을 맞고 서거한 곳이다.

                      

YS가 대통령이 된 이후 이곳의 안가를 없애고 공원으로 만들어 일반에게 개방을 했고, 그 자리에 안가였다는 표지석을 세워두었다. 물론 재미있게도 그 중간에 화장실도 특급으로 잘 만들어 두었다.

 

잠시 소변을 보면서 난 웃음이 나왔다. 30년 전 이곳에서 박정희는 술을 마시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들을 조롱하면서 오줌을 눈다. 시원하게.

 

이어 길을 더 가면 청와대 귀퉁이에 칠궁(七宮)이 보인다. 칠궁은 왕 혹은 왕으로 추존된 분을 낳았지만, 왕비가 되지 못했던 7명의 후궁들을 위한 사당이다. 현재는 청와대의 끝자락에 있어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가볼 수 있지만, 오늘은 그냥 담장 너머로 스치며 보고 지난다.

                           

사실 칠궁에는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다. 숙종의 후궁으로 경종의 모친인 천하의 요부 장희빈의 사당 대빈궁(大嬪宮)과 영조의 모친으로 장희빈에게 온갖 수모와 멸시를 받았지만, 끝내는 왕의 어머니가 된 무수리 신분이었던 숙빈 최씨의 사당 육상궁(毓祥宮)이 함께 있는 것이다.

 

살아서 치열했던 이들이 죽어서 화해를 했는지 나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을 추모하는 사당은 나란히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한 지아비를 모시던 부인들이 아닌가? 이런 것을 두고 숙명이라고 하는가 보다.

 

민가에서도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던 본처와 소실들도 죽고 나면 자손들이 같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말이다. 세상 이치를 다시 느끼고 배우는 것 같다.

                        

칠궁을 담장 너머로 보고 좌측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청운실버센터'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터이다.

 

우선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정부의 직제가 개편되면서 '농상아문'이 있던 터이다. 요즘으로 보자면 농업상업부가 있던 곳이라고 보면 된다. 후일 농상아문은 공부아문과 통합되어 농상공부가 된다.

                      

그런데 이곳은 1968년 1월 21일 북에서 남파된 김신조를 포함한 인민군들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박정희를 암살하기 위해 다가오다가 경찰과 대치하여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폭사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김신조를 제외한 모든 북한군은 죽었고, 우리도 종로경찰서장이던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가 순국한 곳이다. 요즘에도 가끔 역사자료 화면을 보다 보면, 지금은 목사가 된 김신조씨가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라고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남북이 대치된 현실에서 위정자들의 잘못된 놀음에 아까운 청춘들이 많이 죽은 자리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곳이다. 이곳이 칠궁처럼 살아서 치열했지만, 죽어서는 화해하는 곳으로 승화되길 바래본다. 지금 이곳을 센터로 쓰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노인들의 마음처럼.

 

모두를 위해 잠시 묵념을 하고 자하문 방향으로 다시 길을 오른다.

 

 

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서울시 종로/중구 걷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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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복궁, #자하문 길, #청와대 , #칠궁, #무궁화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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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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