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되돌아봤을 때 대부분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 '뭐 하나 제대로 한 것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올 한해,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 늘 바쁜 하루하루였지만 적어도 서운한 한 해는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올 한해 사고를 쳐도 크게 쳤다. 한 건도 아니고 두 건을 제대로 쳤다.
올해 4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편의 아내, 여행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업무와 관련해서, 베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결 같다. '지금 당장 떠나라'는 것이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 편에서 솟아나는 '너는 결혼도 안했잖아. 애도 없고...'라는 생각으로 나를 합리화했다. 특히 상대가 남자일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여자, 애 엄마라는 현실이 나를 단단히 옥죄었다.
매일 매일 써야 하는 일정 분량의 원고도 있었고, 아직 손이 많이 가는 두 아이도 있었다. 더구나 큰애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참이었다. 떠난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1박도 힘든 상황이었다.
사고 1탄- 나홀로 배낭여행
혼자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 그것이 늘 궁금했다. 혼자 낯선 곳에 놓인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수많은 블로거들이 쓴 글이나 여행관련 서적을 읽어도 그 느낌을 온전히 알 수 없었다. 두툼한 장갑을 끼고 자판기 컵의 온기를 느끼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아무리 많은 여행기를 읽고 포스팅을 보아도 그것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 내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기회는 아주 우연하게 찾아왔다. 2월 어느 무료한 저녁, 나는 하릴없이 인터넷 사이트를 여기저기 쑤시고 있었다. 그러다 한 풍경을 발견했다. 일본의 유후인(由布院)이라는 곳이었다. '유후노모리'라는 빨간 기차가 인상적이었던 곳. 그것을 보는 순간 5년 전, 어느날 저녁 일이 떠올랐다.
첫애 돌 무렵이었다. 겨울 어느 날, 칭얼거리는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행여 깰세라 책장도 숨죽여 넘기며 책을 읽던 나는 그곳에서 일본의 '유후인'이라는 곳을 만났다. 봄 햇살이 가득 담긴 풍경과 온천,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호수, 아기자기한 갤러리가 나오는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퍽 우울해졌다. 그곳에 꼭 가리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로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후인을 발견하고 그때 일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아직까지 못가고 있을까.'
따지고 보면 못갈 이유는 너무 많았다. 너무나 타당한 이유들이었다. 직업 때문에, 두 아이의 엄마라는 처지 때문에,.... 그러나 그 반대도 생각해봤다. '그렇다고 안갈 이유는 또 뭔가'
미친 셈치고 사고 한 번 치자
나는 비행기 티켓을 '덜컥' 예매했다. 한마디로 질러버린 것이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가슴에 불을 지른듯 어찌나 쿵쾅거렸는지 마치 귀에 청진기를 꽂아놓은 기분이었다. 예매를 해놓고 취소를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다. '나중에 가지 뭐. 앞으로 많은 날이 있는데..' 싶다가도 '안 돼. 지금 아니면 절대 못가' 사이에서 몇 번을 망설였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미친 셈 치고 사고 한 번 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현실에 안주하느니 후회하더라도 부딪히고 싶었다.
그리고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이제 모 아니면 도다. 비행기 티켓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무조건 떠나야 했다. 직장에는 작년에 못쓴 여름휴가를 쓴다는 이유를 들어 말씀드렸고 남편에게는 생일선물 미리 주는 셈치고 허락하라고 했다.
정말 그것은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었다. 마침 여행을 떠났던 것도 그때 무렵이어서 나는 내게 주는 선물로 생각했다. 지금껏 받았던 선물 중에서 가장 멋진 선물이었다.
여행 자체도 물론 좋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의 설렘과 여운이 더 컸다. 짧은 여행기간이었지만 깨닫게 된 사실도 있다. 혼자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지만 그만큼 외롭고 고독한 일이라는 걸. 여행을 갔을 때 비로소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더라는 수많은 여행가들의 입버릇과 같은 그 평범한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내 첫 번째 베낭여행의 의미는 충분했다.
사고 2탄-내 차를 구입하다
올해 두 번째 '사고'는 내 차를 구입한 것이었다. 면허를 딴 후로 몇 년 동안 차가 없었다. 특별히 '내 차'에 대한 필요도 못느꼈거니와 차 유지비도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취재처를 가거나 취재원을 만날 때마다 장소를 묻는 내게 '그냥 네비 찍고 오세요'라는 다소 황당한 대답을 들으면서도 별로 차를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결정적인 이유는 '기동력'에 있었다. 더 열심히 취재를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역시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남편을 설득했다. 남편은 처음엔 반대를 했다. 자신이 기꺼이 '기사'가 되어줄 테니 차는 포기하라고 했다. 내가 혼자 베낭여행 간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던 남편이 차 구입은 반대했다. 아마 '길치'에다 운동신경이 둔한 부인이 운전을 한다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을 설득했다. 당신이 평생 내 기사가 되어주지도 못할 뿐더러 운전을 평생 안하고 살 것이면 몰라도 어차피 운전을 해야 할 현실이라면 지금부터 '독립'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처음엔 누구나 다 힘들겠지만 하다 보면 잘 될 것이다. 누군 처음부터 잘 하느냐. 나도 잘 할 자신이 있다. 물론 깨질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러면서 다 배우는 게 아니겠느냐.
남편을 반 강제로 설득(?)해서 올가을, 작은 중고차를 하나 구입했다. 누가 사준 것도 아니고 결국 내 돈으로 산 것인데 요즘같은 불황에 너무 무리를 했나. 괜한 짓을 했나...싶다가도 어차피 부딪힐 일이라면 그냥 한번 부딪혀보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후회를 해도 내가 하고 깨져도 내가 깨지는 것이니까.
내 차를 갖게 된 후, 차에 유독 애정을 갖는 남자들의 심리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그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과시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뻐근한 몸을 이끌고 퇴근할 때 나를 기다리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 감격스러움에 나 자신이 당황할 정도였다. 차가 얼마나 신형인지, 몇cc인지, 디자인이 어떤지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가슴이 매번 뜨거워졌다.
누가 시킨 일 같았으면 아마 두려워서 핸들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등을 떠밀었다면 지금쯤 나는 여행이 아니라 고행쯤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둘다 너무 무모한 것 같지만 그 당시 그런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사고'를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차를 구입한 뒤로는 이제 정말 말 그대로 '사고 칠까' 두렵다. 그새 몇 번의 가벼운 사고도 있었다. 그 때마다 운전하기가 두렵기도 했지만 어떻게 사고 한번 없이 운전을 배울 수 있을까. 어차피 맞을 매 빨리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를 치면서 하나씩 배워가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전화기에 내 이름이 뜰 때마다 남편은 가슴이 뜨끔하단다. 내가 무슨 사고를 쳤을까봐 그렇단다. 나는 언제부턴가 '사고뭉치'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 별명이 왠지 싫지 않다.
목숨이 걸린 교통사고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건사고가 아니라면 인생에서 사고는 한두번쯤 칠 만하다. 사람을 사고(思考)하게 만드는 사고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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