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버린, 늙은 사내가 세들어 혼자 살던 아랫방
천정 가까이 빛바랜 흑백 사진 하나 붙어 있었다.
결혼은 했던 것일까. 흑백 사진 속의 젊은 여자와 아이가
빈 방문을 열 때마다 환하게 나를 보고 웃는다.
아직 누가 세들어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빈 방으로 버려져 있는 창틀에 세들어 사는 거미들이
밤에는 달빛 커튼을 낮에는 햇빛 커튼을 짠다.
왜 떠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이슬처럼 사라졌을까.
묵직한 붉은 돼지저금통 하나 남겨둔 것으로
밀린 전기세와 수도세를 제하고 백동전 몇 개가 남았다.
한 지붕 밑에 살아도 왜 나는 이름도 고향도 물어보지 못했을까.
밥풀로 단단히 붙여 놓은 흑백 사진 속의 남아는
사내를 많이 닮아 간다. 새벽에 나가면 밤에 잠만 잔다고 해서
월세 오만원에 보증금 1백만원 받고 월세로 주었던
한 평 남짓한 방 안, 그 보증금 다 까먹고 사내가 새처럼 날아간 방에는
고무줄이 늘어난 팬티와 뒷축이 헤어진 양말짝들이,
저희끼리 털실뭉치처럼 굴러다니고,
먹다만 비스켓, 라면 부스러기, 굵은 모래 먼지와 석면가루가
문풍지 울때마다 뿌옇게 날리는 손바닥만한 사막 같은 방,
유난히 금이 많이 간 겨울유리창문에
겹겹이 바른 푸른 비닐 데이프 떼어보니,
놀랍게도 파릇파릇 민들레 풀씨 하나 고개를 쏙 내밀고 있다.
[시작메모] 돌아가신 어머니는 무척이나 억척이셨다. 그래서 나는 자랄 때 공부방 따위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좁은 방 한 칸에서 온 가족이 긴 여름을 보낼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난 항상 불만스러웠지만, 셋방을 많이 놓으신 어머니 덕분에, 다양한 모습의 삶이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공부한 것 같다. 셋방살이가 서럽다고 하면 셋방을 놓는 주인의 경우는 셋방살이만큼 황당함을 겪기도 한다. 어느날 갑자기 방세도 내지 않고 야간에 이삿짐을 싸서 떠난 사람도 있고, 사실혼의 남편이 회사 간 사이 아내가 이불보따리 등을 싸서 우리 다락방에 맡기고 간 적도 있었다. 그 이불보따리를 생각 없이 맡아주어 그 남편으로부터 어머니가 곤욕을 치른 때도 있었다.
셋방 중에 유독 지금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늙은 홀아비가 떠난 방에 붙어 있던 흑백 사진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전출·전입 신고라는 것 없이 마음대로 이사를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름도 성도 알지 못한 채 말만 한 지붕 아래 살던 사람들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을까. 정말 뒤돌아보면 나도 셋방을 많이 전전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방은,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고 살았던 자취방에 대한 추억이다. 이런 겨울이면 춥지만 아늑했던 겨울 문풍지 우는 방의 기억으로, 잠시 창공을 나는 한 마리 겨울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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