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1월 말까지만 해도 곧잘 꺼내 입었던 긴팔 옷을 장롱 깊이 넣어 버렸다. 집을 나서기 전, 선크림을 펴 바르면서 팥빙수 생각에 괜한 입맛을 쩝쩝 다신다. 아무래도 팥빙수가 없는 여름은 쉽지 않다. 이 엄동설한에 선크림이 무어며, 팥빙수가  웬말이냐고 의아해 할 법도 하다.

12월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땅에 겨울이 찾아온다는 편견을 버려주시길. 남반구에 자리 잡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은 한국과는 반대로 지금 더운 여름이 한창이다. 여행에 월드컵 관전에 영어공부까지 겸사겸사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나는 '12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팥빙수를 그리워하며 헐떡이고 있는 것이다.

 

보통 '아프리카' 하면 사시사철 헐벗고 다녀야 할 정도로 무더운 대륙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케이프타운은 별로 그렇지도 않다. 케이프타운의 위도는 남위 33도. 적도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제주도와 거의 같다. 겨울인 6, 7, 8월에는 두툼한 코트와 전기장판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년 월드컵이 열리는 시기도 겨울이지만, 좀 춥긴 해도 눈은 내리지 않으니 경기에 별 지장은 없을 게다.

 

북향 가옥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고

 

한국을 떠난 지 겨우 넉달째 접어드는 내게 우리와 반대라서 낯선 일은 비단 계절뿐이 아니다.

 

가령, 내가 머물고 있는 아파트는 '정북향'이다. 남반구에서는 북향가옥이라야만 여름에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하고 겨울에 볕이 잘 들어 따뜻하다.

 

별자리랍시고 딱 하나 알고 있는 북두칠성은 남반구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대신 남십자성(Southen Crux)라는 그다지 십자가처럼 생기지도 않은 별 네개가 남쪽 하늘에 떠 있어서 예로 부터 방위를 가늠하곤 했다.

 

관찰력이 남다른 사람이라면 변기나 세면대에서 물이 빠지는 방향이 한국과는 반대라는 사실을 알아치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적응이 되지 않는 대목은 한 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다.

 

섭씨 30도를 가뿐히 넘는 날씨에 털모자와 털장갑, 두툼한 부츠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은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산타클로스를 보노라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겨울에는 개 대신 닭?

 

오랜만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서 무심결에 "요즘 날씨 때문에 삼계탕이라도 끓여 먹을까봐요"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아차 한국은 지금 겨울일텐데···' 하는 순간, "그래.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는 뜨끈한 국물이 최고지. 해외에 나가서는 특히 잘 먹고 다녀야 한단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여름철 몸보신을 위해 개 대신 닭이라도 고아먹겠다는 이야기였는데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삼복더위든, 엄동설한이든, 12월은 크리스마스가 있는 즐거운 달. 한국인은 삼계탕 먹으며 땀 흘리고 산타들은 착한어린이를 찾아다니며 선물 주면서 땀 흘린다. 개중에서도 가장 많은 땀을 흘리는 이는 단연코 남반구의 산타일 터이다.


태그:#남반구, #크리스마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