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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바람 만나도 사람은 돌 수 없지만/ 팔팔한 심장 밖으로 내걸며/ 무엇인들 돌리려는 마음이/ 바람개비가 된다// 이러 첩첩 저리 첩첩 이뤄낸 생애/ 바람을 속속 맞아들여야/ 스스로 바람의 생명이 된다// 각이 선 눈빛 거두고/ 모난 형상을 버리면 둥근 원 하나 된다/ 세차게 돌면/ 더욱 희미해지는 무상/ 구심점도 삭고 다만 한 개비 원형질 생물/ 그리하여 존재와 본질이 뒤범벅이 된다 - '바람개비' 중에서

 

각이 선 바람개비가 바람을 맞아들이면 모난 형상을 버리고 무상의 원이 된다. 그렇듯 사람 역시 바람을 맞아들여 둥글게 살아갈 순 없을까. 시인은 그런 고민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시를 통해 이를 승화시키고자 했다.

 

시인 소재호(64)에게 있어 시는 자신을 담아내는 그릇만이 아닌, 자신을 이끌어가는 존재다. 소 시인은 "시를 쓴 건 나지만, 시는 오히려 내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이번 시집을 내면서 미움을 비우고 많은 것을 용납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는 고백은 여기에 맞닿아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많은 것을 용납하고 있다.

 

세상의 온갖 분노 미움, 시기, 질투, 욕심, 과시의 감정을 녹여내는 사랑의 용광로가 그의 마음에 둥지 틀고 있는 것 같다. 그 마음에서 비롯된 고운 언어와 특유의 친화력이 모든 것을 용납하고 있다. 용납한다는 말은 적응한다는 말보다 더 적극성을 띠는 말이다. 자연을 용납하고, 사람을 용납하고,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용납하는 삶의 태도가 그의 문학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소재호 시인의 시선집 '어둠을 감아 내리는 우레'가 출판사 시학에서 출간됐다. 1984년 '현대문학'에 구상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 1993년 첫 번째 시집 <이명(耳鳴)의 갈대>(시와시학사), 2002년 두 번째 시집 <용머리고개 대장간에는>(신아출판사)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꾸준한 창작활동에도 불구하고 모처럼만에 작품집을 내놓은 건 전적으로 시인의 성격 탓이다.

 

"시집을 자주 내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성격상 그러지를 못해요. 자주 내다보면 아무래도 한 시집 안에서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시는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나는 그런 시가 세상에 드러나는 게 부끄럽고 시시해서 내놓지를 못해요. 앞으로도 시집을 많이 낼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꾸준히 작품을 쓰겠지만, 많아야 두 권 정도 더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한 편의 시가 완성되자면 허망한 시간이 필요하다. "열 번도 좋고 스무 번도 좋고 하여간에 무수하게 고칩니다." 여기에 시인만의 또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오늘 좋은 시상이 떠올라 시를 쓰면 그 시는 내일 당장 고치는 게 아닙니다. 며칠이 지나서 그 때 시를 쓸 때의 기억을 망각으로 돌려놨다가, 그게 정말 잊혀질만할 때 새로 끌어내서 교정을 봅니다. 그래야 시가 깊어집니다. 오늘 쓰고 내일 당장 고쳐버리면 어제의 흔적이 남아있어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가 없어요."

 

이번 시집에는 그렇게 완성된 알짜배기 시 93편이 실려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부족해한다.

 

"어느 것 하나 제 살 아닌 것이 없겠지마는,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가슴에 박히는 시는 20편 남짓입니다. 시인이 시집을 냈다고 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시를 동등하게 사랑할 순 없겠지요. 누군가 그런 시를 찾아내서 말을 걸어준다면, 시인에게 그만한 기쁨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새가 죽어 천 년 넘어야/ 그 혼 빚어 솟대의 새가 된다/ 조선 사람들 가슴마다 세우던/ 순수 샤머니즘 그 푯대 위에/ 정좌한 새 한 마리//(중략) 영혼은 빠져나가고/ 육신만으로 더 신성한 새/ 솟대에 오른 새는 모이를 구하지 않는다/ 깨끗한 종교 한 자락을 눈뜨며/ 장구한 세월 불사조가 된다 - '솟대' 중에서

 

그의 시에서 '새가 죽어 천 년 넘어야 그 혼 빚어 솟대의 새가 되는 것'처럼, 문학평론가인 전정구 전북대 교수는 발문에서 "소재호의 시는 등단 이후 30여년 견딤의 시간들이 발효시킨 농익은 서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재호, #시, #시집, #어둠을감아내리는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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