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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7일 안양시 석수시장 모퉁이의 8평 남짓한 공간에 뉴욕, 베를린, 오클랜드, 광주, 안양, 서울, 인천, 대구 등에서 활동해온 다국적 예술가들이 '새로운 공동체운동을 실천하는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모여 앉았다.

 

첫 만남은 어색하고 낯설었다.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작가들에게 부여된 첫 과제는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빈 점포를 창작 스튜디오로 바꾸는 것이었다. 작가들은 서로 도와가면 케케묵은 먼지를 제거하고 버려진 가구들을 주어다 스튜디오를 꾸몄다.

 

출발은 녹록치 않았다. 동네 주민들에게 떡을 돌리고 입주를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식으로 계약한 입주자가 나타나면 비워준다'는 계약 조건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작업실을 내줘야 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그러면 우리는 또 다른 공간으로 이주해 새로운 작업실을 꾸렸다. 그렇게 불안했던 조건들, 게다가 찜질방보다 높은 내부 온도와 온갖 냄새와 소음 등을 견디며 우리의 여름나기는 시작되었다.

 

우리의 목표는 시장 주민들과의 진심 어린 소통이었다. 오클랜드에서 온 디자이너 닉스프랏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장판으로 다양한 가구를 만들어 '무료세일'을 하면서 주민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작업실을 수영장으로 개조해 동네 아이들과 만났던 프랑스의 행위예술가 패트릭 잠봉, 반경 500m만 송출되는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주민들과 어울린 권승찬, 상인들의 18번 노래를 녹음해 음반으로 만든 진시우 등 다양한 방식의 소통이 재래시장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8년의 SAP(Seoksu Art Project)에는 더 많은 작가들이 초대돼 '오픈스튜디오와 만안교 페스티벌'이라는 지역축제를 만들었다. 2009년에는 삽-아리아(SAP-ARIA:Seoksu Art Project-Artist Residency In Anyang )라는 독특한 개념 속에서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주민참여 프로그램과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국제자원봉사프로그램이 결합된 민간 주도의 예술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곧 '뉴타운'이라는 거대 개발 프로젝트에 의해 석수시장이 흔적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예술 근거지뿐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릴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뉴타운이라는 괴물의 움직임을 조금 더디게 만들어 보고자 출판과 영화제작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제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석수시장에서 삽질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노동임을 인정받고 삶과 예술이 함께 하는 도시생태계의 습지로 오래 자리하기를 소원해 본다.

 

 

제목: 시장에서 예술하기(Doing in the Market)

저자: 석수아트프로젝트 실행위원회 엮음

출판사: 아침미디어(프로젝트 예술총서-3)

ISDN 978-89-86955-14-9

가격: 4만 8천원

<시장에서 예술하기>는 동시대 예술가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소통했던 지난 3년의 기록이다. 우리는 그 동안의 작업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백 컷의 사진과 작업노트, 비평문, 대담, 인터뷰 등의 자료를 통해 '진정한 예술소통'의 과정을 담아내려 했다. 허위와 소비의 공간이 아닌 실제적 삶의 공간에서, 사람들의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예술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말하자면 이 책은, 그 해답을 찾아보려는 하나의 시도인 셈이다.

 

<시장에서 예술하기>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민간주도의 공공예술 프로젝트 보고서다. 아르헨티나, 스페인, 크로아티아, 뉴질랜드, 뉴욕, 베를린, 런던, 파리, 동경, 호치민에서 온 입주 작가 외에도 미국, 이태리,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에서 도시건축을 연구하는 전문가들과 저널리스트들이 석수시장을 방문했다.

 

IWO(국제워크캠프)를 통해 러시아. 체코, 대만, 스페인, 터키, 폴란드, 프랑스의 대학생들이 한국의 학생들과 석수시장의 빈 점포에 2주간 공동생활을 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TAP(토리데 아트 프로젝트)와는 2006년부터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활동을 해왔고 스페인 문화예술 재단의 공식 후원을 받는 등의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려갔다. 국내적으로 재래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및 재래시장을 활용한 레지던시 프로젝트의 모델로 주목받으며 광주, 마산, 수원, 대구, 울산, 청주, 창원과 서울지역의 시의원 및 관계 공무원들과 시민단체 사람들이 다녀갔다.

 

<시장에서 예술하기>는 예술이 어떻게 삶과 결합했는지에 관한 다큐멘터리이자 행동 매뉴얼이다. 우리는 이 책이 동시대 예술의 가장 주요한 흐름인 공공예술과 국제창작스튜디오를 추진하려는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3년의 과정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방대한 사진자료를 수록했고 국제적인 소통을 위해  모든 텍스트를 한글과 영문으로 함께 담았다.

 

여기서 박원순 변호사가 직접 전하는 석수시장 이야기를 옮겨 적는다.  

 

원래 주민들은 예술가들이 시장에 오가는 것을 경계하며 시큰둥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가 입주하고, 주민들과 서로 살을 맞부딪히며 작업을 시작하자 벽은 곧 허물어졌다. 박 관장은 "나중에는 주민들이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예술가에게 떡도 갖다 주고 친구가 되더라"며 웃었다. (중략) 그가 꿈꾸는 것은 '전형과 전이'의 전략이다. 석수시장에서 만들어진 '전형'이 다른 지역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개발' 이라는 전략이 물량 공세로 밀고 들어와 쓸어버리는 것이라면 이는 게릴라식 전략인 셈이다. 박 관장은 "문화 바이러스를 통해 개발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다" 고 힘주어 말했다.

- 박원순의 희망탐사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박찬응님은 석수아트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이 글은 보도자료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태그:#시장에서 예술하기, #유휴공간, #석수시장, #석수아트프로젝트, #S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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