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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남)을 위해 일상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공정여행을 다녀온 후 내가 늘 떠날 것을 준비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할 때에도 혼자 사는 곳을 떠나왔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기웃거리며 내가 서 있는 곳은 내 자리가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더 좋은 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조바심에 1년 전 인천에 살던 나는 아무 연고가 없는 원주라는 곳에 이사 오게 되었다.

 

지금의 삶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서 잠시 잊고 싶어 떠나지만 돌아온 현실은 늘 또 다른 떠남을 꿈꾸게 했다. 해외여행을 계획한 것도 색다른 방법으로 일상을 떠나길 학수고대했기 때문이다. 이젠 자신있게 말한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내 자리가 맞다고.

 

작년 여름 휴가는 양평의 어느 요가원에서 4박5일 동안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흠뻑 보냈다. 이후에 아이와 사이가 좋아졌다. 그래서 올 여름 휴가는 딸아이와 함께 멀리 떠나기로 작정을 하던 중 '내몽고 초원'을, 거기에 '공정여행'이라는 단어까지 내 맘에 쏙 드는 여행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난 떠나기 전부터 이 여행에 푹 빠져 들었다.

 

원주에서 새벽 6시 30분까지 인천공항으로 갈 수 없어 인천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여행 당일 새벽 5시에 졸면서도 잘도 걷는 딸아이, 조은향을 데리고 사방이 어둡기만 한 거리를 지나 전철을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가고 싶은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설레는 길을 떠났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조은향과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를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탄 조은향은 비행기가 땅에서 솟아오르자 기쁨을 누를 수 없다는 듯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그렇게 중국 베이징을 향해 날아가는 우리들을 눈부시게 푸른 창공이 반겼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한 일행은 전국에서 모인 각도의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천과 서우레서 온 일가족과 연인들, 건강하고 다정해 보이는 노부부,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둘만의 시간을 할애한 하동・문경・청주 부부들, 대구・부산・경기도・울진 등에서 올라온 여러 명의 고독한 싱글족, 대전에서 온 이종사촌가의 중학교 2학년의 남학생들, 그리고 강원도 원주에서 뽈뽈뽈 올라간 명랑한 우리 모녀까지, 연령 또한 10대에서 70대까지였다.

 

처음 낯설게 느껴졌던 일행들은, 베이징 후퉁거리에서 점심 한 끼를 한상에 빙 둘러 앉아 먹고, 해외에 나왔다는 이유로 금세 친해졌다. 어느새 조은향은 대전에서 올라온 중학교 2학년 오빠들과 친구다 되어 벌써 여행을 즐기는 듯 했고, 그때부터 나는 자유의 몸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내몽고로 들어가기 전 만리장성의 한 부분인 잔장성 트레킹을 했다. 동네뒷산을 가는 듯한 한가로운 길을 한참 걷고 나니 점점 경사가 90도에 달하는 계단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었다. 진시왕 때 이 성을 쌓기 위해 오르내린 인부들이 헉헉거렸을 숨결처럼 나의 얕은 숨도 같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빨간 드레스의 앞자락을 들고 뾰족한 구두까지 신은 채, 야외촬영을 위해 경사가 급한 계단을 올랐을- 험준함도 불사하는 - 현지인 예비신부가 우리의 발걸음을 독려했다. 우리는 그 신부를 바라보면서 부러움과 시샘, 또 감탄에 감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자고 꺠고 달리고, 자고 꺠고 달리고를 한참 반복한 후 드디어 사방이 그냥 까맣기만한 내몽고 초원에 도착했다. 우리는 독하지도 않으면서 혀끝을 알싸하게 하는 마유주를 마시며 현지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우리를 위해 준비된 저녁식사, 현지음식어어서 맛이 어떤지 궁금해하며 서로 먼저 먹어보라고 권한다. 맛이 있든 없든 무조건 맛있다는 품평을 하며 한 번씩 맛을 보는 것 또한 모두를 유쾌하게 했다. 하루동안 마치 한동네에서 여행 온 이웃처럼 '우리'가 되어 있었다.

 

가장 익숙해지기 힘든 것은 화장실 문화였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9개의 변기가 양옆으로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던 화장실이 어느덧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해도 좋은 그런 장소가 되었다.

 

천막으로 만든 '게르'라는 유목민숙소에서 목가적인 악기라 불리는 리코더의 울림을 초원에 전하면서 까만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조은향과 꼭 껴안고 천막사이 틈어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내몽고 초원의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눈부신 아침 해가 아닌 쌀쌀한 날씨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님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다행히 다음날은 눈부신 햇살이 게르 안으로 들어와 잠에 빠진 우리를 불러 주었다).

 

하지만 쌀쌀함도 잠시, 비가 오는 초원 풍경, 여기저기 발에 밝히는 말똥과 소똥, 거기에서 풍기는 냄새들조차도 내 반짝이는 눈동자에 비치는 모든 것이 다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어떤 환경이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내 머릿속을 바꾸어 놓은 것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언덕을 넘으면 또 초원, 그 너머에도 그 너머에도. 지구가 온통 초원으로 덮여 있는 듯 했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한없이 펼쳐진 이름 모를 야생화 속에서 뒹굴고,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힘도 생겨났다.

 

한 무리 양떼가 우리를 반기며 일행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에 홀딱 반한 나는 양떼를 향해 두 팔 벌리고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조은향도 그때만은 엄마인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우리 모녀는 한마음이 되어 목동이 수고하여 몰고 온 양떼를. 언덕너머로 다 몰아버렸다. 그게 아닌데. 가까이서 양떼를 보고 싶고, 만져 보고 싶은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건만 목동이 우리 모녀를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물론 욕이었겠지만, 무척 아쉬웠다.

 

내몽고 초원, 생각만 해도 달려보고 싶고 눕고 싶고, 생각이 멈춰지는 그 곳, 하루 종일 한가롭게 초원에서 말을 타고 실눈을 바라보며 깊은 호흡을 만끽했던 그날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시원해진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4박5일 잠시 문명의 이기를 뒤로 한 채 불편함을 감수하며 우리가 밟았던 땅과 현지인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손짓 발짓으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공정여행이 아니었다면 이런 행복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을 것 같다. 조은향은 조은향대로 여행을 느끼고, 천방지축인 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도 잊은 채 많은 사람들의 배려 속에서 4박5일을 온전히 나만 바라보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

 

 

여행길. 사람들이 왜 여행길이라고 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지구 한 귀퉁이 내몽고 초원에서 느꼈던 대지에 대한 경외, 그 길에서 함께 했던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들이 나의 다른 모습이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 나는 다시 겸손해진다. 단순히 즐기고 보는 여행이 아니라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은 자신을 들여다 볼 시간이 필요하신 분께 꼭 추천하고 싶다. 명상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것이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공정여행을 통해 훌쩍 떠나서 돌아온 뒤의 뒷감당도 가능해졌다. 이제 기웃거리지 않고 지금 있는 자리에 만족하며 여행의 잔상들이 나를 풍요롭게 해주는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조은향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아이를 보고 "은향아! 오늘도 재밌게 놀다와!!!"

덧붙이는 글 | 글 장영미 | 오늘도 취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육에 참석하라는 전단지를 붙이고 돌아온 원주성공회 나눔의 집 활동가이고, 한 아이의 엄마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꿈꾸는 것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태그:#공정여행 , #내몽고 , #국제민주연대, #착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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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는 2000년 창립이래로 인권과 평화에 기반을 둔 국제연대 사업을 통해 해외한국기업감시 및 민주주의와 인권연대활동,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감시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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