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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지났습니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아 태양의 죽음과 동시에 부활을 알려주는 절기로, 태양력의 기준점이 되는 날입니다. 12월 22일경에 드는데, 예수 탄생일로 기념하는 성탄절도 페르시아의 동지 축제가 로마를 거치면서 성탄절 축제로 대체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 여겨졌던 태양이 점점 사그라드는 듯한, 한 겨울의 동지는 옛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태양이 떠오르고 다시 점점 낮이 길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새해의 출발이었을 겁니다.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었다는 농가월령가의 11월령을 보면, "동지는 좋은 날이라 양(陽)이 생기기 시작하는구나 특별히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새 달력 널리 펴니 내년 절기 어떠한가" 하여, 죽음이 새로운 삶의 시작과 맞닿아 있음을, 동지를 기념하여 붉은 팥죽을 쑤어 먹고, 새해 시작의 의미로 달력을 보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과 글이 담긴 달력이 인기라지요. 우리 마을에는 마을 주민이 직접 그리고 써서 재생지에 복사한 이 달력이 인기랍니다. 내년 동지에는 기업 홍보용 달력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준을 담은 달력을 만들어서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우리 마을 달력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과 글이 담긴 달력이 인기라지요. 우리 마을에는 마을 주민이 직접 그리고 써서 재생지에 복사한 이 달력이 인기랍니다. 내년 동지에는 기업 홍보용 달력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준을 담은 달력을 만들어서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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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양의 기운이 최고에 도달하는 단오 즈음에는 부채를 선물하고,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인 동지에는 달력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동지 즈음 내년 달력을 사은품으로 받거나, 새해 삶을 꾸려나갈 다이어리, 수첩 등을 장만하지요. 옛날의 책력은 국왕이 '동문지보'라는 어새를 찍어서 관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면, 오늘날의 달력은 기업이나 관공서의 홍보용 달력이거나 돈을 주고 사는 것들이지요. 올해는 '노무현 달력'이 인기라니 새로운 시도인 것 같습니다.

동지 때 개딸기.
동짓날이 추워야 풍년이 든다.
범이 불알을 동지에 얼구고 입춘에 녹인다.
정성이 지극하면 동지섣달에도 꽃이 핀다.
동지섣달에 베잠방이를 입을망정 다듬는 소리는 듣기 싫다.
동지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오뉴월에 비 많이 온다.
동지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객수가 많다.
단오선물은 부채요 동지선물은 책력이라.

동지 때 개딸기가 아니라 하우스딸기다.
동짓날 추운 게 아니라 날이 풀린다.
동지에 눈구경 못해 새알심이 눈으로 보인다.
동지에 프로농구 한창이다.
정성이 없어도 요즘엔 동지섣달에 개나리 핀다.
동지에 성탄 트리에 불밝힌다.
동지에 성탄 트리 전구 때문에 나무들이 괴롭다.
동지 즈음 산타 있냐 없냐로 싸운다.
동지 즈음 엄마아빠들 괴롭다.(애들 선물 때문에)

동지와 관련된 속담들을 찾아보고, 요즘에 맞는 속담을 지어보았습니다. '동지 때 개딸기'라는 속담은 있을 수도 없는 허무맹랑한 것을 일컬을 때 쓰는 속담이었는데, 아이들은 '동지 때 개딸기가 아니라 하우스 딸기'라고 합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빨간 딸기들이 시장마다 가득하니 세월에 따라 이렇게 속담도 바뀌어야 하나 봅니다.

팥 삶은 냄새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 냄새 정말 좋다 하며 기대가 큰 아이들, 긴긴 밤을 나기 위해 팥죽을 먹은 것은 팥이 나쁜 기운을 잡아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랍니다.
▲ 삶은 팥 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팥 삶은 냄새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 냄새 정말 좋다 하며 기대가 큰 아이들, 긴긴 밤을 나기 위해 팥죽을 먹은 것은 팥이 나쁜 기운을 잡아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랍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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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팥을 팥물과 함께 껍질째 갈아서 죽을 쑤었습니다. 갈은 팥을 저어보는 아이들.
▲ 팥을 갈았더니 이렇게 걸쭉해졌어요. 삶은 팥을 팥물과 함께 껍질째 갈아서 죽을 쑤었습니다. 갈은 팥을 저어보는 아이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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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반죽한 찹쌀가루 덩어리를 가지고 콩알만한 새알심을 만들었습니다.
▲ 새알심 만들기 익반죽한 찹쌀가루 덩어리를 가지고 콩알만한 새알심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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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심이 동동 떠오를 때까지 잘 저어주어야 바닥에 눌러붙지 않지요. 두 형님들 열심히 저었지만, 눌러붙은 것을 닦는 것은 선생님 몫?
▲ 팥죽 젓기 새알심이 동동 떠오를 때까지 잘 저어주어야 바닥에 눌러붙지 않지요. 두 형님들 열심히 저었지만, 눌러붙은 것을 닦는 것은 선생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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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술을 뜨는 아이들, 기대 만빵입니다. 물론 설탕을 잔뜩 넣은 단팥죽을 먹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기는 했지요.
▲ 기대 만빵 첫 술을 뜨는 아이들, 기대 만빵입니다. 물론 설탕을 잔뜩 넣은 단팥죽을 먹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기는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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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팥죽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어릴 적에 팥죽이라면 질색을 하며 안먹었답니다.
▲ 맛없어요. 다들 팥죽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어릴 적에 팥죽이라면 질색을 하며 안먹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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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냄비를 비우고 또 다른 냄비 앞에서 대기하는 아이들,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 좋네요.
▲ 한 그릇 더 주세요. 한 냄비를 비우고 또 다른 냄비 앞에서 대기하는 아이들,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 좋네요.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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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늦었지만 아이들과 팥죽을 쑤어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삶은 팥을 으깨어 껍질을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껍질째 갈아서 팥죽을 쑤고, 아이들이 빚은 새알심도 듬뿍 넣었습니다. 새알심이 작아야 맛있다고 하니 콩알보다 작게 만들고 눈(雪)이라고 합니다. 한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시작이 동지점처럼 맞물려 있습니다. 한해동안 썼던 우리 마을 절기 이야기도 동지를 끝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2010학년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편입생을 모집합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태그:#아름다운마을학교, #동지,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절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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