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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셋이 만든 음식으로 차린 아버지 제사상. 메(밥)을 올리기 전이다.
 며느리 셋이 만든 음식으로 차린 아버지 제사상. 메(밥)을 올리기 전이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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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였던 22일은 1966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忌日)이었다. 올해가 마흔세 번째인 아버지 제사에는 7남매 중 5남매가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는데, 지난달에 돌아가신 셋째 매형을 볼 수 없어 마음이 아팠다. 매년 참석해서 집례를 맡곤 했는데.

형수가 제사상을 차리는데 전주에 사는 외사촌 형님이 전화를 해왔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제사 며칠 전부터 챙기고 빠지지 않았던 사촌 형님은 근무가 겹쳐 오지 못했다며 내년에는 꼭 얼굴을 내밀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사촌 형님 전화는 위로가 되었는데, 제사 때마다 가족 친지들이 한두 분씩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른 세월이 밉기만 하다. 그러나 아버지 제삿날을 통해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확인하고, 미래를 예상하고 계획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메를 지어 제사상에 올리는 형수를 형님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밥그릇이 여섯 개인 이유는 훗날 설명하기로..
 메를 지어 제사상에 올리는 형수를 형님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밥그릇이 여섯 개인 이유는 훗날 설명하기로..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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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형제의 혼이 서린 고향집을 56년째 지키면서 43년째 제사를 모시는 형님과 형수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며,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한 형제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쉬는 날 아침도 거르고 형님댁으로 달려가 음식을 만든 아내도 빼놓을 수 없고.

손이 컸던 어머니 

큰 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지만, 칠 남매 모두 살아 있다는 것에 우선 감사한다. 큰 누님이 일흔일곱이고 막내가 쉰여섯인데,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위로해주면서 다툼 한 번 없이 지내온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낀다.

두 손을 모으고 염불하는 셋째 누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라는 기원인지, 소원을 비는 것인지 내용이 자못 궁금하다.
 두 손을 모으고 염불하는 셋째 누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라는 기원인지, 소원을 비는 것인지 내용이 자못 궁금하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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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형제들 종교가 다르다는 것이다. 큰 누님과 둘째 누님은 천주교, 셋째 누님과 막내 누님은 불교, 형님과 동생은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무신론자이고 필자는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자신의 종교를 각자 마음을 수양하고 생활에 활용하지, '내가 믿는 종교 진리가 옳다!'고 고집을 세우거나 교리를 놓고 논쟁을 벌인 적이 없다는 것인데, 형제 우애가 천수경이나 성경에 담긴 진리보다 더 깊고 중요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형수가 식혜를 내오니까 제사 때마다 음식을 바리바리 해서 이웃과 나눠 먹었던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겨우내 부침개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손이 컸던 어머니는 오두막 몇 채에 게딱지처럼 덕지덕지 붙어살던 뒷골목 사람들에게도 떡과 부침개 등을 보냈다.

순간 삼십몇 년 전 어머니의 애절한 목소리가 시나브로 생각나면서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어느 해 제삿날 3형제가 나란히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3대 독자였던 아버지가 보믄 흐뭇허겄다"라며 "애들 아픈 것도 싹 다 가지가고, 돈도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고 했는데, 듣는 순간 속이 짜릿했다.

'애들 아픈 것도 싹 다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애절한 당부는 당시 몸이 허약해서 약을 복용하던 필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몸이 아픈 아들 때문에 어머니가 얼마나 근심·걱정을 많이 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우리 집 아버지 제사는

형님이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아 술잔을 올리고 있다. 술을 따르는 분이 집례를 맡은 막내 매형
 형님이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아 술잔을 올리고 있다. 술을 따르는 분이 집례를 맡은 막내 매형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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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사는 형님이 단정하게 않아 향을 피우고 술을 따라 올리고, 재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엔 메(밥)를 지어 올리고 밥뚜껑을 열고 수저로 고르고 물러나 기다렸다가 두 번째 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그리고 한참 기다렸다가 마지막 잔을 올리고 재배한 뒤 철상하는 것으로 제사가 끝난다.

철상을 하면 음복을 하는데 조상께서 주시는 복된 음식이란 뜻으로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 것을 말한다. 술자리가 끝나면 제사 음식을 나눠 주는데 올해에는 다섯 집이 나눠 먹었다. 이 또한 돌아가신 부모 덕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 제사상을 차릴 때마다 형수가 성주 상도 함께 차린다는 것이다. 유교식 제사 순서에 없는 방식이다. 다만, 옳고 틀리고를 떠나 집을 지켜주는 신을 의미하는 성주님을 일심 정성으로 모셨던 시어머니를 그대로 이어받는 형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조카가 딸과 함께 외할아버지 제사상에 절을 하고 있다. 딸에게는 외증조 할아버지가 된다.
 조카가 딸과 함께 외할아버지 제사상에 절을 하고 있다. 딸에게는 외증조 할아버지가 된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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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누님의 둘째 아들(조카)은 아내와 딸과 함께 참석했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제사 때마다 참석하는 조카는 밥도 먹고 술잔도 나누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절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십 대 후반인 조카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풍습을 익혀두는 게 좋다며 제사 때마다 데리고 온다.

옛날에는 새벽닭이 울기를 기다렸다가 철상을 했다. 그러나 새벽닭 우는소리를 들을 수 없는 요즘엔 제주가 알아서 적당한 시간에 제수를 거두기 시작하는데 옛 어른들은 찾아왔던 영혼이 닭 울음소리를 듣고 떠나는 것으로 믿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제사에서 술을 올리고 절하는 횟수가 세 번씩인데 첫 번째는 영혼을 맞이하는 의미이고, 두 번째는 맛있게 잘 드시라는 의미, 세 번째는 안녕히 가시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살아서 삼배, 죽어서도 삼배'라는 말도 이러한 제사문화에서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제사를 지낼 때나 상가(喪家)에서 향을 피우는 이유는 냄새가 하늘나라까지 퍼져 영혼이 냄새를 맡고 오시라는 뜻도 있고, 악취를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어른이 되도록 향냄새가 무서웠다. 삼베 냄새도 무척 싫어했는데 상가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한 냄새는 곧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제삿날은 죽은 자만의 날이 아니다

사람들은 제삿날을 돌아가신 영혼(귀신)에 음식을 바치는 날이라고 말한다. 맞다. 그러나 살아 숨 쉬는 자손들에게도 중요한 날이 아닐 수 없다. 정해진 날에 형제들이 모여 돌아가신 어른의 뜻을 기리며 우애를 다지고 정을 돈독히 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먹는 행복도 빠질 수 없겠는데, 살아 있는 어른에게 대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제사 음식은 결국 자손들 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하는 얘기이다.  

제사 음식에는 악귀가 붙어 있다며 쓰레기만도 못하게 여기는 사람을 종종 보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농어민이 피땀 흘리며 거둬들인 소중한 음식에 악귀가 붙어 있다니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미신과 종교의 위치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까.  

음복하면서 형제 우애를 다지다

제사를 마치고 음복하는 모습. 제삿날은 죽은 자만의 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제사를 마치고 음복하는 모습. 제삿날은 죽은 자만의 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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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가 끝나고 형제들이 둘러앉아 음복했는데 오랜만에 먹는 한산 소곡주에 홍어찜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형수가 "생선을 다뤄놓고 홍어를 사다 걸어 놓으니께 다음날부터 눈이 펑펑 내리는디 기분이 얼마나 좋을 꺼여···"라며 입맛을 부추겼다. 그래서인지 홍어찜이 더욱 고소했고, 소곡주만이 지닌 특유의 달착지근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니까 제사 관련 이야기부터 함께 살았던 동네 사람들 얘기, 아버지·어머니가 고생했던 얘기, 음식과 관련된 얘기,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4대 강에 미혼모 얘기까지 나왔는데, 자식들에게 엄했던 아버지 얘기가 나올 때는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했다.

전직 교사였고, 제사 집례를 맡았던 막내 매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제사 음식문화를 설명해주었다. 서해안 주민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제사상에 조기를 올리고, 남해안은 꼬막, 동해안은 문어가 빠지지 않는다며 하늘에 제사지내던 부족국가 시대부터 내려오는 문화라고 했다.  

제사가 들어 있는 계절에 많이 나오는 곡식과 과일, 나물 등을 제사상에 올리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해서 막내 매형 설명은 그 지역 특산물을 제사상에 올린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하긴 물류 유통망이 좋아진 요즘엔 동·서 해안을 가릴 필요가 없어졌지만.

막내 매형은 조선시대에 자리 잡은 유교식 제사문화에서 제사상에 기본으로 오르는 과일, '조율시이'(棗栗柿梨)에 얽힌 사연도 말해주었다. 수박이나 참외 등은 철 따라 올리는 과일이지만, '조율시이'는 기본이어서 빠지면 안 된다고 했다. 

'조'에 해당하는 대추는 씨가 하나로 '임금'을 상징하고, '율'에 해당하는 밤은 제대로 차면 세 개여서 '삼정승'을 상징하고, '시'에 해당하는 감은 여섯 개로 '육조'를 상징하고, '이'에 해당하는 배는 여덟 개로 조선 팔도 관찰사를 상징하는 과일이라고 한다.

조카가 가져온 한산 소곡주를 권커니잣거니하면서 시작된 대화는 1년 중 가장 길다는 동짓날 밤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이어졌는데, 2시가 다 돼서야 형수가 챙겨준 제사 음식 보따리를 들고, 아내와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확인하고, 형제들과 즐겁게 보낸 것에 감사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버지제사, #형제우애, #성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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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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