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2009 시민기자 특별상 수상자로 양형석 기자와 김종성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양형석 기자는 '스포츠'가 있는 곳엔 언제나 함께하며 발 빠르고 분석적인 스포츠 기사를 올려 눈길을 끌었으며 김종성 기자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소재로 7개월 동안 꾸준히 '사극으로 역사읽기'를 연재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시상식은 2010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0만원씩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09 올해의 뉴스게릴라상'과 '2010 2월22일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제4회 대학생 기자상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를 드립니다. [편집자말] |
지난 22일, 반년 넘게 월화드라마 시장을 평정했던 MBC <선덕여왕>이 62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회가 방영되던 그 시각, 여의도 컨벤션센터에서는 <선덕여왕>의 종방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종방연에 참석한 주인공 이요원은 사진으로 보기에도 무척 지친 기색이었다. 마지막 회가 방영되던 당일 아침까지도 현장에서 촬영을 하고 왔다고 하니 지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선덕여왕> 때문에 지친 것은 드라마의 출연배우들이나 스태프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지난 7개월 동안 <선덕여왕>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매주 빠지지 않고 꼬박 써온 이가 있으니, 2007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사극으로 역사읽기' 코너를 연재 중인 김종성 기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6월 9일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그의 <선덕여왕> 관련 기사는 모두 54개. 매주 2개씩의 기사를 7개월 동안 쉼 없이 쓴 셈이다. 더구나 그의 기사는 분량 또한 일반 기사의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 그 분량의 방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사가 인기도 많아, 그가 쓴 기사의 조회수를 모두 합하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숫자가 나온다.
놀라운 건 기사의 분량이나 연재 주기뿐만이 아니다. 기사의 내용 또한 사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사극 속의 허구와 실제 역사의 차이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되어 있다. 보통의 역사 관련 기사가 교과서 읽듯 딱딱하고 지루하다면 그의 기사는 쉽고 재미있어서 이해가 빠르다. 이는 사극이라는 소재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기사를 쓰기 위해 기울였던 그의 노력이 밑바탕 되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과 함께 쉴 새 없이 달려온 7개월지난 21일, 배우 이요원(덕만)과 고현정(미실)보다 먼저 <오마이뉴스> '특별상'을 수상하게 된 김종성 기자를 대학로에서 만났다. 수상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평소 침착한 김종성 기자가 조금은 들뜬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수상소감마저도 침착, 그 자체다.
"독자들과 오마이뉴스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올해 <선덕여왕> 관련 역사 해설에 주력한 데는 어릴 때의 추억이 중요한 작용을 했다. 어렸을 때에 가장 먼저 읽은 책이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고사들을 간추린 책이었다. 그 책에 나온 주인공 중 하나가 바로 김유신이었다. 그 덕분에 그 이후로 김유신의 파트너인 선덕여왕과 김춘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번에 '사극으로 역사읽기' 코너에서 <선덕여왕>을 다룬 데는 그런 관심이 밑바탕에서 작용했다. 특별상 수상 소식을 듣고 나서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사실 김종성 기자의 이번 선덕여왕 기사들은 대부분 위작 논란이 일고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쓴 것들이라, 매회 독자들의 '찬반양론'을 불러오기도 했다. 김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독자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하나는 이미 예상했듯, 기사 내용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사를 이렇게 써달라'고 주문을 하는 부류였다고 한다. 심지어 "특정 인물을 잘 봐달라고 한 독자들도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김종성 기자의 기사가 그만큼 인기 있었다는 방증일 터.
앞서 이야기했듯, '쪽대본'도 '생방송 드라마'도 아니었지만 7개월 동안 한 드라마를 꾸준히 보며 매주 2건의 기사를 생산해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좀 힘들지 않았나? 어려움은 없었나?'라고 물었는데, 역시 진지하고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기사를 보통 월요일하고 수요일에 쓰는데, 월요일 기사는 지난 주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수요일 기사는 그 주의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 드라마를 주의 깊게 보다가, '이런 부분은 시청자들이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는지 궁금해 하겠구나' 싶은 부분이 나오면 종이에 메모를 했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면 메모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삼국사기·삼국유사·화랑세기도 모자라 논문까지
김 기자의 기사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초반 그 주에 나온 사극 장면들을 묘사한 뒤 실제 역사와 비교하는 것. "기본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화랑세기>(필사본)을 참고한"단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사료만으로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울 때는 논문을 참고한다고. '논문'이라고 하니, 듣는 나도 머리가 지끈지끈한데 1~2개는 기본이란다.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학설대립이 심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논문 3~4개씩 봐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당시 국제 정세를 파악해야 할 때는 중국의 <구당서>나 <신당서>, 일본의 <일본서기>를 들춰보기도 한다.
듣기만 했는데도 귀가 얼얼했다. 이걸 다 읽고 기사를 쓰려면 120시간은 족히 걸리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4시간"이란 믿을 수 없는 단어가 내 귓가를 맴돌았다.
"사극과 관련된 기사를 쓰기 이전에는 주로 제 전공분야인 동아시아 통상 문제나 고대 한중 관계와 관련된 기사를 썼었는데, 그 땐 정말 빨리 썼다. 보통 기사 하나를 완성하는데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사극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이 4시간으로 늘어나 버렸다. 거기에 드라마를 볼 때도 놓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굉장히 집중해서 봐야 해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많았다."역사학자인 그가 '사극으로 역사읽기'를 쓰게 된 계기는 뭘까. 그것도 한국사가 아닌 동아시아 통상 전문가인 그가. 거기엔 '역사를 좀 더 쉽게 대중에게 전달할 수 없을까'란 역사학자로서의 고민이 묻어 있었다.
그의 그런 고민의 발자국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찾을 수 있다. 2007년 12월, 그는 강감찬 장군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낙성대로 답사를 갔고, 답사형식의 기사를 올렸다. 그 기사를 쓰면서 그는 자신에게 '대중에게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전달할 순 없을까?'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떠오른 게 '사극'이었고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던 MBC 드라마 <이산>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사극, 핵심까지 침범하면 그건 작가 상상력 남용"이쯤에서 역사드라마가 만들어질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역사왜곡'이란 단어를 들이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극은 드라마의 한 장르이고, 드라마 시나리오는 문학의 일종이므로 작가적 상상력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렇지만 사극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실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주변부뿐만 아니라 핵심까지 침범하려 든다면 그건 작가적 상상력의 남용이라고 본다"며 사극은 누가 뭐래도 대중의 역사의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반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운 만큼, 김종성 기자 주변 역사학자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그들은 김종성 기자가 쓰는 '사극으로 역사읽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역사 연구자들은 연구분야 특성상 '변화'나 '전환' 혹은 '진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여타 분야의 학자들보다도 오마이뉴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역사 연구자들이 오마이뉴스에 자주 들어오다 보니, 덩달아 <선덕여왕> 기사도 함께 읽게 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한편,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 자체보다는 필사본 <화랑세기>라는 책에 대한 관심 때문에 기사를 읽는 분들도 있었다. 역사학계에서는 아직 <화랑세기>에 대한 판단이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화랑세기>에 대한 관심 때문에 기사를 읽은 분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사를 보다보면 가끔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부분이 나온다. 물론 드라마에 등장하는 현실정치 비판에 기인했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기사로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대한 김 기자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고, 그건 사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선덕여왕>의 경우에는 작가가 의도하고 현실 정치를 풍자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립이라는 게 꼭 5:5로 나눈 정중앙에 서 있는 것이라곤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보수적이기 때문에, 조금은 진보적인 위치에 서는 게 지금 시대의 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 드라마에 빗대어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논조의 기사를 쓰는 것이다."인터뷰 말미, 조금은 짓궂은 질문을 하나 던졌다. '당시 신라에 살았다고 가정했을 때 덕만과 미실, 둘 중 누구의 통치를 받고 싶은가.' 김종성 기자는 막후정치를 했던 미실보단 덕만 아래서 사는 게 편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굳이 한 명을 선택하라면 그렇다, 하지만 미실도 대단한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야 세력이 신라의 지배층에 편입될 수 있었던 까닭 중 하나가 바로 미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미실은) 가야 출신의 유능한 인재들을 두루 등용하여 신라의 전반적인 인재난을 해소했다, 김유신을 풍월주로 만든 것도 미실이었고 신라가 가야 세력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대동강 유역 진출은 어렵지 않았을까 한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사극 <동이>와 함께 돌아옵니다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에게 다음 계획에 대해 물었다. <선덕여왕>이 끝나고 난 뒤에도 '사극으로 역사읽기' 코너를 계속 연재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는 또 어떤 사극으로 어느 시대의 역사를 들려줄 것인지 궁금했다.
"내년 3월부터 이병훈 감독의 사극 <동이>가 방영될 예정으로 알고 있다.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동이>가 방영되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쓸 생각이다. 그 때는 궁중 문화, 그리고 조선조 역대 왕들의 어머니에 대해 써보고 싶다. 요즘 그 부분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숙빈 최씨가 참 독특한 인물이어서 재미있는 기사거리가 많이 나올 것 같다."김종성 기자의 2010년 목표는 더 많은 고전을 읽는 것이라고 한다. 최근 그가 계속 느끼는 것이 "결국에는 모든 게 고전 속에서 나온다는 것"이라고. "새로 나온 지식 못지않게 고전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요즘 예전에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또 읽지 못했던 고전들도 새롭게 읽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엔 재밌는 사극이야기와 더불어 고전들에 대한 이야기도 김종성 기자의 '맛깔 나는' 글 솜씨로 전해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