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1월 17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재일동포 김병진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결정'을 내려주었다. 어렵게도 그리고 면밀한 조사로 확인해준 26년만의 진실이다. 불법연행과 장기구금 그리고 고문과 2년을 넘은 강제근무 사실도 확인해 준 셈이었다. 진실과화해위원회의 노고에는 정말 감사드린다.

하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허전함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권고사항에 '국가는 신청인 및 관련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못박아주었지만 국가에서 책임져서 대응해 줄 부서가 어디냐는 막막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무사이어야 할 것이다. 보안사 후신인 기무사는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처지라 할지라도 나는 알고 있다. 기무사가 5공시절 녹화사업이란 이름으로 전두환의 재가를 받아 수많은 젊음을  죽음으로, 즉 의문사로 몰아갔으면서도 그 유가족들에겐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는커녕 오히려 그분들의 아픈  마음을 짓밟고 온 사실, 기타 간첩조작 피해자와 인권침해 피해자 그리고 그 유가족들에게 대한 사과는 한 마디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5공시절, 그 야만의 시대의 후안무치는 21세기에 이른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5공시절로 돌아간 2009년 대한민국

진실과화해위원회 결정을 받고, 그 동안 내게 많은 힘을 실어준 국내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또 앞으로의 일들을 상의할 의향으로 12월12일 조국을 방문했다.

안타깝게도 불과 며칠밖에 안 되는 국내 체류기간 동안, 과거청산이라는 민주화운동의 쟁취물이 현정권 하에서 외면 당하고 짓밟히고 있는 현실을 오히려 똑똑히 목도해야만 했다. '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달라'며 울부짖던 그 노부모님들의 애절한 절규가 집권세력의 비웃음과 함께 무시당하는 현실, 내겐 과거 보안사를 통해서 겪었던 인권침해 현실도 중요 했지만, 지금의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지가 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과거청산이 푸대접을 받고 있을뿐만 아니었다. 기무사 민간인사찰 소식을 일본에서 접한 후에 직접 그 피해자분들을 국내에서 만나고 보니 되살아난 5공귀신, 정보공작정치의 부활과 소생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전율을 금할 수가 없었다.

5공은 과거임을 믿고 싶었다. 20대 후반 나이에 보안사와 인연을 맺고 그 악연으로 가족까지 고통스런 26년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간 그들과 싸워온 나는 30, 40대 젊음은 없고 갑자기 50대 중반 나이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는 제발 이 싸움과 갈등을 끝냈으면 했다. 하지만 기무사령관과 대통령의 독대가 부활했고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검찰을 비롯한 공안기관과 정보기관들을 충성경쟁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보안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내게 기무사 민간인 사찰은 또 하나의 공안사건 조작시도이며 우리 국민에게 대한 5공시절과도 똑같은 오만불손이다.

그들은 오직 군림할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절대로 동거할 수 없는 군림, 정보공작정치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고개 들고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일본으로 떠나야 했던 17일 오전, 국내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 기무사령부를 찾았다.

기무사령관 사과 받을 때까지 기무사 찾을 것

민원실 여직원에게 미리 전날 기무사로 문서로 보낸 내용 그대로 '김종태 기무사령관 사과를 받으러 왔다'고 말했더니 당혹스러워 하는 듯했다.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민원실 의자에 앉아 기다렸지만 30분 지나도 기별이 없고 1시간이 지나도 묵묵부답은 마찬가지였다. 문전박대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 조사기관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려주었고 그 결정에 따라 피해자인 내가 가해기관의 최고 책임자로부터 사과를 받겠다는데 결과적으로 나를 무시하니 오히려 내가 내 조국, 대한민국이 부끄러웠다. 이것은 경우가 아니었다. 내가 찾아가기 전에 기무사령관이 먼저 나를 찾아와야 순서가 아닌가. 도대체 국가적 도덕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보안사>의 저자 재일교포 김병진씨.
 <보안사>의 저자 재일교포 김병진씨.
ⓒ 오마이뉴스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김포에서 간사이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비좁은 좌석에 앉아 있는 시간 내내 '내가 받은 진상규명 결정 통지문은 내게 끝을 알려주는 소식이 아니었다. 새로운 싸움의 시작을 알려주는 통지문이었다'는 감회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기무사령관 사과 받으러 나는 다시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300번지를 찾을 것이다. 기무사령관이 나와 내 가족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할 때까지 나는 지겹도록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300번지를 찾을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많다. 그 많은 이유 중 특히 재일동포인 나의 입장에서 고국에 계시는 여러분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기무사령관을 사과하게 만듦으로써 내 나라 내 조국이 정말 사람 사는 조국임을 느끼고 싶은 재일동포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정의가 통하는 조국임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해방 후 역사에서 남북 분단의 희생양으로만 남북 독재에 의해 이용만 당해온 재일동포들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꼭 기무사령관의 사과를 받아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나는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300번지를 다시 찾을 것이다.


태그:#기무사, #김병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이 기자의 최신기사11,000,000,000원짜리 태극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