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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3일 여수여도중학교 3학년 275명이 연극공연을 보기 위해 강당에 모였다. 난로를 네 군데 켰지만 냉기만 줄여줄 뿐 겨울은 겨울이다. 월요일부터  2박 3일 동안 서울로 졸업여행을 다녀온 이들에게 차가운 강당바닥은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곳이라 곳곳에서 투덜댄다.

 

이날 공연은 놀이패신명의 배우 12명과 4명의 악사, 2명의 스탭이 참여해 80분 동안 진행됐다. 오월굿 '일어서는 사람들'의 연출은 한국민족극운동협의회 이사인 박강의씨가 맡았다. 그녀는 연출과 함께 작품 속에서 오월의 한을 관객들에게 직접 전하는 주연배우이기도 하다.

 

극단 '신명'은 원래 극회인 '광대'회원들로부터 출발했다. '광대'로 연극 활동을 하던 중 광주항쟁에 직접 참여하여 도청에서 죽거나 수배돼 술로 세월을 보내던 이들은 82년도에 '신명'으로 재창단했다. 이들은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들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자"며 나섰다.

 

당시 감시의 눈초리가 엄중한 시기라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공연장은 에너지가 넘치고 관객과 밀착됐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지만 긴장 속에서도 책임감을 느꼈다. 재작년 동경, 오사카를 비롯한 일본 6개 도시의 11회 공연까지 포함해 총 4백여 회를 공연한 소감을 연출자에게서 들었다.

 

"5․18이 공인되면서 더 이상 교육이 필요치 않을 것 같은데 현장에 와보면 더욱 필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의미 있는 문화충격에 빠집니다. 청소년들이 처음에는 "뭐야? 에이!" 하다가 점점 동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애로사항은 MB정권에서는 재정적지원이 전혀 없어요. 기초예술에 대한 마인드도 없고 연극도 돈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가져요"

 

작품의 시작은 부부의 인연을 맺은 곰배팔이와 곱추(박강의 분)사이에 아들 일팔이가 태어나면서부터다. 장성한 일팔이는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에 시민군으로 참여하게 된다. 현대사의 비극을 담은 내용이라 무거울 것 같은 데 시종 웃음과 울음이 넘친다.

 

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던 오일팔과 시민군들이 끝내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가 춤, 노래, 재담 등을 통해 웃음과 눈물을 넘나들며 마침내는 터져버릴 것 같은 역동적인 신명으로 승화된다.

 

 

첫째 마당의 소제목 '봄이왔네! 봄이왔어!'는 1979년 박정희 전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그때까지 억눌렸던 유신체제에서 벗어나 이 땅에 민주주의의 봄이 왔음을 상징한다.

 

빨래하러 나온 곱추는 문득 불편한 자신의 몸이 서럽기도 하지만 그녀에게도 가슴 설레는 봄이 왔다. 곰배팔이와 부부의 연을 맺고 산고의 고통 끝에 아들이 태어나는 장면이 흥겨운 춤과 재담 그리고 노래로 보여진다.

 

둘째 마당 '해방 광주 만세'는 광주시민들의 5월투쟁 시작부터 해방광주까지의 진행과정을 역동적인 집단무로 형상화한다. 도청이 시민군의 손으로 넘어오고 아줌마들은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한편 아들 일팔이를 기다리는 곱추부부는 들려오는 광주소식에 애간장을 태우다 직접 찾아 나선다.

 

셋째마당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서는 도청의 마지막 밤이다. 시민군들은 시시각각 좁혀오는 계엄군의 포위망을 온몸으로 느끼며 도청에서의 마지막 밤을 준비한다. 어린 고등학생부터 이름 모를 시민군들 그리고 오일팔대장은 계엄군의 총탄 앞에 붉은 꽃잎 되어  장렬히 산화한다. 아들을 찾아 나선 곱추와 곰배팔이는 시신 앞에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며 오열한다.

 

"아가! 에미 왔다. 일어나봐. 아이고 내새끼. 불쌍해서 어찌끄나. 가난한 집에 태어나 이 공장 저 공장으로 고생만 고생만 하다가…. 아이고 이눔의 자슥아. 공부해갔고 에미 호강시켜 준다더니….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헌디"

 

총 맞아 죽어 무덤 속에 갇힌 시신들은 곱추 어머니의 씻김 굿마당에 맞춰 서서히 부활한다.  아들의 죽음을 딛고 일어선 곱추와 곰배팔이는 더 이상 병들고 비틀어진 육신이 아닌 이 땅 모두의 어머니 아버지로 우뚝서고 진군의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춥다고 투덜거리며 불평했던 학생들의 눈자위가 충혈되며 숙연했던 공연장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울려 퍼진다. 연출자 박씨는

 

"이렇게 아픈 역사를 지닌 5․18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이 땅에는 아직도 억울한 죽음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 단 한 명의 억울한 죽음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용산참사로 죽은 시신들은 묻히지 못하고 있어요"

 

"5․18이 왜 일어났느냐?"는 질문에 "군사독재에 맞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항거한 것"이라고 정확히 대답한 학생들은 "너무 슬펐어요. 뜻 깊었어요"라고 짧게 대답했지만 문채은 양은 구체적으로 대답했다.

 

"평소에 국사를 제일 좋아했고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한국이 이런 과정을 겪었구나 했었는데 연극을 보고나서 마음 속 깊이 느꼈어요. 감동적이고 슬펐어요"

 

처음에는 멋모르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렸지만,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극단 홈피에 소감문을 적은 나주 모 고등학생의 소감이다.

 

"잠깐동안 상품을 돌리는 간단한 맛보기를 거쳐 시작한 마당극! 마당극을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굉장한 문화충격이었다. 전신을 던져 박진감 넘치는 행동들. 처음에는 멋모르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렸지만, 분위기가 점점 고조됨에 따라 무거워만가는 분위기와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숙연한 분위기와 엄숙한 표정. 거기에 절정에 다다르면서 한 여자배우분이 눈물을 흘리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장면. 할머니역할을 담당하던 분이 종이를 태우면서 보이는 춤사위. 불에 타면서 생기는 아직도 붉은 기운을 머금은 재가 날리는 무대. 정말이지 가히 환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배우들의 열정적인 공연은 한 겨울의 추위를 녹이고 학생들의 마음속에서 민주와 이타심으로 부활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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