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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올해(2009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 생활비 25%(5만 원) 인상. 모 사이트에 만화 연재를 알려온 딸 소식 등을 꼽을 수 있겠는데 아내가 애마처럼 부리던 13년 된 티코를 프라이드로 바꾼 사건이 가장 먼저 꼽힌다.

 

내가 바꿔야겠다고 하기 전에는 계속 티코를 몰겠다고 약속한 아내였다. 그런데 1년도 못 가서 '입 병'이 났다. 고급 승용차만 보면 이름을 줄줄이 꿰면서 '차 타령'을 해댔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기다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차가 워낙 오래되어 밤에 갑자기 멈출지 몰라 불안하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아내는 지난 6월에 일을 저질렀다. 젊은이가 몇 차례 집에 오가더니 기어코 새 차를 뺀 것이었다. 프라이드였는데 티코보다 산뜻하고 승차감도 좋았지만, 걱정이었다. 딸의 '지원금'과 장모님, 처제의 도움을 받아 할부로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시승식 하던 날도 아내는 시내로 설렁탕을 먹으러 가면서 "차를 바꾸니까 날아갈 것처럼 가볍고,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아요"라며 기뻐했다. 그 후에도 출근할 때마다 새 차라 가볍고 승차감도 좋다면서 무척 행복해했다.

 

아내는 인심도 베풀었다. 쉬는 날 야외로 나가자는 말을 자주 했고, 평소에도 "시내에 나갈 일 없어요? 태워다 줄게"라며 차 운전사 노릇을 자청했다. 그런데 십리도 못 가 발병이 난다더니 요즘은 많이 변했다. 차에 대한 애착심도 전만 못하고, 내가 나가자고 해도 시큰둥 한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다. 문서에 도장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게 다 사람 마음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들이도 좋지만 긴축해야

 

며칠 전 아침이었다. TV를 시청하던 아내가 "오늘 나 쉬는 날인데 어디로 나갈까요?"하고 묻기에 "어디를?"하고 되물으니까 "날씨도 좋고 하니까, 어디 다녀올 만한 데가 없나 하고 물어본 거예요"라며 웃었다.  

 

"어디든 나가면 좋지, 갈 데도 많고, 그런데 나갔다 하면 돈을 써야 하니까 문제라고, 어제도 안나(딸) 고속버스 타는 거 보고 올 때 외식하고 왔잖아. 나들이도 좋지만, 차 할부 넣으려면 긴축해야 하니까."

 

"그래도 앞으로 우리가 많아 봐야 15년 정도밖에 돌아다니지 못할 거예요. 15년 후면 일흔다섯이니까, 운전도 힘들어서 못할 것이고, 그 나이가 되면 면허증 갱신이나 해줄지 모르는 일이고···." 

 

동갑내기 아내는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에둘러 표시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넣어주려고 "무슨 얘기야, 그때 가면 법도 바뀐다고. 공무원 정년도 몇 년 늘어날 모양이던데, 지금은 환갑을 중년이라고 하지만, 그때쯤이면 칠순이 중년 소리를 들을 텐데 뭘"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아내는 성탄 이브였던 24일 밤 퇴근해서 오더니 "오늘 같은 날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나?"라며 아쉬워했다. 해서 "교회에서 예배보고 새벽송 다니는 사람들이나 이렇게 안개 낀 날도 나가지, 할 일 없는 우리가 덩달아 밖으로 나갈 것은 없지"라며 1년 전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 12시 넘어서 시내에 나갔잖아. 그런데 거리에 사람 하나 없고, 귀신이 나올 정도로 캄캄해서 성탄 이브 기분도 나지 않았고, 드라이브만 하다가 통닭집을 겨우 찾아서 한 마리 먹고 들어 왔지."

 

"그랬던가? 맞아요, 옛날에 우리가 살았던 중앙로 상가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고, 나운동은 사람이 많았는데 젊은이들뿐이었어요. 그 속으로 휩쓸리려니까 쪽팔려서 그냥 왔지요. 걔들은 무엇이 좋은지 새벽까지 신나게 돌아다니던데 나는 재미도 없고.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회에 다녀와서는 다들 할아버지·할머니가 됐더라며, 그들에 비하면 자기는 아직 '청춘'이라고 자위하던 아내였다. 그런데 '청춘'이라는 생각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나이를 잠시 착각한 모양이었다.

 

"젊었을 때는 미래에 다가올 꿈과 희망이 있으니까 하루하루가 재미있지. 그렇다고 사람은 원하는 것을 손에 쥐거나 계획한 일이 성사되었다고 항상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 자기가 차를 처음 구입했을 때와 지금 느낌이 다르듯 말이야."

 

"하긴 그래요. 처음보다 많이 시들해진 것은 사실이니까. 처음에는 운전석에 앉으면 비행기 조종석처럼 하늘을 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몸이 피곤하고 별로예요. 사는 것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고."

 

"그게 바로 행복한 고민이라는 거야. 나도 어른이 되기를 바랐는데 정작 되고 보니까, 걱정·근심만 늘었고, 나를 혼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이를 먹었는데도 만족은커녕 마음만 허탈하니까. 그래서 나이를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환갑이 내일모레인 아내는 최근에 유행하는 소녀시대 노래를 즐겨 듣고, '빵꾸똥구'를 유행시킨 드라마 '지붕 뚫고 하이킥'을 빼놓지 않고 본다. 만화도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웹툰만 골라보면서 스포츠 중계도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가리지 않고 시청한다.

 

TV를 시청하다 웃기는 장면이 나오면 하루에도 몇 번씩 폭소를 터뜨리고, 책을 읽다가 슬픈 대목에서는 눈물 흘리는 아내이다. 그러면서 사는 게 재미가 없다니,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연말에 느끼는 허무감의 표출로 받아들여졌다.

 

며칠 남지 않은 기축(己丑)년

 

아내와 1년 넘게 떨어져 살면서 한 달 아니면 두 달에 한 번씩 만날 때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래를 위해 내가 원했던 일이었고, 머지않아 한집에서 지낼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집으로 이사해서 한 달에 20일 이상 함께 지내는데도 외로움은 더하고 걱정도 늘었다. 또 밤 근무를 이틀이나 사흘 연속하는 날은 떨어져 있을 때보다 외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간호사인 아내와는 생활환경이 다르게 자랐고, 사고도 달라 자주 티격태격하는데 다행스럽게도 30분을 넘기지 못한다. 금방 싸우고도 밥 먹으라고 성화이니까. 그렇게 28년을 살아왔다. 잠시 아내의 근무표가 적힌 달력으로 눈길이 향한다. 

 

정초에 기축(己丑)년 달력을 벽에 걸면서 "내가 벌써 육십이네!"라며 놀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지막 달력의 수명도 며칠 남지 않은 것을 다시 확인한다. 그러나 며칠 동안이라도 다가오는 2010년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다짐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내, #2009년, #티코,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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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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