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이 말은 주로 기독교에서 통일교를 이단 시 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지난 2009년 12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통일교의 문형진 회장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문형진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회장이자 사실상 통일교 2대 교주이자 문선명 총재의 막내아들이다. 문형진의 이 말은 통일교의 자기 인식에 대한 큰 전환을 암시한다. 1954년 통일교가 간판을 건 이후로 지금까지 '통일교는 본질적으로 기독교다'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일교 안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필자가 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니던 시절, 대학 문화관에서는 통일교 문선명의 부인인 '한학자 강연회'가 계획되어 있었다. 그 당시 통일교는 기독교 이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각 기독동아리와 기독학생연합회는 난리가 났다. 통일교가 교내에 들어와 강연회를 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며 피켓시위를 하며 강연을 막아섰다.
결국 강연회는 취소된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종교적 색채를 갖지 않은 운동권 총학생회에서는 다른 이유에서 통일교의 강연회를 달가와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총학선거 후보에 통일교측 후보가 나왔는데, 당시로서는 생뚱맞게 '반공'을 공약에 내걸었던 것이다. 학내 분위기를 주도하던 운동권학생들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통일교 초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1955년 이른바 '연대-이대 사건' 때문이었다. 문선명은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한 지 일년만에 기독교계 대학인 이화여대와 연세대의 교수와 학생들을 신도로 끌어들여 집단 퇴직, 퇴학사태로 이어졌고, 문선명 자신은 혼음과 간첩 혐의로 고소당해 급기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때부터 통일교와 기독교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되며 이단시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기독교에서는 통일교를 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일까? 크게 보면 통일교가 '성경'이외에도 '원리강론'이라는 교리서를 경전처럼 사용하고, 동양사상도 많이 흡수하였고, 결정적으로 문선명을 구세주로 신격화한다는 것이다.
이후 통일교는 국내에서는 사이비종교단체로 지탄받았다. 국내 기독교의 압박에 못이긴 문선명은 1972년 통일교의 선교 중심지를 미국으로 옮긴다. 여기서 '기독교'라는 간판으로 통일교는 미국과 일본과 제 3세계 등에서 종교적으로, 사업적으로 어느정도 성공을 이룬다. 문형진의 말에 의하면 2009년 현재 전세계적인 통일교 신자는 400만에서 50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교의 성공에 비례해서 기독교측의 경계심도 더욱 커져갔다. 1979년 4월 한국의 개신교계는 통일교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통일교는 기독교가 아닌 전혀 다른 종교라고 선언하였으며, 개신교 교단 연합으로 통일교 산하기업의 물품인 일화생수, 맥콜, 진생업 등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가톨릭의 경우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타종교에 대해서는 개방적이었지만, 통일교에 대해서만은 단호했다. 교황청은 통일교의 영리사업, 교주의 탈세혐의, 신자모집에서의 세뇌공작 혐의 등을 예로 들며 통일교는 '기독교를 가장한 비기독교' 집단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로마 교황청 비그리스도교 사무국은 1985년에 '통일교가 주관하거나 후원하는 단체에 일체 참여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전세계 로마 가톨릭 교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후로도 통일교의 기독교 짝사랑은 계속되었지만, 기존 기독교는 통일교를 철저히 이단시했다.
그러다 1997년에서 통일교는 자신들의 명칭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서 '기독교'를 떼어내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간판을 바꿔단다. 기독교에 연연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것이다. 이미 이때부터 통일교는 기독교의 그늘이 없어도 혼자 자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문형진은 "통일교인들이 핍박받고 위축된 상태에서 20-30년을 보내다보니 많이 위축돼 있다, 이제는 우리의 전통과 정체성에 대해 프라이드를 가지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종교자유를 누리면서 신앙과 원리를 재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몇 해 전 문선명이 통일교의 전면에서 물러나고, 세 아들이 전면에 나왔다. 문선명이 34년간의 미국생활을 끝내고 2003년 한국으로 영구귀국 하면서, 7남 6녀 중 막내아들인 문형진을 사실상의 후계자로 교단의 총책임을 맡겼다. 그리고 교단을 종교와 통일교 재단 내의 기업경영, 비정부기구활동(NGO) 분야로 나눠 세 아들에게 분담시켰다. 물론 문선명이 죽기 전까지는 막후 조정역을 계속할 것이다.
문형진은 하버드대에서 철학과 비교종교학을 공부하고, 잠시지만 가톨릭수도원 생활을 하고, 선불교에도 심취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사실상의 2대 교주 자리를 맡으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문형진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독교 교단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원리](통일교 경전)은 성경만이 아니라 동양사상으로 정리해 설명하고 있다"며 기존과는 다른 동양사상 친화적인 발언도 했다. 이전에 기독교와의 이단논쟁 당시 통일교측이 자신들은 기독교에 근거하여 동양사상과 한국사상을 수용한 것이지, 동양사상의 토대 위에 기독교적 요소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과는 뉘앙스가 다른 주장이다.
지금 통일교는 정체성 재정립의 기로에 서 있다. 통일교는 기독교의 성경과 예수에서 출발했지만 더이상 기독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불교도 아니다. 이제 통일교는 그냥 통일교다. 문선명 사후에 통일교는 어디로 흘러갈까? 그들 말대로 유대교의 한 이단으로 시작된 기독교처럼 , 카톨릭의 이단으로 시작된 개신교처럼 통일교도 전세계의 주류종교로 진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