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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에세이 형식으로 묶은 글이다.
▲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학교 교육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에세이 형식으로 묶은 글이다.
ⓒ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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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가슴이 없는 남자가 머리가 없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노예처럼 부리며 그 위에 군림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과 감정을 신뢰하지 않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인 남자 주인공이 무지하고 순종적인 가정부를 아내로 삼아 성적인 욕구, 먹을 것을 비롯한 모든 생활의 안락함을 제공 받으며 산다는 이야기였다.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된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은 오랫동안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교사가 보고 듣고 느낀 교육 현장의 황폐함 속에서 그래도 바라 본 희망을 적은 글이다.

줄 세우기와 과도한 경쟁 속에서 뒤쳐진 아이들이 상처입고 울부짖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 속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고 우정이며 땀이고 숨결이고 사랑이었다. 그가 자리한 곳이 대도시와 산간벽촌의 경계이기도 하고, 그 자신 역시 사회의 주류가 아닌 경계인의 의식을 지니고 살면서 경험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에세이 형식의 단상들이라 편하게 펼쳐 손닿는 장을 읽어도 무방하다. 제목인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은 중국의 대 문호인 루쉰의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에 등장하는 일본인 교수 후지노 선생에 대한 회상글로 시작이 된다. 루쉰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 온 이유는 러시아 스파이로 체포된 중국인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본데서 비롯된다.

그 장면을 함께 보던 일본인 학생들이 만세!를 외치는 것만이 아니라 활동기 속에 함께 한 중국인들 역시 일본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취하는 모습을 본 루쉰은 무지한 중국인에 대한 절망감으로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가 글로 사람들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루쉰의 강의 노트에 첨삭을 해주고 강의 노트를 빌려주면서까지 루쉰이 의학공부를 계속하기를 바라던 후지노라는 일본인 선생은 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에 대한 신념과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약소국인 중국에 루쉰을 통해 신식의학을 전해 주고픈 열망과 연민의 정이 있었다. 저자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긍심마저 잃어버리고 노예처럼 굴종적이고 비굴한 목숨을 이어가던 광란의 전쟁시대를 영혼 없는 사회로 바라봤다. 또 경쟁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 우정을 상실해가는 교육 현장을 영혼 없는 사회로  진단하고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메마른 감성에 가슴아파한다.

교육의 현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소신껏 아이들과 소통할 수 없는 사회는 영혼없는 사회다. 메마른 현대 사회에 마지막 희망이며 미래라 할 수 있는 것이 교육의 현장이기에 그곳마저 영혼 없는 사회로 변해가는 현실을 직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자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우정'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나는 유토피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희망을 갖고 있다'는 이반 일리치의 말, '누군가의 머리속에서 나와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보자고 말하는 것이 '유토피아'라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와 자신이 이렇게 해보려는 것이 '희망''이라는 말을 희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나의 이웃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가슴에 담고 그 질문에 답하며 사는 것,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라는 연대 의식이야 말로 영혼 없는 사회를 되살릴 수 있는 희망이라 인식한다. 교육은 공교육의 현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교육이 아니면 그 어디서 변화의 희망을 접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로 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은 아마도 희망을 포기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무엇인가 시작되고 있다.
마치 씨앗이 새싹 속으로 용해되는 것처럼.
창조는 오늘 꽃피어나고 싶어 하고
꼭대기 끝까지 스스로를 들어올리고 싶어 한다.
우리가 살고, 질식해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바로 이날 우리는 전혀 새로운 보다 높은 발걸음을,
동물계로부터 인간계로 이르는 것보다
더 위대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 휴 맥다이마드

덧붙이는 글 |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은 이계삼이 쓰고 녹색평론사에서 펴냈습니다.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이계삼 지음, 녹색평론사(2009)


태그:#영혼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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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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