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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부터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쌍용차 사태, 4대강 사업 강행까지 2009년의 이슈들은 유난히 슬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올 한해 뉴스의 중심에 서있었던 인물들을 만나보는 연속 기획인터뷰를 통해 우울한 2009년를 정리하고, 2010년은 새 희망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편집자말>
 노태환씨. 그는 양평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그는 농지에서 떠날 위기에 처했다.
노태환씨. 그는 양평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그는 농지에서 떠날 위기에 처했다. ⓒ 박상규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

 

눈 덮인 북한강변을 보니 김용택 시인이 쓴 <섬진강>의 한 구절이 저절로 떠올랐다.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 퍼간다고" 결코 마르지 않을 강은 섬진강만이 아니다. 북한강은 물론이고 이 땅을 적시며 흐르는 모든 강 역시 그러하다. 

 

28일, 날은 추웠다. 바람도 제법 불었다. 물의 흐름이 더딘 강 수면 위에는 얇은 얼음막도 생겼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몸을 풀어 비로소 '한강'이 시작되는 두물머리 끝자락에 노태환(46)씨의 유기농 딸기밭이 있다.

 

100m 비닐하우스 5개 동에는 그의 손길을 탄 딸기가 붉게 익어가고 있다. 그의 딸기밭에서 고개를 돌리면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쉼 없이 흘러온 한강물이 찰랑인다. 평소 노씨는 그 물에 삽과 자신을 손을 씻는다. 1973년 팔당댐이 생기기 전에는 바지를 걷고 북한강과 남한강을 건너다니던 기억이 노씨에게는 있다.

 

노태환씨는 천생 농부다. 강이 보이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보다 먼저 논밭으로 나갔다. 일정한 노동을 해야만 학교에 갈 수 있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유기농민 노태환씨의 자존심 "돈 때문에 시작하지 않았다"

 

 노태환씨. 그는 양평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그는 농지에서 떠날 위기에 처했다.
노태환씨. 그는 양평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그는 농지에서 떠날 위기에 처했다. ⓒ 박상규

그는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3년을 빼고 고향 땅을 떠난 적이 없다. 공부를 제법 한다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미련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땅의 많은 농민들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면서 본격적으로 논밭에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노씨는 농약에 손을 대지 않았다. 땅의 생리를 따르고 싶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수도권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상수원 보호지역이었다. 서울시와 농협중앙회는 95년부터 농민들에게 금융지원과 판로를 확보해 주며 유기농 전환을 유도했다.

 

"기왕 농사짓는 거 농약 안 쓰는 게 좋다. 누가 권유하기 전에 먼저 유기농을 했다. 유기농을 한다는 자존심은 크지만 엄청난 노동을 해야 한다. 과거에는 '그거 왜 하느냐'는 비아냥도 들었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는 유기농을 할 수 없다."

 

20년 동안 유기농을 하고 있는 농민으로서 자존심은 있지만, 그 유기농 때문에 노씨의 가슴이 새카맣게 탄 적이 한두 번 아니다.

 

초창기 이런 일이 있었다. 유기농 열무 100단을 묶으며 새벽 4시까지 밤을 꼴딱 새웠다. 약의 힘을 빌리지 않은 열무는 금방 시들기에 시장에 출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새벽 4시 30분, 용달차에 열무를 싣고 서울 경동 야채시장으로 갔다.

 

하지만 상인들은 "벌레 먹은 걸 어디다 내려놓느냐"고 열무를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했다.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적을 때였다. 노씨는 먹먹한 가슴을 쓸며 밤새 묶은 열무와 함께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허탈하게 돌아오는 길에 접촉사고까지 냈다. 노씨는 많은 돈을 물어냈다. 집으로 돌아온 노씨는 열무를 모두 폐기했다.

 

"그때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나. 마음에 담아두면 내가 괴롭다. 마음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갖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농지 대신 자전거길 내고, 공연장 만드는 게 아름답나?"

 

 노태환씨. 그는 양평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그는 농지에서 떠날 위기에 처했다.
노태환씨. 그는 양평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그는 농지에서 떠날 위기에 처했다. ⓒ 박상규

1995년 노씨는 자신을 포함한 다섯 농가와 함께 '팔당 상수원 유기농 운동본부'를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유기농을 하자는,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묶이고 그린벨트로 규제받는 터전에서 유기농으로 잘 살아보자는 계획이었다. 이것이 팔당 유기농의 씨앗이 됐다.

 

역시 세상의 비아냥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팔당 지역에서 정상적으로 살려면 환경을 더 파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뜻을 접지 않았다.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가 속한 조합에는 100여 가구가 가입해 있다. 이들 조합은 유기농으로만 연매출 약 50억 원을 올린다.

 

팔당지역, 그러니까 남양주시 조안면 송철·진중지구 그리고 두물머리 주변은 대한민국 유기농 메카로 성장했다. 수도권 시민들이 먹는 많은 유기농 야채는 바로 팔당지역에서 자란 것들이다. 땅과 농민, 소비자 모두가 공명하고 공생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현장이 바로 팔당지역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씨가 있다.

 

하지만 이곳도 이젠 위태롭다. 4대강 사업 때문이다. 국가는 지금 노씨에게 땅을 내놓으라 하고 있다. 그가 가꾼 유기농지 위에 야외 공연장과 자전거 길을 낸다는 것이다. 국가 정책을 만드는 사람에 비하면 노씨의 '가방끈'은 분명 짧다. 하지만 노씨는 군더더기 없이 단호하게 말한다.

 

 딸기꽃을 만지고 있는 노태환씨의 손.
딸기꽃을 만지고 있는 노태환씨의 손. ⓒ 박상규

"한강 고수부지처럼 이곳에도 제방을 쌓고 자전거 길을 내는 게 아름다운가? 땅이란, 장소에 따라 저마다 고유한 성질과 생명이 있다. 그리고 땅의 가치란 게 있다. 왜 그 모든 걸 무시하고 서울의 한강과 이곳을 똑같이 만들려고 하나. 내가 시원찮은 농사꾼이라도 그건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 도대체 이놈의 정부는 앞뒤 안 가리고 밀어붙이기만 한다."

 

노씨는 "두물머리가 갖고 있는 땅의 가치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늘 정당하게 살아왔고 지금의 내 주장도 정당하기에 내년에도 농사를 짓고 싶다"며 "제발 정부가 나를 제대로 설득시켰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농민으로서 땅의 가치를 알고 있고, 평생 유기농을 해온 노씨의 자존심을 짓밟은 일은 지난 가을에 벌어졌다.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유기농이 수질을 더 악화시킨다"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노씨는 "2011년 세계유기농올림픽까지 유치한 당사자들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느냐"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회상했다.

 

"유기농 연 매출 50억, 더 이상 무슨 경제 발전 원하나"

 

 농민 노태환씨가 두물머리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딸기.
농민 노태환씨가 두물머리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딸기. ⓒ 박상규

 

"저들의 주장은 이곳에 하나도 맞지 않는다. 홍수 예방? 여기는 단 한 번도 홍수가 난 적 없다. 물이 차면 팔당댐이 수위를 조절한다. 경제 발전? 유기농으로 1년에 50억 원 매출 올리는데 무슨 경제 발전이 더 필요한가. 수질오염? 농약 한 방울 쓰지 않는다. 저들이 말하는 4대강 사업의 목적을 나와 우리 농민들은 이미 앞서 실천했다. 도대체 무섭지도 않은가? 왜 강과 땅을 함부러 파헤치나."

 

노씨의 유기농 딸기밭 딸기들은 이제 조금씩 붉어지고 있다. 그의 밭에는 1년에 약 1만 명이 찾아와 체험학습을 하고 직접 딸기도 딴다. 노씨는 "이곳을 찾는 도시 사람들이 무척 좋아한다"며 "그런 사람들을 보면 먹을거리를 나누는 연대의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고 웃었다.

 

이어 노씨는 "유기농 체험도 소비자와의 약속인데, 그걸 못 지킬까봐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노씨의 꿈은 좋은 농장을 하나 소유해 그곳에서 계속 먹을거리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20년 유기농을 지어온 김씨는 아직 전셋집에 살고 있다.

 

자신의 밭으로 인도한 노씨는 딸기 하나를 따서 내게 건넸다. 한 입 베어 물자 단물이 쭉 나왔다. 잎 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노씨는 "내가 고생해서 키웠고, 맛과 육질이 아주 좋다"며 딸기 몇 개를 더 권했다. 거친 그의 손 위에 놓인 딸기는 더욱 붉게 보였다. 어쩌면, 이 딸기는 김씨가 키우는 마지막 딸기가 될 수도 있다.  

 

강물은 마르지 않지만 '후레자식'은 어디에나 있다

 

 농부 노태환. 그는 양평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오늘쪽 눈은 심한 약시다. 하지만 농작물은 선명하게 본다고 한다.
농부 노태환. 그는 양평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오늘쪽 눈은 심한 약시다. 하지만 농작물은 선명하게 본다고 한다. ⓒ 박상규

눈 밝은 독자들은 사진을 통해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노씨의 오른쪽 눈이 심한 약시라는 것을. 그는 책은 물론이고 TV나 컴퓨터 화면을 오래 볼 수가 없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노씨는 계속 눈을 비볐다. 농부 노태환씨는 "오직 농작물만 선명하게 잘 볼 수 있다"고 했다.

 

"시각이 떨어지니 다른 감각이 예민해졌다. 농사는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 유기농은 더더욱 그렇다. 감각으로,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내 감각은 농사에 무척 예민하고 그쪽으로 발전했다.(웃음)"

 

눈이 잘 안 보여도 자신의 농작물은 감각으로 선명하게 느낀다는 노씨. 지금 정부는 그런 노씨에게서 땅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다. 농부 노태환씨의 모든 것인 그 땅을 말이다. 지금 국회에서는 4대강 사업 예산을 둘러싼 다툼이 한창이다. TV와 신문을 볼 수 없는 노씨는 모든 소식을 귀로 듣고 있다.

 

강은 "애비없는 후레자식이 퍼간다"고 마르지 않는다. 하지만 "앞뒤 안 가리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후레자식들은 어디에나 있다.


#4대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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