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항습지(고양시 일산서구에 위치)랍니다. 오늘도 한 무리 사람들이 나를 찾습니다. 꼬맹이부터 나이든 어른까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요리조리 뜯어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 사진은 그만 찍으면 좋겠습니다. 내 키가 몇이고 내 몸에 붙어사는 친구들이 누구누구라는 따위야 그리 신기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 아닌가요. 태어나고 자라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모습이야 당신들과 내가 크게 다를 바 없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를 찾은 분들 이야기를 가만히 듣자니, 어떤 이는 경인운하가 생기면 송두리째 사라진다는 개펄 걱정에 한숨입니다. 자취를 감출 수만 마리 펄콩게가 큰일이라는 분도 있고요. 고라니에 재두루미에 버드나무 군락지까지. 사람들 걱정도 가지가지 근심도 오만가지입니다. 참 오지랖도 넓으시지.
오히려 나는 당신들이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없어지면 다음은 당신 차례" 따위 겉치레 말로 겁주려는 건 아니고요. 나보다 운하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 말에 이끌려 우왕좌왕 휘둘리다 당신들이 홀딱 넘어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불도저나 포클레인 같은 기계인간이 거침없이 내 배를 짓이길 것 아닙니까. 생각만 해도 끔직해서 '싸움의 기술' 한 가지 알려 드릴 테니, 여기 오신 분들이라도 부디 힘을 모아 거침없이 하이 킥 한 번 날리세요. 나를 지켜주세요! 아자~!!
이름을 지키는 일은 싸움의 시작이자 전부
운하는 결코 습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경인운하와 장항습지가 그게 그거라면, 습지면 어떻고 또 운하면 어떻습니까? 버드나무와 말똥게가 기분 좋게 어울릴 테고, 뱁새는 천연덕스럽게 나무 위에 둥지를 틀 수 있을 테지요. 하지만 생명을 품는 습지와 뱃길을 위한 운하는 생김새부터 맡은 일까지 전혀 딴판입니다. 장항습지를 경인운하로 두루뭉수리 바꿔치기하려는 속셈은 이름부터 빼앗고 보자는 야멸친 도발이지요.
도발을 막자면, 장항습지를 '습/지/장/항'으로 바꿔 불러야 합니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고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나를 지켜내고 우리가 함께 사는 필승의 싸움 기술입니다. 당신들이 '집그림자'라고 하지, '그림자집'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집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몸통이기 때문이잖아요. 그림자보다는 집이 알맹이고 본질이 듯, 생명을 품은 습지도 장항의 알짬이자 주인입니다. 내가 습/지/장/항으로 불려야 할 까닭이지요.
이름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온갖 헛것만 판을 칩니다. 경인운하로 장항습지를 대신한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경인운하는 실체가 없는 허깨비입니다. 생명덩어리 습지를 들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운하는 생명조차 권력의 부산물 정도로 여기는 '그린 독재자'의 오만과 독선, 건설족의 무한이익만이 출렁거리는 뱃길일 따름입니다. 목숨붙이들은 모두 떠나고 우리네 삶과는 상관없는 썩은 물줄기만, 보 안을 맴도니 허깨비일 수밖에요.
이름과 돌아가는 판세를 제대로 익히고 알리셨다면 내 몸값을 알아보는 것도 싸움에 필요한 기술일 듯싶습니다. 경제 가치에다 생태, 환경, 문화 가치를 두루 합쳐 1헥타르에 3919만 원 정도 한다네요. 동식물 보존에 1026만원, 동식물한테 살터를 준다고 904만원, 물을 깨끗이 거르는 값으로 444만원(인구 10만 명 도시의 하수처리 능력), 여가를 즐기기 좋다고 174만원. 재해를 막는데 공을 세웠다며 173만원 더 얹어줍니다. 나를 제대로 알 겸 몇이서 모여 요모조모 따져보세요. 사람들은 어차피 돈으로만 이야기할테니.
장항습지가 아닌 습지장항이다
따져보면 아시겠지만 습지가 사라지면 입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예요. 이 손해금액을 근거로 운하개발을 주도하는 그린 독재자에게 '경제적 자산-습지 -파괴범'으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아, 당신들 2, 3세대가 누릴 경제가치도 빼먹지 마시고요. 법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민법정을 만들어 판결하고, 판결문과 사라질 뭇생명을 낱낱이 타임캡슐에 담아 집집마다 나누어주면 좋겠습니다. 먼 훗날 사람들에게 2010년 대한민국에는 '인간종'만 살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알려야할테니까요.
새해가 밝았다고 모두 호들갑입니다.
이제껏 구구절절 '싸움의 기술'을 읊었는데, 다시한번 정리하고 나도 좀 쉬렵니다. 두 가지만 아시면 됩니다. 첫째, 생명덩어리-습지-를 '있는 그대로'로 봐주고 불러 주자. 둘째, 그린독재자에게 습지장항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대손손 후손들 이름으로 강력한 똥침-손해배상청구-을 날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