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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대변인이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1층 입구에서 "대통령님은 저 그림을 보고 내가 아닌 것 같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일화를 전하고 있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대변인이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1층 입구에서 "대통령님은 저 그림을 보고 내가 아닌 것 같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일화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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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잘 알려진 대로 메모광이었음이 분명했다. DJ의 메모장을 통해 그가 인터뷰 한 건도 그냥 내키는 대로 말하는 법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미리 작성된 개요대로 논리를 전개하는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현직 대통령 시절부터 10여 년간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한 최경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는 지난 12월 30일 방문한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DJ의 메모노트 일부를 잠깐 동안 공개했다.

특히 눈에 띄는 메모는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 하려 했지만 하지 못했던 추도사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추도사의 개요를 정리한 것인데, 김 전 대통령은 이 메모의 끝에 "정부 반대로 추도사 못함"이라고 적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27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하지 못한 추도사'를 공개한 바 있다.

7월 14일에 하기로 했다가 하루 전 입원하는 바람에 유고 연설문이 된 EU상공회의소 초청 연설문 '9·19로 돌아가자'에 대해서도 소상한 개요가 작성돼 있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펜을 놓지 않으려던 김 전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이는 메모였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5월 29일 엄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추도사를 준비하며 작성한 메모. 정부의 반대로 추도사가 무산되자 메모 마지막에 '정부 반대로 추도사 못함'이라고 적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5월 29일 엄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추도사를 준비하며 작성한 메모. 정부의 반대로 추도사가 무산되자 메모 마지막에 '정부 반대로 추도사 못함'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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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반대로 추도사가 무산되자 메모 마지막에 '정부 반대로 추도사 못함'이라고 적었다.
 정부의 반대로 추도사가 무산되자 메모 마지막에 '정부 반대로 추도사 못함'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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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7월 13일 입원을 하게 되면서 유고 연설문이 되어버린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초청 연설(7월 14일) '9.19로 돌아가자'를 준비하면서 작성한 메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7월 13일 입원을 하게 되면서 유고 연설문이 되어버린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초청 연설(7월 14일) '9.19로 돌아가자'를 준비하면서 작성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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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의 생각들을 정리한 메모 사이에서 눈에 익은 구절을 발견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라는 내용의 신약성서의 한 구절이었다. 신앙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행동하는 양심'의 일면을 엿본 것 같았다.

최 교수는 서거하기 전 37일에 걸친 김 전 대통령의 입원생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뒀다. 그는 "대통령님은 그야말로 호흡기를 부착하시고서도 사투를 벌였다. 기관절개를 해서 말씀을 할 수 없게 되자, 연필을 가져오라 하셔서 필담을 하기도 하셨다. 물을 드시고 싶을 때는 '생수'라고 쓰시기도 하고 '平和(평화)'라는 글도 남기셨다"라고 김 전 대통령이 병마와 싸웠던 일을 회상했다.

최 교수는 인터뷰 중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회상하는 대목에선 잠시 동안 목소리가 쉬곤 했다. 그 목소리에서 진한 그리움이 배어났다.

최경환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 겸 김대중평화센터 대변인.
 최경환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 겸 김대중평화센터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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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최 교수는 DJ 서거 전보다 요즘 술을 더 많이 마실 것 같다.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지 4개월을 넘어가는데, 처음에는 좀 힘들어서 술을 좀 마셨다. 연말이 되니까 특히 더 대통령님 생각이 많이 난다. 1월 1일 신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왔고 그때마다 대통령 내외분이 고운 한복을 차려입으시고는 세배도 받으시곤 했던 일이 생각난다. 모레(1일)는 오전에 현충원 묘역을 참배하고 여사님 홀로 신년 하례를 받으실 예정이다."

-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건강은 어떤가. 24일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는 외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몸이 많이 야위셨다. 그러나 워낙 강골이라 큰 걱정은 없다. 집에 여비서들도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대통령님과 같이 지내시다가 이제 혼자 지내시니까 아무래도 힘들고 외로우신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봉하마을, 광주 등 지방 일정도 만들고 손님들이 오면 도서관으로 나오시도록 하는 등 공식적인 일거리들을 많이 만들어 드리고 있다. 요즘은 대통령님 자서전 내용 검토하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현충원 묘역에 가신다. 서거 이후부터 계속 까만 옷을 입고 계시는데, 언제까지 입으실지…."

"DJ의 '토요강의' 1시간이면 책 1권 읽는 것과 같았다"

- 장례식 당시 '배움의 기회를 잃어 슬프다'라고 소감을 말했는데.
"대통령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장 재미있게 느껴졌던 시간이 '토요강의'다. 토요일 오후 손님이 없는 한적한 시간에 비서관 등 직원들이 대통령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곤 했는데 우리들은 이것을 '토요강의'라고 불렀다. 주제도 역사강의, 인생강의, 철학강의 등 다양했고, 우리는 '대통령님 말씀 1시간 들으면 책 1권 읽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 서거 뒤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일부가 공개됐는데, 공개된 것 말고도 중요한 많은 내용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공개가 안 되는 건가. 
"대통령님 돌아가신 뒤 언론과 주위에서 '유언 없느냐', '유서 없느냐' 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여사님이 혹시나 해서 동교동 서재를 뒤졌지만 유서는 없었고 2008년, 2009년 일기 2권이 나왔다. 여사님이 비서를 통해 일기를 내게 전해줬는데, 나는 그 일기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

대통령님 혼자만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신을 성찰하는 내용,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는 내용, 이명박 정부의 3대 위기(민주주의·민생·남북관계), 투석을 받으면서도 하루하루 힘들어지는 건강상태, 여사님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나타나 있고 가장 많이 나온 부분이 한반도 정세 분석과 전망에 대한 내용이다. 정원의 꽃과 참새에 대한 이야기처럼 애잔한 얘기들도 있고 가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셨다.

그런데 국장 기간은 대통령님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이가 애도하는 기간이다. 괜히 국장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만 공개한 것이다. 그러나 일기에 적힌 내용이 자서전 마무리 작업에 참고가 되고 있다. 일기를 따로 공개할지 여부는 이 여사님께서 판단하실 것이다."

"끝까지 한반도 문제와 민주주의 걱정... 은퇴를 모르는 분"

-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한 2009년 4월 14일 DJ는 일기에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에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대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고 썼다. 현재 상황을 정확히 예측한 것 아닌가.
"김 대통령님 모시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정세 전망에 대한 탁월한 분석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남북관계나 동북아 정세는 대통령님이 40여 년간 천착해서 연구해왔고, 북한 핵문제는 1993년 북한의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 당시, 영국에 계실 때인데 그때부터 계속 핵문제를 연구하셨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대북관계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가을 정도 되면 본격적인 북·미 대화가 시작되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고 예상하셨다. 나는 당시 좀 섣부른 판단 아닌가 생각했는데 지금 거의 다 맞아들어가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한 마지막 만찬에서 북·미 관계에 대한 장문의 글을 주면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고,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장관에게 이것을 전달하는 것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이 글을 전달하는 두 개의 임무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김 대통령은 돌아가실 때까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갖고 계셨다.

'은퇴를 모르는 분'이었고 끝까지 '이명박 정부의 3대 위기'를 호소하셨다. 바로 이런 점은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더 하겠나',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민주개혁진영의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많은 인사들중 '조로(早老) 현상'을 보이는 분들은 반성해야 한다. 민주주의자의 삶에 은퇴란 없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대변인이 김대중도서관 5층 집무실에서 '오바마 2.0' '만화 조선왕조실록' 등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 전에 보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대변인이 김대중도서관 5층 집무실에서 '오바마 2.0' '만화 조선왕조실록' 등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 전에 보던 책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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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김대중 배우기'... DJ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 민주개혁진영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공조를 모색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 이견이 큰 것 같다. 특히 광역단체장 같은 경우 후보 단일화를 이루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DJ가 야당 지도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돌아가시기 전에도 여러 차례 말씀하신 것이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단결하고 다른 야당들과 시민단체들은 연합하라'는 것이다. 대통령님은 '단결'과 '연합'을 주문 외우듯 하셨다. 심지어는 인공호흡기를 끼기 전 3~4일간 '단결과 연합'을 병석에서도 강조하셨다.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큰 원칙이고, 생애를 보면 통합과 연합의 리더십이 언제 어디서라도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야당 시절 당내 많은 세력들의 반발을 누르면서까지 당의 많은 지분을 주고 재야의 전문가들을 데려와 인재를 충원했다. 당끼리 연합을 하면서는 아주 조그마한 세력에게도 5대5의 지분을 주고 합당을 이끌어냈고, 이런 방식으로 DJP연합을 이뤄 정권교체도 해냈다. 이런 방식의 통합을 통해 세력이 줄어든 적이 없고 오히려 커졌다. DJ는 통합과 연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정치인이었다."

- DJ의 뜻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계획은.
"▲ 민주주의 ▲ 남북관계 발전 ▲ 사회정의와 분배의 정치 ▲ 용서와 화해의 정신 ▲ 동아시아 평화구상 등이 바로 'DJ 테제'다. DJ는 돌아가셨지만 DJ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DJ를 공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있는데, 미국 애틀란타, 일본 도쿄와 오사카, 영국 캠브리지 등에서도 김대중 정신을 토론하고 연구하는 행사가 열렸다. 내년에도 미국과 일본에서 DJ가 남긴 것에 대한 토론 모임이 준비 중이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는 2월부터 '김대중 배우기 강좌'를 진행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옥중서신> 등의 저서를 공부하는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시인들은 시를 쓰고, 작가들과 출판인들은 전기와 평전을 쓰고, 연구자들은 DJ의 철학과 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도 힘을 보태려고 한다. 조만간 '김대중 리더십'을 주제로 하는 책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태그:#최경환, #김대중, #DJ테제, #DJ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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