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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덩굴, 끊어지다.

 

핑!

갑작스런 소리에 동물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습니다.

 

후두둑!

도로 건너편 나무에 묶여 있던 덩굴이 풀리며 앵두 신호등이 도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앵두와 딸기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앵초 꽃잎이며 제라늄 꽃잎들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괴물들은 인정사정 없이 앵두와 딸기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안 돼!

리초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배고픈 것도 참고 힘들게 모은 앵둔데."

리초가 흐느꼈습니다.

덩굴도 가닥가닥 끊어졌습니다.

"아, 내 덩굴, 내 덩굴……."

까루와 설마가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남아 있는 덩굴이라도 주워 와야겠어."

구구가 도로 위에 살짝 내려앉았습니다. 부리로 덩굴을 집으려는 순간 괴물이 도로 위에 나타났습니다.

 

"위험해!"

부들 박사가 소리쳤습니다. 구구는 급하게 날개를 치며 날아올랐습니다.

"안 되겠어. 너무 위험해."

까치 부부가 도로 위를 몇 번 가 보았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래도 새로 만들어야겠어. 쿨럭쿨럭."

올리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왜 덩굴이 풀렸을까요?"

리초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가만, 풀리지 않은 이쪽 나뭇가지는 누가 묶었지?"

부들 박사가 물었습니다.

"그야 제가 묶었죠."

너구리 뚜루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쪽은?"

"제가 묶었어요."

구구가 대답했습니다.

 

"그랬군. 구구는 부리로 묶어야 했으니까 당연히 약하게 묶였던 거야."

"또 저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군요.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정말 최선을 다해 묶었어요."

구구는 눈물을 참고 있는지 눈망울이 촉촉해져 있었습니다.

"다시 만들면 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부들 박사가 부리로 구구의 깃털을 매만져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쪽 나무에도 강하게 묶어야 풀리지 않겠군요."

족제비 타랑이 말했습니다.

 

"그래. 문제는 간단해졌군. 쿨럭쿨럭. 누군가가 길을 건너가서 다시 묶어야만 해"

올리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힘없이 안으로 잠겨 들었습니다.

 

"자, 누가 가겠소?"

부들 박사가 바위 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부들 박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동물들은 고개를 푹 수그렸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지만 선뜻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자기에게 딸린 가족들을 생각했습니다.

 

"이런 겁쟁이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나무 위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내가 벌써 달려갔을 거야."

싸리가 거드럼을 피우며 소리쳤습니다.

 

"누가 가야 할지는 간단해. 우리 중에 누가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지?"

싸리 박사는 앞에 앉아 있는 타랑을 쳐다보며 외쳤습니다. 타랑은 얼른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동물은 오소리, 족제비, 너구리, 들쥐, 청설모가 있습니다. 덩굴을 묶어야 한다면 힘이 좋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길을 건너 가 덩굴을 묶을 수 있는 동물은 오소리 야리와 족제비 타랑 그리고 너구리 뚜루로 좁혀지는 셈입니다.

 

"제가 건너가겠어요."

고요함을 깨고 한참 만에 나온 동물은 오소리 야리였습니다. 올리 할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숲속 친구들을 위해 뭔가 보람 찬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 저를 보내 주세요."

야리는 결심을 굳힌 듯 올리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 그렇지만 너는 자식도 잃었는데……."

야리마저 죽는다면 올리 할아버지는 딸과 손자를 모두 잃게 되는 것입니다.

 

"괜찮아요. 아버지. 저는 마음에 준비를 했어요. 반드시 건널 수 있을 거예요."

야리는 할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가겠어요. 저를 보내 주세요."

너구리 뚜루가 불쑥 앞으로 나왔습니다.

"나무를 잘 탄다고 절 칭찬해 주셨죠. 이 산에서 저만큼 나무를 잘 타는 동물은 없을 겁니다."

모두들 깜짝 놀라 뚜루를 쳐다보았습니다.

 

"제 자식 때문에 오비와 오티가 죽었죠. 무엇으로 그것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오소리숲에 두 아들이 있어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여기에 있는 제 새끼들만 챙겨주시면 될 겁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성공해서 건너갈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덩굴을 강하게 묶을 수 있지요."

"그래요. 할아버지. 뚜루가 건너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부들 박사도 뚜루 편을 들었습니다. 야리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뚜루도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리 대신 뚜루가 건너가기로 정해졌습니다.

 

뚜루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가 기도해 줄 게요."

몸이 아파 누워 있던 리초가 말했습니다.

"고마워. 네가 앵두를 가져오지 않았으면 우린 신호등을 만들지 못할 뻔 했어."

"지금이에요. 괴물이 보이지 않아요."

끼리 부인이 소리쳤습니다. 씽씽 달리던 괴물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뚜루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도로 위로 올라섰습니다.

 

"어서 뛰어. 언제 괴물이 달려올지 몰라."

부들 박사가 소리쳤습니다. 뚜루는 건너편을 흘낏 보고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예스24작가 블로그에도 연재됩니다.


#생태동화#숲속의 빨간신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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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아동문학가, 독서운동가> 좋은 글을 통해 이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드는 데 동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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