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목표는 동네 공원에서 새벽마다 줄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해 첫날이었던 어제는 영하 13도의 날씨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눈이 오고 있네요. 게다가 이 눈은 내리면서 빙판이 되고 있네요. 역시나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저 창문 밖을 바라봅니다. 나의 굳은 결심이 여기서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면서도 결국은 괜한 욕심 부리다가 어디라도 다치게 되면, 이게 더 큰 손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마무리 됩니다. 역시나 '운동을 하지 않는 본래의 의지에 맞추어' 제 생각이 가닥을 잡아갑니다. 잠시 방황만 있었을 뿐.
이때, 창밖으로 오토바이 엔진이 과격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네요. 저는 직감적으로 그 오토바이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경우의 소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새벽 5시, 춥고 눈 오는 날, 설마 10대 폭주족이 동네 골목에서 '광란'을 즐기지는 않으니까요.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신문배달부의 오토바이입니다.
눈 오는 날, 엔진소리가 과격하다는 것은 두 가지 상황 때문입니다. 하나는 눈이 와서 생긴 둔턱에 바퀴가 걸려서,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서 엑셀을 심하게 당기면서 '부왕~'하는 소리입니다. 또 하나는 빙판길 내리막길에서 오토바이를 1단에 놓고 바퀴의 가속화를 최대한 억제시키면서 조심조심 내려갈 때, 엔진이 마치 과부하에 걸린 듯한 느낌의 '덜~덜' 거리는 소리입니다.
제 눈에 보이는 배달하시는 분께서는 현재 둔턱을 넘으신 후,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가시고 계시네요. 저 분의 신발은 이미 '눈'에 덥여 있네요. 얼마나 추울까요. 그 눈은 단순히 신발을 젖게 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아이싱' 효과를 내고 있을 것인데 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차디찬' 발이 다시 '차디찬' 빙판에 직접 마찰기제로 사용되어 제어장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토바이는 이륜차라서 빙판길에서 단지 '바퀴가' 제멋대로인 것이 아니라 중심 자체가 무너지기 일쑤입니다.
오토바이가 넘어지면 신문도 다 엎어지겠죠. 그럼 다시 신문을 정리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될 것이고, 또한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니, 이런 일은 정말 난감한 일이겠죠. 또한 얼른 새벽노동을 마치고 다른 '주간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신문배달부에게 시간절약은 가장 중요한 노동포인트입니다.
시간절약의 다른 말은 쓸데없는 시간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빙판길에서의 시간절약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마친다는 각오로 일을 무사히 마치는 것입니다. 괜히 '정시퇴근'을 고집하다가 아주 난감한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되죠. 그래서 이런 날은 오토바이를 '쓰러트리지 않고' 배달을 종료하는 것입니다.
오토바이를 빙판길에서 무사히 운전해야 합니다. 미끄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당연히 브레이크가 아주 중요합니다. 오토바이 브레이크는 왼손으로 제어가 가능한 앞바퀴만 잡고 두 발은 바닥에 완전히 밀착시켜 제동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균형도 잡을 수 있습니다.
발이 브레이크가 되면서, 그렇게 '차가운 신발'이 뜨거워집니다. 경험상, 내리막길이 시작하기 이전에 완벽한 자세를 세팅해야지만 오토바이가 비교적 수월하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내려가는 도중에 아뿔싸~ 그러면서 자세를 변환시키면 대략난감한 일이 발생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니까 내리막길을 가기 위해서는 아주 '긴 코스'를 발바닥을 희생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발이 뜨거워질수록 신발 '안'으로 눈의 침투는 더욱 과격해집니다. 내가 발에 무게를 실어 준만큼 신발은 '구멍'이 났을 것이고 그 안으로 '차가운 눈 덩어리들'이 보란 듯이 입장합니다. 제가 바라보고 있는 저 분도 지금 아마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시겠죠? 발이 추워질수록 배달이 안전해지는 이 딜레마 안에서요.
신문배달 4년의 기억. 아직도 눈이 싫어
저는 2003년부터 4년 동안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그 시절 제가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던 정보 중에 하나가 바로 '기상정보'였습니다. 여름에는 '비' 때문에, 겨울에는 '눈' 때문에 언제나 긴장을 했죠. 저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배달을 했기 때문에 보통 9시까지는 조교근무를 하러 학교로 가야 했습니다. 눈이나 비가 오면 배달시간이 지연이 되기 때문에 그만큼 신경이 예민해진 것이었죠.
특히, '눈 오는 날', 정확히 말해 '눈이 새벽에 오면서 제설작업 하기도 전에 얼어붙는 경우'는 정말 죽는 것보다 싫었습니다.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순간을 이겨내야지 '보수'를 받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도 눈 오는 날이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저녁 찰나 눈이 오고 있으면 항상 "내일 새벽 배달하시는 사람들 엄청 고생하겠다~"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아무리 눈 내리는 풍경이 차분함과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 할지라도 이 기쁨이 누군가에는 엄청난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눈'은 언제나 저에게 고약한 존재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트라우마'(?)가 정신적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배달을 그만둔 지가 3년이 다 되어감에도 아직도 '눈길을 걷는 내 행동'은 매우 유별나다는 것입니다. 그건 마치 죽도록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이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을 때, 별걸 다 생각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눈이 오는 날, 그리고 그 눈이 얼음이 된 날, 저는 누구보다 조심스레 길을 걷습니다. 내리막길, 혹은 계단에서는 더욱 심각합니다. 일단 눈으로 '그나마 안전하다고 보이는 곳'을 찍어 두고 그리고 동선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제 '두 손'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최소화시킵니다. 그리고 첫 발을 움직여 봅니다. 물론 이 걸음은 첫 번째 포인트가 정말로 미끄러운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약간의 위험도라도 발견되면 그 즉시 '우회'하는 것이 아주 합리적이기 때문이죠.
이런 날은 모두가 조심하게 마련이지만 저는 유달리 법석을 떨어서 동행자들이 매우 절 답답해 합니다. "괜찮아~ 안 미끄러져~"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그러다가 미끄러지고 나서 정신 차릴래?"라고 되받아칩니다. 그런데 저는 아마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유별나게 조심을 떨 것 같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미끄러져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오토바이와 함께 말이죠. 전 그래서 지금도 눈이 싫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blog.daum.net/och7896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