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다운 집, 결혼해서 살아도 될 아늑한 집, 6000만 원에 살 수 있는 서울 근처의 집, 어디에 있을까?'우리 주변의 청년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질문이다. 문제는 답이 없는 질문이라는 것. 하지만 소설가 김윤영씨가 최근 펴낸 <내 집 마련의 여왕>(자음과모음 펴냄)을 읽는다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조건만 받아들이면 된다. 이 책을 읽은 후, 욕망의 바벨탑을 계속 올라갈지 아니면 내려갈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 이 책은 한국사회의 부동산 문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꿰뚫고 있다. 아래는 책의 한 구절이다.
"자신들의 청춘을 아니, 사춘기까지 몽땅 다 저당 잡혀 뼈 빠지게 번 돈이 그거밖에 안 된다는 걸, 그들은 미안해했다. '둘이 모은 건 4000만 원이 안 되고요, 사장님이 2000만 원을 대출해주신다고 했어요. (내 집을 마련하기엔) 너무 적죠?'"지난 12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욕망의 바벨탑 아래에서도 내 집 마련의 여왕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울하우스를 찾으세요." 작가의 뜻을 이해하는 데 2시간의 인터뷰가 필요했다.
3년간 수백 채의 집을 순례한 작가, 부동산 장편소설을 쓰다
<내 집 마련의 여왕>은 부동산을 다룬 최초의 장편소설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소설은 2008년 보증 때문에 집을 날리게 된 주인공 송수빈이 정 사장이라는 자산가의 도움으로 자신의 집을 되찾고, 이후 고아 청년·독신 노인·장애아동 가족 등에게 집을 마련해주는 내용을 담았다.
'부동산 경매 실전사례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만큼, 부동산 시장의 리얼리티가 생생하게 담겼다. 2006년부터 3년 동안 수도권에서 300여 채의 집을 '순례'하고, 수백 명의 공인중개업자·법원 직원·공무원·인터넷 부동산 고수 등을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작가는 "집값 때문에 모두가 난리 쳤던 2006년, 모두가 미쳐가는 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새집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던 차에 수도권 곳곳을 다니며 메모를 많이 해놓았고, 이후 관련 자료를 모으다가 2008년 초 소설을 집필했다"고 전했다.
그는 "부동산 중개업자와 만날 때 애를 업고 다니면서 정말 집을 사려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며 "가계약금이라며 100만 원을 봉투에 넣어 다니기도 했고, 계약서도 여러 차례 쓸 뻔했다"고 밝혔다.
- 책에는 경매 얘기가 많이 나온다. 경매는 어떻게 공부했나?"경매 관련 책이나 인터넷 강의를 많이 봤다. 경매의 달인인 법원 계장과 친해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감정평가사, 동네 저축은행 직원, 구청 공무원,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과도 자주 만나 많은 정보를 얻었다. 무엇보다 입찰(경매)법정에 자주 간 게 큰 도움이 됐다."
- 입찰법정에서 무엇을 느꼈나?"경매로 싸고 좋은 집을 마련할 수 있지만, 지금은 경매하는 것을 말리고 싶다. 주식시장에서 애를 업은 엄마가 나타나면 끝났다는 말이 있는데, 입찰법정도 마찬가지다. 보통 경매에 나온 집에는 세입자들이 사는데, 이들을 내쫓아야 한다.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디시인사이드 부동산 갤러리 등의 부동산 고수를 많이 만났다"고 밝혔다. 인터넷 '무림' 고수가 보는 향후 부동산 시장 전망은 어떨까? 그의 말이다.
"부동산 고수들은 서울의 유명한 아파트를 다 꿰고 있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는 집값 폭등론자 집합소다. 하지만 아파트로 이익 보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2005년 인기 많았던 용인 지역의 경우 현재 집값이 30% 정도 빠졌다. 그런데도 집을 팔기 어렵다. 부동산 투자의 큰 매력인 환금성이 떨어지고 있다."청춘을 다 바쳐도 살 수 없는 내 집... "후손에게 죄짓는 것"
기자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취재력을 바탕으로 작가는 어느새 부동산 전문가가 됐다. 기자도 알지 못하는 갖가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보가 책에 넘쳐났다. 작품의 등장인물이 내뱉는 대사들은 현실세계 전문가의 발언만큼이나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겨눴다.
- 왜 부동산에 돈이 몰린다고 보나?"전세 때문에 2년에 한 번씩 이사 다니면서 아이가 고생하는 모습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집을 장만하고 싶어 한다. 또한 여자들은 손때 묻은 살림살이에 대한 애착이 크다. 장기전세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 집을 살 수밖에 없고, 집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노후 보장이 되는 투자처를 찾는 50~60대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작품은 집값 폭등에 대해서 말한다. 작품에서 고아청년인 서 대리는 청춘 다 바쳐 돈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수빈의 도움으로 그는 자살사건이 일어나 살려는 사람이 없는 집을 보금자리로 삼는다. 작가는 "집값 상승은 우리가 후손한테 죄를 짓는 것이고,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집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품은 재개발 문제도 지나치지 않는다. 주인공의 도움을 받는 이 간호사는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일하며 "뉴타운 필요 없다! 임대 뉴타운이나 지어라"라고 외친다. 작가의 말이다.
"'용산 참사'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수많은 재개발 지역의 서민은 오늘도 어딘가로 밀려나고 있다. 수빈의 조력자 정 사장은 '없는 자들의 등에 칼까지 꽂는 세상이 한국 사회의 룰이야, 더 지독해질 거야'라고 말한다. '용산 참사'를 통해 나타난 천박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우리의 '소울하우스'는 어디에 있나?작품은 정 사장이 죽으며 자신의 재산으로 소액전세자금 대출은행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결말로 치닫는다. 작가는 "은행 문턱이 높아 서민들에게도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는 제도를 상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의 마지막은 수빈이 자신의 '소울하우스'를 찾아 동남아로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모습이다. 수빈은 집을 판 돈 5억 원 중 4억 원을 정 사장의 재단에 넘긴다. 수빈은 "우리에게 집이란 건, 삶과 연동된 작은 일부일 뿐, 우리의 삶이 변하면 집의 가치도 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이 될 뻔했던 '소울하우스'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작가의 말이다.
"돈 되는 집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집들이 '소울하우스'가 아닐까? 고아청년 서 대리에게는 동생과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장애 아이를 가진 임 소장에게는 아이가 천대받지 않는 곳이, 과거를 추억하는 독거노인 박 선생에게는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소울하우스'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