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사는 불광산 품 속에 안겨 있다. 그리고 척판암은 장안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장안사는 원효 대사가 창건한 도량이고 척판암은 원효 대사의 설화가 깃든 암자다. 불광산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 (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당시 쌍계사로 부르다가 애장왕(800~809 재위)이 다녀간 후, 장안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638년(인조16) 대의대사가 중건 하였다고 한다. 효종 5년(16544)원정, 학능, 충묵 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대웅전, 명부전, 응진전, 극락전, 산신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37호로 지정되어 있고, 대웅전의 석조삼세불좌상은 제 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안사의 대웅전은 그야말로,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 그 자체다.
장안사 산신각 앞에 서니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각난다. 나의 어머님은 새해가 되면 소원 기도를 올리기 위해, 절에 가실 때 옷을 정갈히 갈아 입히고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그동안 새해 기도나 소원 등 따위는 잊고 살았는데, 어머니 나이가 돼 가면서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며칠 전 책에서 읽은 학명대사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묵은 해이니 새해이니 분별하지 말게..." 새해라서 특별히 각오하고 다짐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을 잘 쓰지 못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그러나 높은 고승이 아닌, 일개의 범부로서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늘 기대에 차서 새해의 새로운 각오를 하지 않으면 또 불안한 것을 어찌 하랴. 나는 소원등은 달지 못하고, 대웅전에 들어가 납작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대웅전의 '대웅'이란 부처의 덕호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어느 절이나 대웅전은 사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안사 대웅전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다.
대웅전 중심에 불상을 안치하고 있는 불단을 수미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꼭대기에 부처님이 앉아 자비와 지혜의 빛을 발하고 있다는 불교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대웅전, 후불탱화 석가영산회상도 역시 시 지정 문화제 제 87호이고, 석조 삼세불좌상도 시지정 문화제 제 94호이다.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 속에 사네 - 학명선사 어록 중
장안사는 원효대사가 세운 절, 장안사를 내려다 보고 있는 불광산의 척판암은 원효대사의 설화가 깃든 절이다.
원효 대사가 선정 중에 혜안으로 당나라 종남산 태화사의 천명이나 되는 대중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보았단다. 이에 "신라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한다"라고 쓴 현판을 불가사의 한 신통력으로 태화사에 날려보냈는데, 그곳의 천명 대중들이 공중에 떠 있는 현판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법당에서 뛰쳐나와 보는 순간, 절 뒷산이 무너져 큰절이 매몰되었다. 이로 인해 목숨을 구한 천명의 중국 스님들이 신라 척판암으로 와 원효스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원효의 설화가 깃든 척판암 주위에 있는 오래된 고목들이 여행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한 그루 두 그루 수령 깊은 천년 나무들이 절 한 채처럼 다가오는 불광산 척판암은, 이곳에서 소원기도를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여 새해가 되면 전국에서 숱한 불자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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