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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 폭설이 내린 다음날 선 여주 5일장. 그래도 눈이 쌓인 한편에 5일장이 섰다. 5일장의 생명력을 본다.
▲ 5일장 폭설이 내린 다음날 선 여주 5일장. 그래도 눈이 쌓인 한편에 5일장이 섰다. 5일장의 생명력을 본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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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는 그렇게 눈이 많이 오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경인년 들어서 1월 4일에 내린 눈이 40년 만에 내린 폭설이라고 한다, 20cm 넘게 내린 눈이 도로에 쌓여, 오늘까지도 눈을 치우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포클레인으로 눈을 퍼 담고,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등 시내는 하루 종일 분주하다.

내가 사는 곳은 하루에 4번 시내버스가 들어오는 변두리이다. 그런데 어제부터는 아예 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눈길을 걸어 읍내로 나갔다. 자칫 잘못하면 낙상이라도 할 듯하다. 여주는 5일과 10일이 장날이다. 5일장은 이 눈 속에서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다.

그래도 5일장은 생명력이 있어

노점 매번 뵙는 할머니는 오늘도 바리바리 싸들고 장에 나오셨다.
▲ 노점 매번 뵙는 할머니는 오늘도 바리바리 싸들고 장에 나오셨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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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들어가는 길 주변이 온통 난리다. 미끄러운데다가 한편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다. 사람들은 이런 날 5일장이라고 서겠느냐고 한다. 그러나 장으로 가보니 듬성듬성 난장이 서 있다. 장거리 안으로 들어가자 골목길에는 큰 길에서 치워낸 눈들이 가득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5일장으로 모여든다.

"이렇게 눈이 왔는데도 장에 나오셨네요?"
"그래도 바람이 불지 않아서 나오기는 했는데 손님이 없어."
"오늘 같은 날은 쉬셔야죠, 길도 미끄러운데."     
"일찍 들어가야겠구먼. 손님도 없는데."

매번 장에 나갈 때마다 뵙는 할머니다. 오늘도 빠지지 않고 장에 나오셨다. 이것저것 저렇게 챙겨서 나오시려면 힘도 드셨을 텐데. 사람들은 그래도 평소에 30% 정도의 장꾼들이 나온 5일장을 찾는다. 먼 길을 걸어서 나오셨다는 한 분은 '그래도 5일장이라 이렇게 장이 서지'라고 하신다. 끈질긴 5일장의 생명력이다. 비가 오고 날이 아무리 추워도, 5일장은 거르는 법이 없단다.

눈길 5일장의 진입로는 아직도 제설작업이 되지 읺았다.
▲ 눈길 5일장의 진입로는 아직도 제설작업이 되지 읺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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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눈 5일장의 장거리 노점상의 점포 위에 쌓인 눈. 40년 만에 내린 폭설이라고 하면서도 5일장은 섰다.
▲ 쌓인 눈 5일장의 장거리 노점상의 점포 위에 쌓인 눈. 40년 만에 내린 폭설이라고 하면서도 5일장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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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원의 행복, 빈대떡 한 장에 막걸리 한잔

5일장을 찾으면 가끔 들르는 집이 있다. 빈대떡도 있고, 돼지껍데기 볶음도 있다. 내가 이 집을 찾는 이유는 2000원만 가지면 5일장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전이나 메밀전 한 장에 단돈 1000원, 그리고 막걸리 한 잔에 1000원이다. 2000원만 가지면 허기도 면할 수 있고, 장 분위기를 혼자 다 느낄 수가 있다. 이렇게 싸게 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5일장이다.

"오늘은 손님들이 많지 않네요."
"이렇게 눈이 왔는데 어떻게들 나오겠나."
"많이 파셨어요?"
"손님이 없어서 팔지도 못했어."
"그런데 빈대떡 한 장에 1000원 받고 막걸리 한잔에 1000원 받아도 남는 것이 있나요"
"남기는 하겠지. 그런 것은 계산 안 해보았어."
"그렇게 싸게 파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어르신들 때문이지. 요즈음은 장에 나와도 재미가 없다고들 하시거든. 이렇게 빈대떡 한 장에 막걸리 한잔이면 속이 든든하시다는데. 그 어르신들 때문에 이것은 빠트릴 수가 없어. 이게 다 정이지."

빈대떡 빈대떡 한장에 단돈 천원이다. 5일자에서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다.
▲ 빈대떡 빈대떡 한장에 단돈 천원이다. 5일자에서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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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막걸리 통 앞에 놓인 양은대접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천원이다.
▲ 막걸리 막걸리 통 앞에 놓인 양은대접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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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장에서 식당을 하시는 이종진옹(71세). 연세가 적지도 않으신 분이 꼭 '어르신들'이라고 하신다. 평소에는 식당을 하시지만, 장날이 되면 식당 앞에 난전을 펴시고, 천 원짜리 빈대떡과 천 원짜리 막걸리를 파신다. 2000원의 행복을 파시는 셈이다. 늘 해오시던 것이라 오늘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혹 한 분이라도 장에 나오셨다면 막걸리 한잔 드시러 오셨는데, 드실 수가 없으면 서운하실까봐 오늘도 난장을 펴셨단다.

이종진옹 여주 5일장에서 이천원의 행복을 파시는 이종진옹
▲ 이종진옹 여주 5일장에서 이천원의 행복을 파시는 이종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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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의 훈훈한 인정이요, 끈질긴 생명력이다. 한편에서는 눈을 치운다고 법석을 떨고 있지만, 5일장 안에는 오늘따라 장사치들의 고함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하나라도 팔고 들어가야지'라는 생선가게 아저씨의 외침소리다.


#5일장#폭설#여주#이천원의 행복#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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