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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됩니다. 그런데 키는 132cm, 몸무게는 25kg 정도입니다. 아빠 키가 165cm라 아이들도 작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커지를 않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집처럼 키 크는 치료나 약을 먹을 수 없는 가정 형편이라 마음만 아플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키가 크지 않는 이유가 '자라'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자라를 따면 키가 클 수 있다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자라는 몸에 일정한 곳에 생기는 쌀알 같은 것으로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배가 몹시 아픈 증상을 일으킵니다. 특히 손바닥에 많이 나타납니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어떻게 하든지 자라를 따야 한다는 말에 키가 크지는 않을 망정 할머니 소원은 들어 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자라를 잘 딴다는 할아버지가 계신 곳을 갔습니니다.

 

정말 할아버지는 큰 아이 손바닥을 한 번 만져 보더니 아이 식성을 그대로 맞추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조금 후 손바닥에서 쌀알 같고 깨알 같은 노란 것이 나왔는데 그것이 자라였습니다. 막둥이도 자라가 있는지 살폈는데 막둥이는 없다고 합니다. 의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막둥이 식성과 습관을 맞추는 것을 보고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배추 김치와 콩으로 만든 음식을 일주일 동안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큰 아이가 배추김치와 콩으로 만든 음식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걱정입니다.

 

자라를 따고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겨울에 먹기 위해 땅에 파묻어 놓은 무를 꺼내자고 성화였습니다. 배추김치를 먹을 수 없으니 무를 꺼내 김치를 만들고, 무국을 끓여 먹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땅이 꽁꽁 얼었는데 어떻게 무를 꺼낼 수 수 있어요?"
"호미로 파 보려고 했는데 안 된다 아이가. 네가 괭이로 파면 팔 수 있을끼다."
"괭이로 파라구요?"
"하모. 그래야 인헌이가 무김치나, 무국을 먹을 수 있을끼다."

 

땅은 얼었지만 괭이질을 몇 번 하니 파집니다. 아빠가 아들을 위해 땅을 파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랜만에 땅에 파묻어둔 무를 파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 긴긴 겨울밤을 보내면서 무를 밤참으로 먹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 옛날에는 겨울밤을 보내면서 무를 밤참으로 먹었는데."
"하모 무를 땅에서 파갔고, 먹어면 얼마나 맛있었는데. 요즘은 먹을끼 많아도 그 때 무를 먹던 그 맛은 안 난다 아이가."

"소죽을 끓이면서 군고구마를 구워 먹고, 밤에는 무를 먹고. 참 재미있었고 맛있는데. 옛날 생각나네요."

"요즘 사람들이 무를 밤참으로 먹는 사람이 어디 있노."

 

 

무를 하나씩 꺼내는데 동생이 참 잘 파묻었습니다. 조금만 잘못 파묻어도 무가 얼어 버립니다. 얼어버린 무는 팥앙금 없는 찐빵입니다. 역시 동생은 야무진 사람입니다. 올 겨울은 더 추워 무가 얼 수 있었는데 잘 파묻어 하나도 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하경이 아빠가 잘 파묻었네요."
"하모. 하경이 아빠가 얼마나 야무진 사람이고."
"내가 파묻었어면 올겨울처럼 추우면 무가 다 얼어버렸을 것인데."
"하지만 너도 잘 파묻었을끼다."

 

어머니 사랑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할머니와 삼촌 덕택에 우리집 큰 아이는 일주일 동안 배추 김치를 먹지 못할 것인데 무채나 무국을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자라 딴다고 키가 커고, 몸무게가 불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할머니 소원 풀어들이고, 도시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땅에 파묻어 둔 무를 먹어보는 것은 큰 아이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태그:#자라, #무,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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